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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백의우파민족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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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판 과거사 바로잡기 몇년이나 걸릴까
사이비 진보좌파들은 대한민국의 일부 어두운 과거사를 빙자하여 감히 반역행위를 정당화하지말라!
 
김기백칼럼 기사입력 :  2008/05/31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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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승줄에 양 손이 묶인 장성택이 국가안전보위부원들에게 붙들린 채 법정에 선 모습. (YTN 화면캡쳐) 2013.12.13/뉴스1 © News1 (서울=뉴스1)

통일담론의 주도권을 정통우파가 되찾아 와야!
 
▲   6.25참전 중공군 총사령관 팽덕회와 김일성

 
 
한국사회에서 이른바 "과거사 바로잡기"가 시작된것은 김영삼정권때부터 였지만, 본격화되기 시작한것은 아무래도 김대중정권당시 부터였으며,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명분을 지닌 소위 '과거사 바로잡기 열풍'이 正道를 크게 이탈하여 홍위병식의 무분별하기 짝이없는 무차별적 狂風으로 불어닥치기 시작한것은 사상최악의 덜떨어진 얼치기 좌경집단인 지금의 노무현정권이 출범한 직후부터인것이 분명하다.
 
그동안에도 기회있을때마다 강조해왔거니와, 나는 결코 이른바 "과거사 바로잡기"를 무조건 반대하거나, 백안시 하지 않는다.
 
문자 그대로 하늘이 두쪽이 나는한이 있어도, 적어도 원흉급 친일매국노의 직계후손들이  그 父祖들이 구한말 이래 매국의 댓가로, 혹은  권력의 힘으로 부당한 가렴주구의 숫법으로 수탈해간 막대한 토지를 고스란히, 그것도 대한민국 헌법의 이름으로 상속권을 행사하는 행위와 명백한 친일매국노와 변절자들이 애국지사로 둔갑,포장되어 있는 사례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하는것이며,  그외에도 전두환.노태우 일당의 천인공노할 광주학살극 희생자들과 명백한 고문피해자. 수지김 사건과같이 명백한 간첩조작사건 피해자들을 비롯한 군사독재치하의 피해자들 역시 뒤늦게나마 누명을벗고 명예를 회복해야하고 적절한 피해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대원칙론에는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 <평양에 입성한 이승만 대통령을 환영하는 시민, 1950>  

문제는 이른바 과거사 바로잡기라는 미명하에 자신들과 정파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중잣대를 적용하여 무차별적으로 친일매국노로 매도해버리거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뿌리로부터 부정하고 국가 자체를 전복하려는 목적하에 밀파되거나 지하에서 암약해온 명백한 남파간첩출신자들과 시대착오적인 김일성-김정일광신도들(김일성-김정일 자신이 이미 수십년전부터 그나마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이기를 스스로 포기해버린지 오래인 마당에 그들의 지령에 의해 밀파되거나, 자생적으로 김일성 부자를 신봉하는자들은 결코 공산주의자도 사회주의자도 아닌, 사상최악의 저열한 사이비 종교집단의 말단졸개이자 광신도에 불과한자들임은 두말할것도 없다)까지  소위 "민주화투사"니 "국가유공자"로 둔갑하여 버젓이 적지않은 보상을 받는것으로도 모자라, 심지어 명백한 남파간첩출신자가 무슨 국방부 관련 과거사를 조사한답시고 대한민국의 현역 군장성들을 오라,가라하는 조사관으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따위의 실로 國基를 뿌리로부터 뒤흔드는 해괴한 사례가 적지않을만큼 그 기준이 뒤죽박죽,엉망진창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내재하고 있는것이다.
 
-한국(남한)의 과거사가 잘못되었다고 해서 김일성부자따위가 정통성이 있는것이 결코아니다-
 
언젠가도 몇번 언급한바 있지만, 광복직후부터의 한국현대사는 그 시작인 첫단추부터 잘못꿰어진것이 분명하다는 사실은 그누구도 감히 부정하기 어려운 역사적 사실(객관적 펙트)이며, 한국(남한)사회의 萬惡의 근원은 대단히 불행하고도 유감스럽게도,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이 친일매국노의 잔당을 단호히 척결해버리지 못한것과 가부장적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종신독재체제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    편집부

 
그럼에도, 강정구류들식의 가정법을 잠시차용한다면, 이승만이 만약 그당시만해도 상당수가 생존해있던 친일매국노의 잔당중 대표적인 거물급과악질분자들만이라도 단호히 처단하고, 대통령직을 딱두번만 연임하고 깨끗이 물러났더라면, 이승만은 당연히 한국의 조지 워싱턴으로, 명실상부한 건국의 아버지로 길이길이 추앙받아 부족함이 없었을것이며, 한국의 현대사에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따위는 아예 등장조차 못했을것이고 지금의 우리세대 역시 지금과는 그내용과 질이 크게 다른나라에서 살고 있을것이 분명하다는것이다.
 
