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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들을 감방 동료로 맞이해 같이 밥 먹고 똥 쌀 수 있다면…”
청담동 룸살롱 마담도 경악한 어느 판사의 황당한 추태
 
조선일보 기사입력 :  2014/08/03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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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들을 감방 동료로 맞이해 같이 밥 먹고 똥 쌀 수 있다면…”

  • 無名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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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4.08.02 11:14 | 수정 : 2014.08.02 11:29

      [편집자 주]
      이름을 밝히지 않은 50대의 필자는 최근 전세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바람에 횡령죄로 법정구속돼 서울 성동구치소에서 3개월 동안 지냈다. 필자는 자신이 겪은 구치소 풍경을 르포 형식으로 담아 《월간조선》에 보내왔다. 필자의 주관이 독자에게 다소 왜곡되게 비칠 수 있으나 경험과 사실에 근거해 썼다고 필자는 말했다. 형무소 이감 전의 구금 중인 상태도 모두 ‘수형자’로 통일했다.

      
	성동구치소 내부 풍경/ 월간조선DB
      성동구치소 내부 풍경/ 월간조선DB
      8동에 수감된 1450번 수형자는 양 볼이 움푹 패어 합죽이 같았다. 말을 할 때 보니까 아랫니 양쪽에 어금니가 없었다. 그는 운동시간이 되면 운동장 입구에 서서 두 손을 합장하며 동료 수형자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가 처음 보는 나에게도 먼저 합장하며 “행복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기에 그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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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이름은 모른다. 감옥의 관행에 따라 묻지 않았다. 그는 50대 초반의 호리호리한 체구로 동작이 민첩하며 발놀림이 예사 솜씨가 아니었다. 교도관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았다. 운동시간에 양아치들이 힘이 약한 수형자를 괴롭히면 그가 점잖게 나서서 제지했다. 천성은 악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한번은 이런 말을 했다. 상습 절도혐의로 구속된 어느 수형자의 사연이었다.

      “어제 오전 동부지방법원 항소1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피고인은 30대의 젊은이인데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도둑질하며 먹고살았습니다. 서울 강남의 어느 모텔에 들어가 TV 리모컨, 수건, 화장품, 물잔 등 돈이 되는 것들을 들고 나가다가 모텔 측의 신고로 붙잡혔습니다. 절도 액수는 통틀어 17만원으로 많지 않으나 그 전에 두 건의 절도죄로 옥살이를 한 전과가 있어 구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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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수형자는 징역 1년6월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같은 죄를 세 번이나 저지르면 법원은 정상참작을 해주지 않는다. 누범(累犯)들은 이런 사정을 잘 알지만 형량을 몇 달이라도 줄이기 위해 무조건 항소한다. 그러지 않으면 1년6개월을 고스란히 감옥에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수형자가 구속된 뒤 뒤늦게 아버지라는 사람이 나타나 아들의 면회를 왔다. 아버지는 젊었을 때 가정형편이 어려워 아내와 이혼했는데 뒤늦게 아들의 수감소식을 듣고 찾아온 것이었다. 근 20년 만에 아버지와 재회한 아들은 희망을 보았다.

      동부지법 항소부 재판장의 따뜻한 마음

      아들은 재판장에게 선처해 주기를 바라는 반성문을 썼다.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는 아버지가 출소 후 자신을 보살펴주기로 했으며, 앞으로는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겠다는 내용이었다. 어제는 이 아들의 결심 재판이었다. 그간의 정황을 설명한 1450번 수형자가 말을 이어나갔다.

      “아들이 최후 진술에서 아버지가 자신을 보살펴주기로 했다는 취지로 진술하자 재판장이 방청석을 쳐다보며 ‘피고인의 아버지 ○○○씨가 방청석에 있으면 자리에서 일어나주십시오’라고 말했어요. 재판장은 반성문을 읽었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일어나자 재판장은 그 사람이 피고인의 아버지가 맞는지를 확인한 후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피고인이 출소하면 거처할 집이 있습니까?’

      ‘제 집에서 제가 데리고 같이 살 것입니다.’

      ‘피고인의 부친께서는 현재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먹고살 정도는 됩니다.’

      ‘피고인에게 일정한 직업이 없으면 또다시 범죄를 저지르기 십상인데, 부친께서는 무슨 대책이라도 세워놓았습니까?’

