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1162∼1227)과 종교는 서로 어울리는 주제인가. 잔인한 정복자 이미지가 강한 칭기즈칸에게서 종교적 영성을 찾는 것이 어쩌면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 책은 일견 관련 없어 보이는 두 요소를 중심으로, 그의 삶을 새롭게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다른 칭기즈칸 평전들과 차별화된다. 세계 20개국에 출간된 베스트셀러 ‘칭기스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2005년)를 쓴 저자는 20년 동안 몽골제국 연구에 천착한 이 분야 권위자다.
이 책에서 내가 인상적으로 읽은 건 칭기즈칸이 신의 대리인임을 자처하며 점령지의 부패한 종교 권력을 징벌하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언뜻 현대 제국주의 지배를 연상하며 강한 혐오감부터 느끼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가 사회통합의 핵심이던 중세사회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몽골이 세계 공략에 나선 13세기는 유럽의 가톨릭, 중동의 이슬람, 아시아의 불교·도교·유교가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지배했다. 민중들을 착취하는 부패한 종교 권력을 그대로 두고선 광활한 영토의 수많은 민족들을 제대로 다스릴 수 없었다.
부패하지 않은 정상적인 종교들에 대해선 광범한 신앙의 자유를 보장했다. 그는 전장에 나가서도 밤이면 다양한 종교의 성직자들을 불러 강론을 청해 들었다. 저자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칭기즈칸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종교의 자유’를 헌법에 규정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몽골군이 각국의 종교 중심지를 공략하는 데 힘을 기울인 것은 화려한 보물을 약탈하려는 목적도 물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한정적인 군사 자원을 동원해 종교적 상징물을 철저히 파괴했다. 그 대신 점령지 내 치안을 확립한 뒤 도로, 항구 등 인프라를 깔고 세금을 낮췄다. 저자는 “몽골은 (점령지에서) 광신적 종교의 족쇄를 쳐부숨으로써 전례 없는 글로벌 번영의 시대를 열었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