▲  강정구

또하나 분명한것은, 이승만이 비록 도저히 돌이킬수 없는 크고도 근본적인 역사적,민족사적 과오와 오류를 범한것이 명백한 사실이기는 하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은 어느모로보나 김일성따위와는 도저히 비교가 안되는 항일독립운동과 建國의 元勳이자 세계가 알아주는 탁월한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가진 강력한 우파민족주의 지도자였던 반면, 김일성이야말로 고작 30대초반의 애숭이 소련군 대위로서 소련점령군의 군화발에 묻혀 들어온 한낱 소련의  꼭두각시였던것이 명백한것이다.
 
▲    편집부


바로 그때문에 6.25전면남침 직후 불과3일만에 수도 서울을 함락한 인민군이 100일가량이나 서울을 장악했음에도 김일성은 쥐새끼처럼 위장한 군용차량으로 서울곳곳을 잠행시찰했을뿐,  감히 단한번의 군중연설도 못했던 반면, 국군과 유엔군이 38선을 돌파하여 잠시 평양을 수복했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이미 팔십을 바라보는 노령이었음에도 당당히 평양을 방문, 수십만 평양시민과 북한동포들이 운집하여 열렬히 환호하는 가운데 당당하고도 감격적인 군중연설을 했던것이다.(이승만과 김일성따위는 애시당초부터 모든면에서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역사적,객관적 자료는 수없이 많고,언제 어느누구와도 얼마든지 논쟁할 용의가 있다)
 
 
▲    편집부

-백범 김구 또한 결코 김일성 따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승만도 이승만이려니와, 이시점에서  필자가  이른바 좌우나보수 진보따위를 막론하고  특히 젊은세대들에게 각별히 강조해두고자 하는것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게도, 말도 안되는 얼치기 사이비 진보좌파들에 의해 이제는 아예, 지금의 주사파 떨거지들의 元祖나 대부쯤으로 왜곡되어있는가 하면,명색이 보수우파 떨거지들에게는 거론하기 께름칙한 기피인물로 인식되고 있는 백범 김구 또한, 실은 상해 임정시절부터 공산주의자란 조국도 모르고 조상도 모르는자들이라 하여,   이승만에 결코 못지않은 강력하고도  분명한 공산주의 혐오론자였으며,김일성따위를 결코 인정한적이 없다는것이다.
 
 

▲   백범 김구

백범선생이 잠시 38선을 넘어 월북하여 김일성.김두봉등을 만난것은 다만,김일성이 비록 손자뻘밖에 되지 않는 애숭이로서 (필자가 알기로 해방직후 김일성이 귀국했을 당시 김일성의 生父인 김형직은 이미 사망했으나, 김일성의 祖父인 김보현은 생존해 있었으며, 그 연령이 김구선생과 비슷했던것으로 알고있다)명백한 소련군의 꼭두각시(괴뢰)이기는 하나,어떻게든 민족분단의 비극을 막지못하면 장차 반드시 엄청난 민족적 대재앙이 초래될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감한 老애국지사로서, 소련군을 등에 업고 북한지역의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한 김일성 일파에게 민족적 양심에 입각한 호소를 한번이라도 해보는수 밖에 없다는 老애국지사의 한조각 붉은마음(一片丹心 )에서 였을뿐, 결코 공산주의를 추호라도 동조하거나, 김일성따위를 민족지도자나 항일투사로 인정해서 單政論을 그토록 반대했던것이 결코 아니라는것이다.
 
▲  북조선인민위원회가 구성된 1947년께 만들어진 대형 유인물. 김일성 당시 북조선인민위
원장 사진 양쪽에 태극기가 배치된 게 눈에 띈다.
 