      ‘제 아들이 어린 시절에 두 번의 절도죄를 저지른 것은 모두 제 잘못입니다. 제가 아내와 이혼하고 살길이 막막해 자식을 버렸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아버지로서 아들을 책임지고 보살피겠다는 것을 재판장님 앞에 맹세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 약속을 믿겠습니다.’

      이 재판을 지켜본 수형자들이 모두 울었다고 합니다. 재판장이 법정에 나온 피고인의 아버지를 상대로 심문한 것은 우리나라 재판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들었습니다. 재판이 끝나고 피고인을 법정에서 데리고 나간 교도관이 법정 밖에 나오자마자 바로 이렇게 말했답니다. ‘이제 너는 살았다. 재판장이 너한테 관심을 보였다는 것은 집행유예로 풀어주겠다는 의미야.’

      모였다 하면 판사와 검사를 성토하던 구치소 운동장에서 모처럼 판사를 위한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감시하던 교도관도 빙그레 웃었다.

      검사·변호사를 깔보는 판사의 우월 의식

      한 번은 판사들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자 백발에 혈색이 좋은 수형자가 끼어들었다. 면회실에서 나와 몇 차례 인사를 나눈 적이 있는 변호사 사무장이다. 그는 사건을 잘 처리해 주겠다는 명목으로 의뢰인의 돈을 받았다가 변호사법 위반으로 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변호사가 의뢰인의 돈을 받는 것은 합법이지만, 변호사 사무장이 돈을 받으면 변호사법 위반이다.

      변호사 사무장은 자기가 직접 목격한 판사들의 지저분한 모습을 이야기했다.

      “오후 5시가 조금 지나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모시던 변호사가 나를 급히 찾았어요. 돈 가진 거 있으면 전부 빌려달라는 겁니다. 무슨 일인가 물었죠. 사법연수원 동기인 검사가 판사 두 분을 모시고 저녁을 하는데 판사들과 인사도 나눌 겸 나오라는 연락이 온 거예요.”

      판사나 검사가 변호사에게 물주 노릇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일은 변호사로서는 결코 싫은 일이 아니다. 물주 노릇을 하면 으레 보상이 따르기 마련이다.

      “사무실 금고에 천만원 이상의 현금을 쌓아둔 개인 변호사는 많지 않습니다. 밥값과 술값은 카드로 계산하면 되지만 차비나 2차비 명목의 봉투를 주려면 적어도 현금 기백만원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은행 마감 시각이 지나고 연락이 왔기 때문에 툴툴댔어요. 우리 변호사 말이, 오후 5시가 넘어서 저녁을 먹자 연락하는 판사나 검사가 제일 밉다는 거예요. 그런 날은 예외 없이 2차, 3차까지 가게 된다고 합디다.”

      “그래서 어떻게 조치하셨습니까?”하고 내가 물었다.

      “변호사가 부탁한 현금 500만원을 다섯 개 봉투에 나눠 담고 술집으로 찾아갔습니다.”

      “청담동에서 물 좋기로 유명한 집입니다. 술값이 비싼 대신에 마담이 아가씨들 교육을 잘 시켜 고객들에 대한 보안이 철저한 곳입니다. 우리 변호사가 높은 분들을 접대할 때 애용하는 룸살롱입니다. 얼굴을 아는 마담이 나를 보자마자 다른 방으로 안내하더니 ‘새로 온 손님들의 신분이 뭐냐?’고 묻는 겁니다. 그 이유를 물었죠. 변호사님이 모시고 오는 손님들은 다 점잖은데, 오늘 온 사람들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아가씨들 가슴에 손을 집어넣고 스커트를 들추는 바람에 아가씨들이 혼비백산했다는 겁니다. 그날 처음 모신 판사님들이 개구신처럼 행패를 부린 겁니다. 내가 마담한테 그랬어요. ‘판사님들이 스트레스를 풀려고 온 거니까 기분 나쁘지 않게 최선의 서비스를 다해 달라’고요. 돈이 든 대형 봉투를 변호사에게 건네주고 나가는데, 한 판사가 나 보고 ‘술 한잔 먹고 가라’고 해요. 그러면서 폭탄주를 만드는데, 그 제조법이 어떤 줄 아세요?”

      변호사 사무장이 계속 말을 이었다.

