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의 애덤 스미스
조반니 아리기 지음|강진아 옮김|길|603쪽|3만3000원
이탈리아 출신의 좌파 경제학자인 조반니 아리기의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는 이렇게 조금 난해하면서도 독특한 주장을 담고 있다. 저자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본주의 세계 경제체제의 헤게모니가 미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 블룸버그뉴스
아리기 주장의 파격은 그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구별하는 데서 출발한다. 시장의 역사는 자본주의보다 훨씬 오래됐기 때문에 이 둘을 구분하는 게 전혀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문제는 그가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국가는 미국, 시장경제를 대표하는 국가는 중국'이라는 식으로 나누는 데 있다.
이렇게 보면 미국에서 중국으로의 헤게모니 이동은 과거의 헤게모니 이동들과는 의미가 달라진다. 지금의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쇠퇴하고 새로운 경제체제가 부상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가 '스미스식 세계·시장 사회'라고 하는 새로운 경제체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지는 분명치 않다. '새롭고 훨씬 평등한 세계질서'라든가 '우호적인 일종의 문명연방' '사회적으로 더 공정하고 생태적으로 더 지속가능한 발전경로'라는 식의 다소 막연한 설명뿐이다.
좌파 이론가인 저자가 카를 마르크스 대신 애덤 스미스에서 자신의 이론적 근거를 찾고 있는 것도 이색적이다. 그는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개념으로는 중국을 잘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미스의 시장경제 이론이야말로 스미스와 관계없어 보이는 중국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라는 이 책 제목도 여기서 나왔다.
스미스에 대한 그의 해석은 매우 파격적이다. "스미스는 시장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도 않았고, 자본주의를 옹호하지도 않았고, 노동 분업을 지지하지도 않았다"는 게 아리기의 주장이다.
스미스에 대한 이런 재해석을 토대로 그는 중국을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 '비(非)자본주의적 시장경제'로 분류했다. 중국이 무궁무진한 저임 노동력을 착취하는 게 아니라 점진적인 개혁, 농업 발전, 사회주의적 의료·복지 유지, 근면하고 교육받은 노동자의 대량공급 등을 통해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뤘다는 점에서 서구의 자본주의적 발전경로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서구 자본주의는 '자본·에너지 집약적'인 데 반해 중국 경제성장의 특징은 '노동 집약·에너지 절약형'이라고도 했다. 서구의 발전경로는 경제적 불평등과 전쟁으로 점철됐지만 중국과 동아시아의 발전경로는 경제적 평등과 평화를 구현할 수 있다는 식으로 대비하기도 한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으로 대표되는 세계체제론의 주요 이론가이기도 한 저자는 자본주의에 대해 상당히 색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리기의 이런 이분법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 책은 2007년 출판 직후 특히 서구 좌파 진영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애덤 스미스에 대한 해석과 중국 경제에 대한 평가를 놓고 반론이 많았다. 반면 우파 진영에서는 이렇다 할 반응이 거의 없었다. 애덤 스미스라는 접점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세계관의 차이 때문에 주류 경제학과의 소통은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