백범 김구가 그야말로 만의 하나라도 공산주의나(70년대이후부터의 김일성-김정일체제 그나마의 공산주의.사회주의도 스스로 포기한 사상 최악의 사이비 공산주의체제로 변질되었다)김일성 따위에게 추호라도 마음으로 부터 동조했다면, 황해도 출신(그시대 어른들의 고향에 대한 향념과애착심은  지금의 우리세대들은 짐작조차 못할만큼 강렬하고 애틋한것이었다)인 백범이 무려 수십년의 망명생활끝에 얼마든지 돌아갈수 있었던 고향을 등지고, 그것도 대단히 위험한  정치적 박해를 당할것이 분명한 서울로 즉각 귀환해버렸겠는가?
 
-백범 김구의 단정반대론도 옳았고 우남 이승만의 단정론도 옳았다-
 
또하나 분명한것은, 이승만의 소위 정읍발언으로 "남한단독 정부수립론"을 공식화하기 이전인 해방직후부터 이미 북한지역은 소련점령군과 김일성일파에 의해 체계적,계획적으로 소비에트화하기 시작했으며, 김구선생이 월북했을무렵에는 이미 북한지역은 소련군과 김일성일파에 의해 남한과는 별개의 단독정부수립 시나리오가 돌이킬수 없을만큼 확정단계에 있었으며, 스탈린과모택동의 지원하에 중국 팔로군 출신의 조선인들을 중심으로한 '조선인민군'이 체계적인 무장집단으로 정식 군대화되고 있었다는것이다.
 
 

▲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우남  이승만박사

따라서 남북한의 분단은 이승만이나, 미국에 일방적 책임이 있는것이 결코 아니며, 굳이 따진다면 미국과소련 이승만과 김일성의 공동책임이었으나, 한반도 분단의 보다 원천적인 책임과 원인제공자는 바로 일본인것이 분명하다는것이며(일본이 1주일만 더빨리 항복했거나, 소련이 당시의 일.소 불가침 조약을 1주일만 더 지켰더라면, 일본항복직후 소련이 한반도의 절반을 차지할 아무런 이유도 명분도 없었다는 점에서 소련과김일성이 미국과이승만보다 훨씬더 부당했다는것이 공정한 평가일것이다)무려 수백만의 동족이 살상된 6.25 전면남침은, 스탈린과모택동의 승인과지원하에 계획적으로 전면남침을 감행한 김일성이야말로 강대한 외세의 힘을 빌어 수십년에 걸친 외세의 압제에서 이제막 가까스로 벗어난 수백만 동족을 살상케한 패역무도하고도 비열하기짝이 없는 극단적 사대주의자임이 분명하다는것이다.
 
▲   소련군과 함께 들어온 김일성. 완전 애송이다. 당시 평양시민들은 이 ‘김일성’의 모습을 보고 충격 받았다. 신화가 깨지는 순간인 것이다.   


 
어찌 그뿐이겠는가? 그야말로 父傳子傳에 그나물에 그밥으로,  그 아비에 이어 무려 60년이상이나 자신들이 통치하고 있는 인민들에게 善政을 베풀생각은  꿈에도 하지않고 , 실로 엉뚱하게도 수만리나 떨어져 있는  강대한 외세인 미국의 대통령들에게 체제와 정권의 정당성과 안전을 보장해달라고 갖은 구걸을 하다못해, 어줍잖은 핵공갈이나 쳐대고 있는 김정일이야말로 그아비를 능가하는 얼빠진 사대주의자이자 어리석기짝이 없는 희대의 착각과망상에 사로잡혀있는 인간말종임이 분명하다는것이다.
 
▲  `북조선의 가을'이란 사진첩 맨 첫장에 실린 김일성의 모습(왼쪽).1946년 무렵의 김일성
당시 북조선임시인민위원장의 모습. 그때 김일성의 나이가 34살이었다.

 

역사적 사실과 사리가 이토록 自明함에도 ,강정구류들의 사이비진보좌파들의 논법에 의하면 6.25라는 또하나의 천추에 씻지못할 또하나의 통한의 민족사적 오점을 남기게 된것은 결국, 백범 김구의 단정반대론과 우남 이승만의 단정불가피론의 대결에서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승만노선이 승리함으로서 분단이 고착화되었고, 결국 그로인해 6.25라는 민족적 비극이 발생했고, 따라서 모든 책임은 애오라지 미국과이승만에게 있다고 강변하고 있으나 그런 요설,궤변이야 말로 지금 이시각에도 평양에서 임금놀이를 즐기고 있는 김정일을 향한 비열하고도 천박하기짝이 없는 전형적인 곡학아세요 명명백백한 역사왜곡행위이자 자신의 보금자리인 대한민국을 향한 가증스러운 반역행위임이 분명한것이다.
 