      “얼음을 담는 통에 양주와 맥주를 붓고 그 안에 남은 과일 안주들을 으깨어 넣은 후 아가씨들 속옷을 빠뜨린 폭탄주예요. 이 폭탄주를 판사가 자기 구두에 붓더니 나보고 마시라는 겁니다. 내 구두에 따라주면 억지로라도 마시겠는데, 고린내 나는 남의 구두 속에 든 술을 어떻게 먹겠습니까? 잠시 꾸물댔더니 ‘고귀한 판사가 구두에 하사해 준 술을 일개 변호사 사무장이 마다하다니’하며 호통을 치는 겁니다.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얼른 한잔을 먹고는 바로 나왔지요.”

      멸치, 동나다

      장마철엔 운동을 못 한다. 수형자들의 고역은 이뿐만이 아니다. 채소 값이 폭등하니 그 맛좋은 김치 배식량이 반으로 준다. 감방마다 김치를 더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어른 주먹만 한 감자는 어린이 주먹 정도의 작은 감자로 대체되었다.

      장마의 여파로 수형자들이 돈 주고 구입하던 멸치 공급도 중단되었다. 조미한 상태의 멸치에 참기름 몇 방울을 떨어뜨려 먹으면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다. 멸치는 감방에서 철분 보충을 위해 필수적인 음식이었다. 장마 며칠 전에 우리 감방의 어머니 격인 주임님(교도관)이 “올해는 비가 유난히도 잦으니 멸치를 많이 확보해 두라”고 조언하였지만, 우리는 건성으로 들었다.

      우리 방의 멸치 재고량은 이틀치에 불과했다. 식사 때 두 팩을 먹었던 멸치가 한 팩으로 줄었다. 방장은 멸치 대신에 김 2주치를 한꺼번에 구입했다. 라면도 박스째로 사들였다. 감방이라고 식품 사재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멸치를 대체할 철분 보충 식품으로 우리는 오징어무침을 만들기로 했다. 재료는 마른 오징어와 사이다. 페트병에 든 사이다를 3분의 1가량 따라낸 뒤 그 속에 잘게 자른 오징어를 집어넣어 하루를 숙성시키면 마른 오징어가 사이다에 불어 매우 부드러워진다. 꺼낸 오징어를 고추장과 참기름에 버무려서 즉석에서 바로 먹으면 오징어회가 되고, 두고두고 먹으면 오징어무침이 된다.

      장마철에 야채 섭취를 늘리기 위해 우리 방에서는 수요일 저녁과 금요일 점심 때는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수요일 저녁에는 열무김치와 양파, 두부를 넣어 비볐고, 금요일 점심에는 콩나물 무침과 열무김치, 참치를 넣었다. 밥 위에 마가린을 녹여 골고루 비빈 다음 맵지 않을 정도의 고추장을 넣어 버무린 후 여기에 열무김치와 콩나물 무침, 잘게 썬 프랑크소시지나 참치, 김 등을 넣고 고소한 맛을 내기 위해 참기름을 넣어 버무리면 전주비빔밥 부럽지 않은 비빔밥이 된다. 이를 각자의 밥그릇에 퍼 주는데, 비빔밥을 만든 날은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으려고 서로 눈치를 본다.

      우리 방은 40대가 세 명이고, 50대가 1명, 60대가 1명이었다. 40대의 엄청난 식욕을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먹는 음식 가지고 싸우는 것처럼 치사한 게 없다. 60대의 어르신과 50대의 내가 주로 양보했다.

      비빔밥을 먹은 날은 이상하게도 소화가 빨랐다. 양이 적은데다 소화마저 빠르니 숟가락 놓은 지 한 시간쯤 지나면 허기가 온다. 이때의 간식거리가 바로 초코파이다. 초코파이에 두유를 곁들이면 달콤하기 그지없다.

      감방에서도 돈만 있으면 간식거리가 풍성하다. 감자칩, 고구마칩, 양파칩 등을 비롯하여 시중에서 유통되는 온갖 스낵류의 구매가 가능하다. 내가 즐겨 먹었던 간식은 오징어 땅콩, 땅콩강정, 통크, 까메오, 고소미, 오감자, 예감, 포카칩 등이다.

