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체결된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은 1945년 광복 이후 두 나라가 체결한 첫 군사 협정이다.
|
관련기사 | |
|
GSOMIA는 상징적 의미도 크지만, 양국의 지정학적 위치상 군사적 실익이 적지 않다는 게 국방부의 설명이다. 무엇보다 두 나라가 북한 핵 미사일 관련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공동의 위협으로 떠오른 북한 핵·미사일에 대한 대응 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GSOMIA에 따라 한국이 얻는 이익이 일본보다 적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양측에서 제공하는 정보가 양과 질 측면에서 균형이 맞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날 체결된 협정문은 2급 이하 군사 기밀을 공유하는 데 있어 두 나라가 보안을 어떻게 담보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을 담고 있다.
제 4조에는 교환할 군사 비밀 정보의 등급이 정의돼 있다. 한국의 '군사 Ⅱ급 비밀'은 일본의 '극비·특정 비밀에, 한국의 '군사 Ⅲ급 비밀'은 일본의 '비(秘)'에 상응하도록 규정돼 있다.
군사비밀보호법에 따르면 군사 비밀은 누설 시 국가 안전 보장에 미치는 위험의 정도에 따라 Ι~ Ⅲ급으로 나뉜다. Ι급은 '치명적 위험', Ⅱ급은 '현저한 위험', Ⅲ급은 '상당한 위험'이다.
군사 'Ι급 비밀'은 이번 협정문에 등장하지 않는다. 국방부 관계자는 "일본과는 Ⅱ급 이하의 군사 비밀만 교환하게 된다"고 말했다.
물론 비밀 등급은 두 나라가 임의로 정하기 때문에 가치가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 일본이 '극비'로 분류해 우리 측에 제공하는 정보가 우리 입장에서 보면 '대외비' 수준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과연 어떤 정보를 넘겨 주고, 어떤 정보를 받아올 수 있을까.
군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선 우리나라는 백두(신호), 금강(영상) 정찰기가 수집한 감청·영상정보 (시긴트·SIGINT)를 일본에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백두·금강 사업은 국방부가 독자적으로 대북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1991년부터 추진한 정찰기 도입 사업이다. 이때 도입된 백두 정찰기는 휴전선부터 백두산까지의 전파 및 주파수 등 신호 정보를 감지할 수 있고, 금강 정찰기는 휴전선부터 금강산까지의 영상 및 음성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금강 정찰기 고위급 탈북자 또는 북·중 접경 지역의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수집된 대북 정보(휴민트·HUMINT)도 일본에 제공될 전망이다. 휴민트는 미국이나 일본이 가장 부러워하는 첩보 수단으로 꼽힌다.
1997년 고(故)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제3국에서 망명을 원했을 때 우리나라와 미국이 신병을 확보하려고 치열한 첩보전을 벌였던 사례는 휴민트의 가치를 잘 말해준다.
일본은 또 우리 해군의 214급(1800t급) 잠수함의 수중 탐지 정보 제공도 원하고 있다. 일본 해상 자위대 관계자들은 방한 시 우리 해군의 잠수함 기지 방문을 가장 원한다고 한다. 그만큼 일본으로서는 절실한 정보다.
우리가 얻는 것도 많다.
일본의 해상초계기 일본은 해상초계기를 77대나 보유하고 있어 한국(16개)보다 한반도 해역에서 북한 잠수함을 탐지·추적하는 능력이 우리 군 보다 빠르게 광범위하다는 게 국방부의 설명이다.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탑재한 신포급(2000t급) 잠수함의 이동 경로도 신속히 파악해 우리 측에 제공할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북한의 잠수함이 노후화 돼 먼 바다까지 나가 작전하는 것이 제한되기 때문에 일본 해상 초계기의 북한 잠수함 정보도 그다지 가치가 없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일본 군용기와 함정이 우리 영토인 독도 인근 해상까지 와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우리 정부가 허락하지 않을 것이고, 더욱이 북한 근해까지 비행해 잠수함 정보를 수집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 국방부가 기대하는 수준의 북한 잠수함 관련 정보를 얻기는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북한의 SLBM 시험 발사 장면 이런 이유를 들어 이번 GSOMIA이 균형이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종연구소 홍현익 박사는 "협정이 발효되면 일본 초계기 77대로 탐지되는 정보 등을 좀 받겠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한국의 잠수함 정보를 다 줘야 한다"며 "우리가 주는 휴민트, 인적 정보 같은 건 일본에게 너무나 소중한 정보인데,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협정 체결 과정에서 일본은 매우 적극적인 자세였다는 후문이다. 일본은 올 8월 초 북한이 쏜 노동 미사일이 자국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떨어졌을 때 발사 징후를 미리 포착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부터 일본은 한국이 보유한 북한 핵·미사일 정보에 접근하기 위해 이번 GSOMIA을 강하게 추진했다고 한다.
물론 일본의 정보 수집 능력이 우리보다 훨씬 앞서가고 있다는 반론도 있다.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장은 "수많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때 세계 많은 정보 기관 중에 일본이 가장 먼저 조기 탐지하고 분석도 제일 신속했던 때가 많았다"면서 "정보 교류를 하다가 우리한테 위험하거나 저쪽에서 성의가 없다면 우리도 성의 없이 하면 되는 것이지 미리부터 (협정을) 반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우리 군으로서는 일본의 정보수집 위성5기(광학 2, 레이더 2, 예비 1기)로 수집한 영상·사진 정보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은 이지스함 6척(2척 추가 건조중), 탐지거리 1,000km 이상의 지상레이더 4대, 조기경보기 17대 등을 보유하고 있어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 움직임 등도 일본으로부터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의 이지스함 그러나 일본이 한국에 제공할 수 있는 정보는 미국이 군사 위성을 통해 수집한 'SI'(특별취급정보)와 상당히 중첩될 가능성은 있다. 우리 군은 일본으로부터 야간 또는 나쁜 기상에서 북한 지역을 촬영한 영상 정보를 원하고 있는 데 이는 미국이 수집한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미국 정보당국이 SI를 제공하면서 그걸 '무기'로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며 "첩보 수집 출처가 다양화될 수록 양질의 정보 생산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에 빌미를 줄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세종연구소 홍현익 박사는 "한반도 위협만 생각할 게 아니라 일본이라는 나라가 진짜 동북아의 평화를 바라고 있는가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