▲  6.25직전인1950년3월 열차로 모스코바에 도착 박헌영(왼쪽안경)과함께 성명을 낭독하는 김일성 

 
김일성을 앞잡이로 내세운 당시의 소련이야말로(당시 소련군은 북한지역을 점령하기 무섭게 수풍발전소를 비롯한 일제치하에서의 그나마 쓸만한 공업시설은 모조리 뜯어내어 소련으로 옮겨가기에 급급했다)남쪽을 점령한 미국보다 훨씬더 민첩하고 치밀하게 북한 지역을 소련의 위성국가로 소비에트화 하기시작하는 한편 ,중국 팔로군 출신을 중심으로한 북한인민군의 무장화를 적극지원하면서 하나의 국가체제를 갖추기로 확고한 방침을 굳힌 상황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민족사적 대의명분으로는 백범김구의 단정반대노선이 백천번 옳은것이었지만 우남 이승만의 단정론 또한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노선이었던 것이다.
 
-북한판 과거사를 낱낱이 바로잡자면 최소한 백년이 걸릴것-
 
이제 다시 이른바 과거사 바로잡기 문제로 돌아가 보자.
분명한것은, 저 높디높은 창공에서 만물을 비추이는 해와달(日月)이 존재하는한, 우리가 원하든 원치않든,언젠가는 반드시 <북한판 과거사 바로잡기>를 해야하고, 하지않을수 없는시점이 닥치고야 말것이며, 구소련의 스탈린 격하운동보다 수백,수천배 강렬한 김일성-김정일 격하운동이 2천수백만 북녘민중이 주도하는 가운데 반만년 민족사와 전세계 자유시민의 이름으로 단죄될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것이며, 그것은 역사의 필연이자 만고불변의 철칙이라는것이다.
 
이글의 필자는 다시한번 명색이 우파민족주의자로서 분명히 단언하고 예언해두거니와, 만약 내일당장 평양의 김일성-김정일체제가 어떤형태로든 명백히 종말을 고하거나, 붕괴된다면 그들 희대의 패역무도한 사이비 종교집단이 북한지역을 통치한지가 아직 백년에 훨씬 못미치는 60여년에 불과할지라도 ,그들 父子가 감행하고 자행한 헤아릴수조차없는 죄악상을 낱낱이 가려내고 바로잡자면 ,적어도 그들의 통치기간의 두배에 해당하는 1백년은 족히 걸릴것이라고 단언해 두고자 하거니와 ,실로 참람하게도 우리민족전체를 감히 그 무슨 "김일성 민족"이라고 규정함으로서 반만년 민족사를 송두리째 모독하고 능멸해온 죄 한가지 만으로도 김일성-김정일은 만번죽어 마땅한자들인것이다.
 
-사이비 진보좌파들은 남한의 어두운 과거사를 빙자하여 감히 반역행위를 정당화하지마라!-
 
나는 이제, 그대들이 그토록 매도하는 흠결많은 독재자였던 우남 이승만은 차치하고라도, 김구.안중근.윤봉길.이봉창.유관순.이상재.안창호.한용운.주시경.신돌석.홍범도.김좌진.이청천.나석주....등등의 우리의 수많은 항일 선열들과 민족의 이름으로 분명히 그리고 엄중히 경고해두고자 한다.
 
한국(남한)의 과거사가 비록 제아무리 어둡고 잘못된점이 많은것이 사실이라해도, 민족사적 정통성은 결코 김일성-김정일따위의  사악하고도 패역무도한 희대의 사이비종교 교주.사기꾼들에게 있는것이 아니라,대한제국과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은 <자유 대한민국>에 있다는것을 뼈속깊이 새겨두라!

단기4339(서기 2006)년 11월23일 저녁
인터넷 민족신문 발행인: 김기백

민족신문 임시홈피 http://www.minjokcorea.co.kr
 
 
2006/11/23 [07:01] ⓒ브레이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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