      빵의 경우에도 단팥빵이나 소보로빵은 기본이고, 검은깨가 섞인 소보로에서부터 혼당 코코아 소보로, 모카 소보로, 초코 소보로 페이스트리, 초코 페이스트리, 딸기 페이스트리, 애플 페이스트리, 혼당 딸기 크로와상, 미니 고구마 파이 등 종류가 다양하다.

      감방에서 ‘인절미(?)’도 만들어

      고추장, 참기름, 멸치, 김 등 기본 반찬은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 구입이 가능하고, 수형자들의 육류 보충 차원에서 프랑크소시지와 떡갈비가 매달 번갈아 제공되었다. 중닭 한 마리를 3등분 낸 훈제 통닭은 저녁식사 후의 출출한 시간에 요깃거리로 안성맞춤인데, 1만5000원이면 다섯 명의 수형자가 넉넉히 먹을 수 있다.

      하루는 부방장이 간식용으로 인절미를 만들었다. 남은 밥을 손으로 계속 주물러 차지게 한 후 땅콩강정 과자를 잘게 부수어 그 위에 뿌렸다. 땅콩강정의 노란색이 인절미 고물을 연상시켰고 땅콩의 고소한 맛이 식욕을 돋우었다.

      수형자들의 1일 급식비는 국가 예산에 책정돼 있다. 예산이 넉넉지 않아 값비싼 육류나 생선보다는 야채가 많이 공급된다. 그렇긴 해도 성인이 1일 섭취할 영양소로는 부족함이 없다. 하루 식사량이 2500kcal다.

      구치소 측은 매달 수형자들에게 부식물 차림표를 배포했다. 이 차림표는 TV 바로 밑 수형자들의 공용 게시판에 부착한다. 차림표에는 수형자들이 매일 먹는 반찬의 종류와 원산지가 기록돼 있다. 소고기의 경우엔 대부분 국의 형태로 제공되고, 돼지고기는 김치와 볶아서 나온다. 김치와 볶은 돼지고기가 배식 되는 날은 싱싱한 상추와 쌈장이 곁들여진다. 닭고기도 채소와 볶음 형태다. 소고기는 호주산이며, 쌀과 닭고기, 돼지고기, 김치류는 모두 국내산이다.

      하루 세 끼 식사 중 육류가 빠지는 날은 없다. 햄과 야채 조림, 카레, 닭개장국 등으로 공급된다. 찜질방에서 즐겨 먹는 삶은 계란도 돈을 주면 구입이 가능하다. 자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2주일에 한 번씩 자장이 제공되기 때문에 그 자장을 밥에 얹어 비벼 먹으면 그날은 반드시 과식을 하게 된다.

      생선은 통째로 나오지 않고 조리거나 국 형태로 나오는데, 내가 감방에서 즐겨 먹은 것은 생선묵과 떡을 섞은 생선묵 떡볶음이다. 서울 홍익대 앞에 즐비한 떡볶이집보다 내 입에 더 맞았다.

      홍합미역국은 간이 짜지도 맵지도 않은데다 홍합과 미역의 양이 풍성해 웬만한 시중 식당보다 일품이었다. 육류보다 생선과 야채를 즐기는 나는 구치소의 샐러드 맛에 반했다. 양배추와 건포도, 땅콩 등을 마요네즈에 버무린 이 샐러드는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1류 호텔 양식당 못지않았다. 이 맛좋은 샐러드를 플라스틱 젓가락으로 집으면 많이 집히지 않는다. 자주 젓가락이 가면 동료들에게도 미안하다.

      감방 생활 중 처음 만난 여성 수형자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는 감방에서도 술을 제조해서 먹었다고 한다. 대형 콜라병에 남은 밥과 요구르트를 넣어 밀폐시킨 후 한 달간 담요 속에 보관하면 기분을 알딸딸하게 해주는 술이 된다.

      하지만 술은 사고의 원인이다. 교도소 측은 수형자들의 술 제조를 막기 위해 요구르트 반입을 금지시켰다. 요즘 수형자들이 감옥에서 요구르트를 먹을 수 없게 된 것은 요구르트를 이용하여 술을 제조한 선배 수형자들 탓이다. 수형자들의 못된 행동을 차단하기 위해 교도 행정은 더 엄격해질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는 감옥에서도 단체 영화 관람이 있었다. 남녀 수형자들이 몇 달에 한 번씩 대강당에 모여 영화를 보는 일종의 문화행사였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암수가 어울려 사는 것이 자연의 조화다. 이 조화가 깨어질 때 생태계는 탈이 난다. 남자나 여자가 혼자 살수록 잔병치레가 많은 것도 자연의 조화가 깨어졌기 때문이다.

