28일 오후 3시 이곳에 채명신(1926∼2013) 예비역 중장이 묻힌다. 고인은 1965년부터 69년까지 초대 주월(베트남) 한국군사령관을 지냈다. 병사묘역에 예비역 장군이 묻히는 건 건군 사상 최초다. 장군묘역이 있는 국립대전현충원으로 가지 않고 이곳으로 가는 이유는 25일 별세한 고인의 유지에 따른 것이다.
이날 서울 아산병원 빈소에서 만난 부인 문정인(84) 여사는 “평소에도 남편은 입버릇처럼 집(용산구 동부이촌동)에서 한강 건너 동작동을 가리키며 ‘여보, 나 말이야 전우들과 함께 묻혀야겠어’라고 말해 왔다”고 전했다. 유가족들은 비석 뒷면에 ‘나 채명신은 전우를 사랑해 이곳에 묻혔다’는 글귀를 새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마저 생략하고 담담하게 여백으로 남겨놓는 방안도 논의했다. 고인의 유지에 따라 묘지와 비석 크기는 여느 병사들과 똑같이 만들어진다.
서울현충원에 따르면 고인은 다른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2번 묘역 맨 앞 열의 3.3㎡(1평)에 안장된다. 국가보훈처 국립묘지정책과 김흥남 과장은 “고인의 비석(’육군 중장 채명신의 묘’)도 병사들과 똑같이 높이 76㎝, 폭 30㎝, 두께 13㎝의 화강암으로 세워질 예정”이라고 전했다. 장군묘역으로 간다면 26.4㎡(8평)의 묘지 공간을 할당받고 그 위에 봉분을 올릴 수도 있었다. 비석도 병사보다 큰 높이 91㎝, 폭 36㎝, 두께 13㎝짜리다.
병사들 옆에 묻히려 했던 이런 고인의 뜻은 하마터면 받아들여지지 않을 뻔했다.
오늘 서울현충원 안장 … 병사묘역에 장군 처음
문정인 여사는 채명신 장군이 별세하기 전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가 고인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군인과 군무원의 묘역을 장군묘역·장교묘역·병사묘역으로 구분한 ‘국립묘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13조)’ 때문에 해법을 찾지 못했다.
이에 문 여사는 고인이 별세하기 3일 전인 지난 22일 고인의 뜻을 담은 편지를 써서 청와대에 전달했다. 결국 27일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문 여사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가신 분의 유지를 따르는 것이 예의라고 박근혜 대통령께서 말씀하셨다”며 병사묘역에 안장하겠다는 뜻을 알려왔다. 고인은 박 대통령의 부친 박정희 소장이 61년 5·16을 일으켰을 때는 5사단장으로 동참했으나 이후 유신체제에는 반대했다.
이에 따라 육군은 28일 오전 10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권오성 육군참모총장의 주관(육군장)으로 영결식을 치른다. 국립서울현충원 이순남 주무관은 “동작동의 장군묘역에 355명의 장군이 영면하면서 공간이 남지 않 았다”며 “대전의 장군묘역에는 아직도 302기의 여유공간이 있는데도 고인은 전우들의 묘역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고인이 장군에게 주어진 특전을 마다하고 병사들 곁으로 가면서 보여준 ‘전우애’와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의 실천에 대해 군 안팎에서 반향이 일고 있다. 김지덕 육군본부 인사사령부 중령은 “6·25와 베트남 전쟁의 영웅인 고인이 부하 사랑을 끝까지 솔선수범하면서 후배 장교들에게 큰 귀감이 됐다”고 말했다.
신동규(예비역 소령) 재향군인회 부장도 “생전에는 국가와 영토를 지켰고, 죽어서는 국토에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 주겠다는 선배 군인의 결단이 신선한 충격”이라고 했다.
신명철 서울남부 보훈지청장은 “채 장군은 마지막까지 참군인이었다”고 평가했다.
글=장세정·정원엽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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