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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여성, 영사관에 억류된 2년간 눈물로 쓴 일기]
천국의 문? 또다른 지옥 - 北에선 의사였지만 가난 탈북해 中시골 팔려갔다 탈출… 겨우 찾은 영사관은 '지하감옥'
 
조선일보 기사입력 :  2012/03/1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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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한 女의사, 지하감옥에서 2년동안 갇혀…

  • 석남준 기자
  • 박상기 기자
  •  

    입력 : 2012.03.12 03:17 | 수정 : 2012.03.12 07:08

    [탈북 여성, 영사관에 억류된 2년간 눈물로 쓴 일기]
    천국의 문? 또다른 지옥 - 北에선 의사였지만 가난
    탈북해 中시골 팔려갔다 탈출… 겨우 찾은 영사관은 '지하감옥'
    화도 잘 내지않던 내가 - 종일 울고, 머리를 쥐어뜯고…
    처음엔 수면제 2알, 이젠 6알… 뭐든 때리고 깨버리고 싶다
    그래도 희망을 보다 - TV와 책에서 처음 만난 세상
    '사랑'은 이상한 말이 아니더라… 꿈이 생겼다, 심장이 뛰었다

    "저는 지하감옥에서 언제 나갈지 모르는 무기수(無期囚)로 2년을 살았습니다."

    본지는 지난 2008년 4월부터 2010년 3월까지 700여일 동안 중국의 한 영사관에서 한국행(行)을 기다리며 '감금생활'을 했던 탈북자의 일기를 입수했다. 이정(가명·34)씨는 북한에서 의사지만, 장마당에 의약품을 내다 팔 정도로 생활고(苦)에 시달렸다. 탈북 전 남편이 죽은 뒤 이씨의 생활은 한층 어려워졌고, 지난 2007년 두만강을 건너 탈북을 감행했다. 탈북 직후 이씨는 한 조선족의 꾐에 넘어가 중국 산둥성의 농촌마을로 팔려갔고, 4개월 만에 가까스로 탈출해 들어간 곳이 중국의 한 한국 영사관이었다.

    지난 10일 이정(가명)씨가 2년 동안 주중 한국 영사관에서 생활하며 잡지 행간에 빼곡히 쓴 일기를 보고 있다. 이씨는 “탈북자 북송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이 많아져 일기 공개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이씨는 "영사관에 들어갈 때 천국의 궁전에 들어가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씨가 영사관에 들어가 한국땅을 밟는 데는 정확히 706일이 걸렸다. 본지가 입수한 100여 페이지의 일기에는 지하 숙소와 옥상만을 오가는 답답한 영사관 생활과 언제 한국땅을 밟을지 모르는 불안과 초조함, 그로 인해 피폐해져 가는 한 인간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아마도 내가 정말 미친 것 같다"

    이씨를 비롯한 탈북자들은 영사관에서 머물던 곳을 '지하 감옥'이라고 불렀다. 이씨의 일과는 TV, 책을 보거나, 하루에 한 시간 영사관 건물 옥상에 올라가는 것뿐이었다. 이씨는 2009년 8월 15일자 일기에 "내가 생활하고 있는 곳에는 엘리베이터와 나무로 된 쪽문이 있다. 엘리베이터는 영사관 직원증을 눌러야만 탈 수 있다. 나무로 된 문은 우리가 직원들과 옥상으로 올라갈 때 외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고 썼다.

    폐쇄된 공간에서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면서 이씨는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렸다. "외롭고 쓸쓸하고 하루종일 눈물만 흘리는 날도 있었다. 미친 사람처럼 제 머리를 집어 뜯을 때도 있었다(2009년 7월 9일)." "초기에는 (수면제) 2알을 먹었는데 점차 늘린 것이 6알로 되었다. 잠자리에 누워서 1시간 30분 정도 뒤척이다가는 나도 모르게 약이 들어있는 판대기에 손이 가서 막 들추어 먹는다(2009년 8월 1일)."

    이씨가 탈북을 도와준 인권단체 대표를 생각하며 셔츠 위에 수놓은 편지.
    영사관 생활이 계속되며 이씨는 스스로가 폭력적이고 신경질적으로 변해가는 모습도 일기에 썼다. "싸워볼 사람만 있으면 때리고 싶고 무엇이든 깨버리고 싶다(2009년 7월 15일)." "아마도 이 감방에서 내가 정말 미친 것 같다. 북한에서도 큰 소리 내지 않고 사람들과 웃으면서 잘 지내오던 나인데 누가 나를 이렇게 미친여자로 만들고 있는지…(2009년 11월 2일)."

    고양이도 부러울 만큼의 외로움

    외로움도 이씨를 덮쳤다. "6마리나 되는 고양이들이 우리 지하 감방 옆 주차장에 모여 잠을 잔다. 내가 여기에 1년 4개월 사는 동안 새끼까지 낳고 아무 곳이든 갈 수 있는 고양이들이 너무 부러웠다(2009년 8월 13일)."

    2009년 9월 4일자 일기에는 "옥상으로 올라가니 어린아이들을 학교에서 데리고 오는 아줌마들의 발걸음이 보였다. 그 뒤에서 옹기종기 걸어가는 애는 내 아들을 보는 듯했다"고 적었다. 이씨는 북한에 10살 된 아들을 두고 있다.

    이씨는 영사관 직원들에 대한 섭섭한 감정도 숨기지 않았다. "영사님께서 토요일에 이 지하에 출현하셨다니 믿을 수가 없다. 나는 '안녕하세요, 들어오세요'라고 했는데 (영사는) 복도에 선 채로 들어오지 않고 말을 잇는다. '우리는 애를 쓰고 있는데 중국정부에서 보내주지 않습니다. 그럼 잘 지내세요'라고 말하고 가버렸다(2009년 8월 22일)." 2009년 10월 31일자 일기에서는 "오늘은 아침 9시에 한 명의 상담의사와 2명의 통일부 여성 직원들이 내려왔다. 그런데 1분도 걸리지 않게 둘러보고는 곧바로 올라가버렸다"고 기록했다.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이씨의 일기에선 언제 한국땅을 밟을 수 있을지 모르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북한에서 자란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지금까지 이상한 것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TV와 책을 통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세상과는 다른 사랑의 문화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심장으로 느끼게 됐다(2009년 9월 23일)." 2009년 10월 1일자 일기에서는 "옥상에 올라가니 신기한 꽃이 피어 있었다. 나도 이 의지가 장한 꽃처럼 어느 때든지 내가 꽃을 피우고 열매 맺을 수 있는 희망과 꿈을 가지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썼다. 이씨는 결국 영사관에 들어간 지 23개월 만인 지난 2010년 3월, 우리 정부와 중국 정부 간의 합의를 통해 한국땅을 밟았다.
    [천자토론] 중국의 탈북자 북송,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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