      감옥에서의 단체 영화 관람은 남녀 수형자들에게 자연의 조화를 맛보게 하는 소중한 기회였다. 하지만 그 기회도 여자 수형자가 임신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중단되고 말았다. 그 후 감옥에서 남자 수형자가 여자 수형자를 만날 기회는 사라졌다.

      수감된 수형자 중에서, 특히 젊은 수형자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주체할 수 없는 성욕을 억제하는 일이다. 아침 기상 시각이면 팬티가 텐트처럼 부풀어 오른 젊은 수형자를 나는 여러 번 보았다. 우리 방 부방장도 아침마다 ‘텐트’ 처리에 애를 먹었다. 어떤 때는 우리에게 정식으로 양해를 구한 후 화장실에 들어가서 자위행위를 하곤 했다.

      감옥에선 누구나 냄새에 민감하다. 화장실 악취와 고리타분한 담요 냄새에 익숙하다 보니 어쩌다 향수 냄새를 맡으면 발정 난 개처럼 사지를 비비 꼰다. 화장을 짙게 하고 온 부인을 면회한 날엔 잠을 못 이루는 수형자가 더러 있다. 이 바람에 수형자들의 성욕을 억제하기 위하여 구치소 측에서 나팔꽃 씨를 밥에 섞어 먹였다는 말까지 있었다. 이에 대해 우리 주임님은 웃으면서 “다 부질없는 속설”이라고 했다.

      나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재판을 받고 돌아오는 호송버스 안에서 여자 수형자 2명과 동석한 적이 있었다. 여자용 호송버스가 출발한 뒤여서 어쩔 수 없이 합승하게 되었다. 냄새에 민감한 나는 호송버스가 덜컹거리는 순간 여자 수형자 쪽으로 코를 들이댔다. 하지만 여자 수형자에게서는 기대(?)했던 여성의 체취가 전혀 나지 않았다. 나와 똑같은 역겨운 감옥 냄새를 풍기는 하나의 수감자에 불과했다.

      
	서울중앙지법 임성근(앞줄 왼쪽에서 둘째) 형사수석부장판사 등 판사들이 7월 7일 서울구치소를 방문, 최덕(앞줄 오른쪽에서 셋째) 구치소장 등으로부터 수용자 관리 현황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월간조선 DB
      서울중앙지법 임성근(앞줄 왼쪽에서 둘째) 형사수석부장판사 등 판사들이 7월 7일 서울구치소를 방문, 최덕(앞줄 오른쪽에서 셋째) 구치소장 등으로부터 수용자 관리 현황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월간조선 DB
      구치소의 位階

      성동구치소에서 제일 높은 사람은 소장이다. 가출옥에 대한 전권을 쥐고 있는 소장은 수형자 사회에서 신과 같은 존재다. 수형자들은 소장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서열 2위가 부소장, 서열 3위가 보안과장이다. 주임님(필자의 담당 교도관)은 서열 4위다.

      보안과장이 감방 순시를 나오면 복도의 모래를 물걸레로 제거해야 할 만큼 비상이 걸리는 판에 소장 순시가 있는 날엔 방 안에 먼지 한 톨이라도 있으면 안 된다.

      수형자들이 감옥 안에서 제일 두려워하는 대상이 ‘까마귀’다. 검은 제복 차림에 검은색 곤봉을 들고 수시로 감방 안을 순시하는 교도관을 우리는 까마귀라고 부른다. 까마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불시에 감방 문을 따고 들어와 수형자들이 숨겨놓은 담배나 히로뽕, 칼 등을 적발하는 저승사자다. 이 까마귀들을 지휘하는 사람이 보안과장이다.

      구치소 소장이 아버지 격이라면 주임님은 어머니 같은 존재다. 수형자들과 희로애락을 같이하며 수형자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풀어주는 사람이다. 감방 내에 응급환자가 생겼거나 가족에게 긴급 연락을 해야 할 경우 그 메신저가 주임님이다.

