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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훔친 할머니에 벌금형 선고한 '판사의 재치'
 
[중앙일보] 기사입력 :  2010/05/03 [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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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인내와 불굴 [중앙일보]


2010.05.02 20:45 입력 / 2010.05.03 03:10 수정
뉴욕 공립도서관 입구에 인내(patience)와 불굴(不屈, fortitude)이라는 이름의 두 마리 사자 상이 서 있다. 그 이름은 이탈리아계의 한 법률가에게서 유래한다.

춥고 배고팠던 대공황 시절의 어느 날, 굶주리는 어린 손녀들에게 먹일 빵 몇 개를 훔친 할머니 한 분이 뉴욕시 즉결법정에 소환됐다. 할머니의 사정이 워낙 딱한지라 관용을 베풀 수도 있으련만, 판사는 매정하게도 벌금 10달러를 선고했다. 그러고는 뜻밖의 말을 덧붙였다. “가난한 할머니가 손녀에게 먹일 빵을 훔쳐야만 하는 이 비정한 도시의 시민들에게도 잘못이 있습니다. 그동안 배불리 먹어온 제가 벌금 10달러를 내겠습니다. 방청인 여러분도 각자 50센트씩의 벌금을 내십시오.” 판사는 자기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 모자에 넣은 다음 방청석으로 모자를 돌렸다. 법정에 앉았다가 난데없이 억울한(?) 벌금형을 선고받은 방청인들은 항의는커녕 웃음 가득한 얼굴로 다투듯 모자에 돈을 넣었다.

판사는 그렇게 모인 돈 57달러50센트 중에서 벌금 10달러를 뺀 47달러50센트를 할머니의 손에 쥐여주었다. 연방하원의원을 거쳐 뉴욕시장을 세 차례나 역임한 피오렐로 라과디아(f. la guardia)가 담당 판사를 대신해 임시로 즉결재판을 맡았던 때의 일화다.

라과디아 시장은 대공황에 이어 제2차 세계대전의 험난한 세월을 겪고 있던 뉴욕시민들에게 포퓰리즘의 인기 대신 ‘인내와 불굴’을 요구하면서 과감한 개혁조치를 단행해 나갔다. 훗날 평화를 되찾은 뉴욕시민들은 공립도서관 앞의 두 마리 사자 상에 인내와 불굴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새로 지은 공항을 라과디아 공항으로 명명(命名)했다.

지금도 뉴욕시민들은 키가 매우 작았던 라과디아의 이탈리아식 이름 피오렐로(fiorello)를 떠올리며 ‘작은 꽃(little flower)’이라는 애칭으로 그를 기억하고 있다. 『미국 민중사』를 쓴 하워드 진은 라과디아를 ‘20세기의 양심’이라고 불렀다.

나는 우리나라의 법관들도 가끔은 ‘비정한 도시에 사는 죄의식’으로 마음 아파할 줄 아는 작은 꽃들이 되었으면 한다. 아니 그 이상으로, 이 나라의 여야 정치지도자들이 라과디아 시장처럼 따뜻한 인간애로 국민에게 감동을 주고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해가는 인내와 불굴의 리더십을 발휘해주기 바란다.

금강산 앞바다의 새벽빛에 반해 바닷가로 나선 비무장의 여성을 총으로 쏘아 죽인 북한은 이번에는 천안함에 대한 테러 의혹을 받고 있다.

애초부터 북의 혐의를 벗겨주기 위해 안간힘을 써온 어떤 이들의 노력은 성공할 가망이 거의 없어 보인다. 거듭되는 인명살상의 도발에도 그저 ‘햇볕’만을 외치는 것은 ‘인내’가 아니다. 그렇다고 당장 군사적 보복에 나서야 한다는 성급한 주장 또한 ‘불굴’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확고한 목표가 없는 인내는 굴종과 다름없으며, 치밀하고 원대한 전략이 결여된 불굴은 만용일 뿐이다. 대한민국을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나라’가 아니라 ‘사랑하는 나의 조국’으로 든든히 지켜내려는 굳은 결의가 인내의 전제가 되어야 하며, 억압과 빈곤의 굴레에 얽매인 북녘 동토(凍土)에 자유·인권·민생의 꽃을 피우려는 염원이 불굴의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름다운 인간애로 시민들의 신뢰를 얻은 라과디아 시장은 그 신뢰에 힘입어 시민들에게 인내와 불굴을 요구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오히려 정치인들에게 인내와 불굴을 요구해야 하는 딱한 상황이다.

두 동강 난 것이 어찌 천안함뿐이랴? 나라를 결딴낼 듯한 당파싸움으로 국론을 두 동강 내고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정치인들이 무슨 염치로 주권자인 국민에게 인내와 불굴을 호소할 것인가? 리더십은 곧 신뢰의 문제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신뢰는 모유(母乳)와도 같은 것’이다(j 러스킨). 대공황과 전쟁의 위기에 빛났던 라과디아의 인내와 불굴을 뉴욕시민들은 두 마리의 동물로 형상화했다. 유순해 빠진 양도, 사납기만 한 곰도 아니었다. 긴장된 자세로 끈기 있게 기다리다가 온몸을 솟구쳐 단숨에 기회를 덮치는 사자, 숲의 제왕인 사자였다.

우리 또한 인내와 불굴의 두 마리 사자로 오늘의 엄중한 시련을 이겨내야 한다. 그것이 봄꽃처럼 싱싱한 젊음을 조국의 바다에 바친 순국장병 마흔여섯 분과 금양호 선원 아홉 분의 뜻일 것이라 믿는다.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전 서울중앙지방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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