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사변(支那事變)! 일본에서 중일전쟁을 일컫는 말이다. 본질을 호도하는 데 능한 일본인 특유의 잔꾀가 흠뻑 묻어나는 용어다. 말장난으로만 머물던 지나사변이 마침내 실제로 발발했다. 중국대륙이 아닌 서울 한복판에서.
북경서 개최될 예정인 하계올림픽 대회에 대한 한국인 일반의 감정은 몹시 부정적이다. 허나 그러한 속내를 좀체 드러내지는 않는다. 우리도 올림픽으로 왕년에 재미 좀 봤던 처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울에서 진행되는 성화 봉송 행사에 단지 심정적으로만 반대했을 뿐이다. 이로 말미암아 한국사회에서의 북경올림픽 보이콧 운동과 티베트 분리독립 지지시위는 엉뚱하게도 친미보수 성향을 지닌 사회단체들의 전유물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2008년 4월의 마지막 일요일에 서울 도처에서 펼쳐진 난장판은 참을 수 없는 굴욕감과 수치심을 안기기에 충분했다. 이 나라가 도대체 누구의 땅인가? 중국인 5천 명이 떼로 몰려다니면서 폭동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성격과 규모의 소란을 피웠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 한국인 5천 명이 천안문 광장을 비롯한 북경 시가지 곳곳에서 맘대로 사람을 폭행하고, 기물을 함부로 파괴할 수가 있겠는가?
진짜 지나사변을 인터넷과 tv뉴스를 통해 접한 국민원로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서기 7세기 중엽의 사비성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백제의 도성에 쳐들어온 당나라 병사들이 살육과 약탈, 방화와 강간 따위의 온갖 만행을 저지르던 당시의 그곳으로. 그때는 나라가 망했다는 핑계라도 있었다. 지금은 분명 대한민국이란 주권국가가 엄연히 실재하는 상황이다.
외국인 5천 명이 별다른 제지 없이 수도의 중심부를 점거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한심한 나라는 지구상에 드물 성싶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 가운데는 특히나. 지난번 파리 외곽에서 벌어졌던 폭력사태도 결국은 프랑스 국적을 가진 인간들이 주인공이었다. 아랍계 청년들이라고 할지언정 그네들 또한 엄연한 프랑스 공화국의 시민이었던 것이다. 중국인 5천 명이 일시적으로나마 서울을 점령한 사건은 예삿일이 아니다. 숭례문 전소에 버금가는 망국의 징조다.
나는 성화를 지키겠다고 쏟아져 나온 중국인들의 숫자에 놀라고, 그 조직력에 또 한번 놀랐다. 한데 정말 놀라야만 할 사실은 제2차 지나사변의 궁극적 책임이 한국정부한테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역대 집권자들의 잘못이 매우 크다 하겠다. 전두환 군사정권이 등장한 이래 30년이 가깝도록 한국인들이 귀에 따갑게 들어온 소리가 외국인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이야기였다. 우리 국민은 어떻게 되건 상관없이 외국인만 편하면 장땡이라는 위정자들의 저렴하고 천박한 사대주의 근성은 영어몰입교육이라는 정책까지 급기야 불러왔다.
문제는 영어만이 아니었다. 길거리의 도로표지판에는 한자마저 덩달아 삽입되었다. 그 결과 중국인 폭도들이 총 한 방 쏘지 않고서 수도 서울의 심장부를 장악하는 씻기 어려운 희대의 국치가 초래되었다. 이명박 정권의 체질화된 무능과 엽기적인 외유내강 역시 중국의 ‘한성공정(漢城工程)’에 커다랗게 이바지했다. 제 나라 백성들의 정당한 생존권 요구에는 ‘떼법’ 운운하며 강경하게 대처하면서, 서해바다 건너온 ‘떼놈’들의 집단난동은 무기력하게 방관한 이유에서다.
중국인에 비하면 양키들은 그야말로 순둥이들이다. 그들은 기껏해야 대여섯 명씩 이태원이나 홍대 근처를 휘젓고 다닐 따름이므로. 수천 명이 무리를 지어 시청광장을 인해전술로 함락시키고서는, 성조기 수배 개를 요란하게 휘두를 엄두는 감히 내지 못한다. 3만 5천 명의 주한미군은 기지촌 주변을 제외하면 솔직히 별다른 존재감이 없다.
4ㆍ27 지나사변은 우리에게 외교정책을 위시한 모든 분야의 국가발전전략에 걸쳐 과감한 발상의 대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미국이 어설픈 좀도둑이라면 중국은 교활한 고등사기꾼이다. 한민족의 안녕과 번영을 진실로 위협하는 악당의 정체를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모르고 살았다. 북한을 예로 들어보자. 미국은 북한을 이길 수는 있어도 먹을 수는 없다. 중국은 북한을 이길 수는 없어도 먹을 수는 있다. 힘센 놈보다는 욕심 많은 놈이 더 모질고 악랄한 법이다.
이번에는 겨우 5천 명이 서울 시내를 주름잡았지만 다음에는 5만 명을 넘어 50만 명이 대한민국 전역을 통째로 접수하려 나설지도 모른다. 낙화암에서 뛰어내린 삼천궁녀들의 아픈 마음이 어렴풋이 이해되는 무시무시한 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