      담배와 은단

      우리 방에서 최고가의 변호사를 선임한 수형자는 방장이다. 착수금 3000만원에 집행유예 조건으로 7000만원 등 총 1억원을 지불했고, 1심 형량이 줄어들면 줄어든 만큼 성공 사례비를 주기로 약정했다. 부방장은 착수금 3000만원에 기소유예 조건으로 5000만원을 냈다. 어르신은 2000만원짜리 변호사를 선임했고, 대학 후배의 변호사는 1500만원짜리다. 나만 유일하게 국선변호사다.

      떡 줄 사람은 재판장인데 아주 하찮은 건더기라도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게 수형자들의 심리다. 한 감방에서 생활하는 수형자들 사이에서 가장 부러운 존재가 제일 먼저 감방을 나가는 수형자다. 명문대를 나오고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감방 문을 나가지 못하면 그것들은 다 무용지물이다.

      돈 많은 수형자는 매일 교도소를 찾아오는 접견용 변호사인 ‘집사 변호사’를 별도로 고용한다. 집사 변호사는 수감자의 편의를 봐주며 수발을 드는 변호사다. 대형 게이트에 연루된 한 거물급 경제사범은 집사 변호사의 휴대폰을 통해 감옥에서 업무를 보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다 돈의 위력이다. 사기를 쳐도 크게 치고 감옥에 가야 한다는 말이 수형자들 사회에서 회자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집사 변호사의 또 다른 역할은 담배 공급이다. 신문에 보도된 한 집사 변호사는 구치소에 수감된 마약사범에게 600만원을 받고 담배 60갑을 몰래 전달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에 적발되었다. 그는 담배의 필터를 일일이 떼어내고 나머지 부분을 다리미로 납작하게 다려 부피를 줄인 뒤 납작해진 담배 수백 개비를 서류나 책에 끼워 전달했다. 이 집사 변호사는 서울시 법률고문과 한나라당 법률지원단 부단장을 지낸 거물급 인사였다.

      감옥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수형자가 은단으로 속을 달랜다. 감옥에는 곳곳에 금속탐지기가 설치돼 있다. 내가 수감된 8동에서 면회실까지 가려면 금속탐지기 3대를 통과해야 한다. 은단을 소지하고 있어도 금속탐지기가 반응한다. 때문에 은단을 소지한 수형자들은 금속탐지기를 지날 때면 은단 통을 꺼내 머리 위로 높이 올려야 한다.

      보석금 없이 출소

      드디어 내게도 감방 문이 열렸다. 저녁 6시 반이었다. 눈물이 글썽한 부방장이 다시 한 번 나를 꽉 껴안았다. 부방장은 나와의 헤어짐을 정말 아쉬워했다. 감옥에서도 정은 드는 법이다.

      나는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교도관을 따라 복도를 걸었다. 곁눈질하며 보니 식사를 끝낸 수형자들이 커피를 마시며 TV를 보고 있었다. 쇠창살에 기대서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1450번 수형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손을 뻗어 내 어깨를 잡았다. 수형자 가방을 들고 있는 내 모습에서 그는 출감을 눈치챘다. 나는 그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며 “먼저 나가게 되어서 미안하다”고 조용히 말했다.

      “아닙니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열심히 사시고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마십시오.”

      1450번 수형자는 나를 향해 합장하며 축원했다. 그 방 수형자들이 모두 쇠창살 앞으로 몰려와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들을 두 손으로 잡아주었다. 손들이 참 따뜻했다.

      법원의 보석 허가율은 평균 10%로 아주 낮다. 국선변호사가 보석 신청을 꺼릴 만했다. 나에 대한 보석 청구인은 아내였다. 아내의 무기는 눈물이었다.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법정 구속돼 행방이 묘연했을 때 아내는 북부지방법원 민원실에 전화를 걸어 내 소재지를 찾아달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민원실 여성 공무원은 내가 성동구치소에 수감돼 있음을 확인하고는 함께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했다고 아내가 말했다.

      법원이 보석을 허가할 때는 피고인이 도망갈 경우에 대비해 보증금을 내도록 한다. 보증금 액수는 범죄의 성질과 죄상, 피고인의 전과와 자산 등을 고려하여 정하는데, 보증금 납부 후가 아니면 석방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법원은 나에게 보증금을 단 한 푼도 부과하지 않았다. 내가 빈털터리라는 것을 감안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죄질이 나쁘지 않아 법원에서 호의를 베풀었음이 분명했다.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도관을 따라갔다.

      출소 대기실은 감옥 입구에 있었다. 내가 성동구치소에 처음 도착해 입감 수속을 밟았던 사무실 바로 옆이었다. 나는 그 중간 지점에서 걸음을 멈췄다. 왼쪽 길은 감옥행이고, 오른편은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길이다.

      착한 교도관

      만기 출소자는 없었다. 만기 출소자는 징역 날짜를 하루라도 어기지 않기 위해 자정이 지나야 풀려난다. 그러나 밤 12시 이후에 활동하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에 가족이나 친구가 감옥 밖에서 기다리면 밤 11시쯤 풀어주고, 그렇지 않으면 새벽 5시에 홀로 감옥 문을 나서야 한다.

      출소 대기실은 조그만 교회당처럼 생겼다. 연단처럼 생긴 곳에 수형자 번호가 적힌 15개의 군용백이 쌓여 있었다. 오늘 출소자는 15명이다. 나는 내 수형자 번호가 적힌 군용백을 열었다.

      여름용 검은색 양복 상하의는 엉망으로 구겨져 있었다. 반팔 흰 와이셔츠는 온통 주름투성이였다. 마치 좀이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것 같았다. 훤한 대낮에 이 복장으로 밖에 나갔다가는 노숙자로 오인받기 십상이었다. 밤에 풀려나는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처럼 양복 차림의 수형자는 한 명이고, 거의가 얇은 점퍼를 걸쳤다. 산책하러 나왔다가 구속되었는지 반바지와 반팔 차림에 슬리퍼를 신은 이도 있었다.

      휴대폰을 켜니 불은 들어오는데 통화는 되지 않았다. 내가 구속된 후 아내가 통화 정지를 시켰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문자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신호음이 들렸다. 교도관이 “휴대폰은 당분간 진동으로 해달라”고 지시했다.

      잠시 후 교도관이 남은 영치금을 나눠주었다. 양복 차림의 수형자가 150만원을 받았고, 나는 그다음의 고액인 66만원을 받았다. 15명 중 두 명의 수형자는 영치금이 한 푼도 없었다. 지하철을 탈 요금마저 없는 가련한 신세였다.

      구치소 문을 나가는 대로 만원씩 나눠줄 생각을 하고 있는데, 교도관이 그 두 사람에게 차비 하라며 몇 푼씩을 나눠주었다. 국가에서 책정한 여비라면 출소자 전원에게 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니 교도관이 개인 주머니를 턴 것 같다.

      영치금 정산이 끝나자 소지품 검사로 이어졌다. 교도관이 우리 얼굴을 훑어보며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다른 수형자로부터 부탁받은 전화번호나 주소를 적은 종이는 감옥 밖으로 갖고 나갈 수 없습니다. 감방 안에서 기록한 개인 서신들도 외부 유출이 안 됩니다. 적발되면 압수하니 가방에서 꺼내 놓으세요.”

      마지막으로 남은 게 출소자 확인 절차다. 어깨에 무궁화 2개를 단 보안계장이 내 수형자 번호를 불렀다. 보안계장은 입감카드에 붙은 내 사진과 얼굴을 대조한 후 이름, 주소, 주민등록번호를 물었다. 그것으로 끝이다.

      출소자 확인 절차 때 보니까 보석으로 석방되는 사람은 나 혼자고 나머지는 모두 벌금형 수형자들이다. 그들은 감옥 생활이 길지 않았기에 휴대폰이 정지되지 않았다.

      진짜 출소풍경

      출소 대기실을 떠나 20m쯤 걸어가자 감방 통로가 끝났다. 교도관이 다시 한 번 신원확인을 한 후 감방 문을 열어주었다. 감방 밖이긴 해도 아직 성동구치소 담장 안이다. 감방 문을 나가는 순간부터 안내하는 교도관이나 간섭하는 교도관이 없다.

      마침내 자유를 되찾은 것이다. 감방 밖으로 나온 우리는 성동구치소 뜰을 지나 육중한 철문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천천히 걸으며 자유를 만끽했다. 구치소 담장 안이지만 감방 안과 밖은 공기 냄새부터 달랐다.

      초가을 밤공기는 상큼하다 못해 코끝이 아렸다. 찌르레기 우는 소리와 귀뚜라미 소리가 참 반가웠다. 굳게 닫힌 육중한 철문 앞에 이르자 쪽문이 열려 있었다. 쪽문을 벗어나자 감옥 밖이다.

      바깥세상은 어두컴컴한 밤이었다. 나는 아내나 큰처남이 마중 나와 있을 줄 알고 주위를 살폈다. 철문 밖에 기다리는 사람이라고는 없었다. 외진 구치소 앞이어서 그런지 지나가는 행인도 눈에 띄지 않는다.

      구치소를 나온 사람들이 정문 바로 앞에 있는 구멍가게로 우르르 몰려갔다.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서 따라가 보았다. 전부 담배를 사고 있었다. 사회에 나오자마자 담배부터 찾은 것이다. 나는 담배를 끊기로 작심했기 때문에 담배를 사지 않았다. 몇 명은 두부를 사서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두부를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서 나는 가게를 나왔다.

      감옥 문을 나온 수형자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가족들을 부둥켜안고 가족들이 갖고 온 두부를 먹으며 발로 바가지를 깨는 것이라고 들었다. 영화에서의 출소 장면이 대부분 그랬다. 나는 그런 장면을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딴판이었다. 만기 출소가 아니어서 그런지 15명의 수형자를 마중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투명 유리창에 신고식을 치르다

      아내에게 출소 사실을 전하기 위해 공중전화를 찾았다. 하지만 공중전화가 보이지 않았다. 휴대폰의 영향으로 다 사라진 듯했다. 성동구치소 부근은 나에겐 초행길이었다. 대로변으로 나가야 택시를 타든, 버스를 탈 수 있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분간이 안 됐다.

      옹기종기 모여 서서 담배를 피우는 출소자들에게 물었다.

      “지하철을 타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우리 모두 5호선 전철을 타러 가니까 따라오세요.”

      50m쯤을 따라가니 왕복 8차선의 대로가 나타났다. 맞은편에 불을 켠 병원이 보였다. 나는 그들과 헤어져 병원으로 들어갔다. 병원에는 공중전화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공중전화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간호사에게 공중전화 위치를 물었다.

      “요즘은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요. 우리 병원에는 공중전화가 설치돼 있지 않습니다. 급한 일이 있으면 일반 전화를 사용하세요.”

      간호사는 내가 들고 있는 초록색 수형자용 가방을 보고 내가 갓 출소한 수형자임을 눈치챈 것 같았다. 성동구치소 앞에 있는 병원이니 나 같은 사람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나는 간호사에게 양해를 구한 뒤 아내의 휴대폰 번호를 눌렀다. 간호사가 듣지 못하게 아주 작은 목소리로 아내에게 출소했음을 알렸다.

      아내는 오후 5시경 법원으로부터 나에 대한 보석신청이 허가되었음을 통보받았다. 그러나 출소 시각을 몰랐기 때문에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통화를 끝낸 나는 간호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출입문으로 향했다.

      출입문을 통과하려는 순간 나는 ‘꽝’ 소리가 날 만큼 뭔가와 심하게 부딪쳤다. 대형 유리창에 얼굴을 들이박은 것이다. 그동안 어두침침한 형광등 아래에서 쇠창살과 철문만을 상대하다가 느닷없이 투명한 유리창을 만났으니 투명유리의 존재를 잊은 것이다. 나는 출입문 앞에서 나뒹굴었다. 안경도 바닥에 떨어졌다.

      ‘꽝’하는 소리를 듣고 간호사가 달려왔다. 간호사의 눈빛은 나에 대한 걱정이나 놀라움이 아니었다. 감옥에서 갓 출소한 또 한 명의 사회인이 사회 물정에 적응하지 못한 채 여지없이 유리창을 처박고 쓰러지는 장면을 보고 즐기는 표정이었다. 이미 나와 똑같은 전철을 밟은 사람이 한둘이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 나는 ‘문화 쇼크’를 온몸으로 체험했다. 감옥 문화에 젖은 사람이 사회 문화에 진입할 때 받는 그 충격이다. 마치 술에 취한 듯 두 다리에 힘이 빠지고 정신이 얼얼했다. 나는 간호사들의 조롱 어린 웃음을 뒤로하며 허겁지겁 병원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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