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선거경제/복지미디어전쟁국제정치.경제민족/통일사회/사법군사/안보문화/스포츠
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번 찾기
전체기사보기 교육/과학   고대사/근현대사   고향소식/해외동포   포토/해외토픽   자유게시판  
편집  2019.01.16 [12:46]
민족/통일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조선 사람은 왜 일본 박람회에 전시됐나?
 
kbs 역사스페셜 기사입력 :  2011/12/08 [13:15]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밴드


 조선 사람은 왜 일본 박람회에 전시됐나?




 

▣방송 : 2011. 12. 8 (목) 22:00~22:50 (KBS 1TV)
▣진행 : 한상권 아나운서
▣연출 : 김장환 PD
▣글, 구성 : 김세연 작가
------------------------------------------------------------------------


 

1903년, 오사카박람회.
조선 여인 두 명을 ‘학술인류관’에 전·시·한 일본!
1907년, 도쿄박람회.
일본은 또 다시 조선인 남녀를 전·시·한다!

“이 사건이 한국에 치욕 되지 아니하면 어떠한 사건이
국치민욕이 되겠는가!”

왜 그들은 전시돼야 했는가?
‘조선인 전시’ 사건을 통해
과학의 이름으로 이뤄진 ‘인종론’의 역사를 추적한다.

 


 

■ 1907년 도쿄 박람회에 조선인이 전시됐다!

1907년 3월, 일본에서 열린 ‘도쿄권업박람회’. 각종 진기한 볼거리와 여흥거리가 많았던 바로 이곳에서 많은 조선인을 분노케 한 일이 발생한다.

 

“오호 통재라 우리 동포여 예전에 우리가 아프리카 토인종을 불쌍히 여겼더니
 오늘에 이르러서는 어찌 그들이 우리를 더욱 불쌍히 여기게 될 줄 알았으리오 ”
                      - 대한매일신보 6월 21일 자



박람회 흥행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수정관 안에 조선인 남녀 두 사람이 있었다. 난간을 사이에 두고 일본 관람객들이 안에 있던 조선인을 구경하는, 그야말로 ‘인간 동물원’의 모습이었다. 일본인에게 동물처럼 관람의 대상이 되었던 이들은 이곳에 무슨 이유로 전시됐던 것일까?


 

■ 인류학자가 주도한 1903년 오사카 조선인 전시


조선인 전시는 1903년 오사카에서 있었던 제5회 ‘내국권업박람회’에서 먼저 이뤄졌다. 이를 주도한 이는 쯔보이 쇼고로 등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인류학자.




▲ 오사카 박람회 ‘학술인류관’ 전경


대규모 박람회장에, 350평이라는 규모로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서 하루에 천명이상의 람객을 맞았던 ‘학술인류관’. 그 곳에 타이완인, 아이누인, 류큐인 등과 함께 두 명의 조선 여인이 전시됐다. 일본 관람객들을 교육시킨다는 명목이었다.


 

■ 제국주의에 활용된 인류학


 


▲ 경성의전 해부학교실

▲ 도리이 류조의 인체측정사진


2008년 대학로 한 공사장에서 유골들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당시 유골조사를 의뢰받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총 28명의 유골이며, 50년에서 100년 전 사이에 어떤 목적을 위해 누군가가 일부러 수집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는데... 유골이 발견된 곳은 경성제국대학 의과대학이 있던 곳.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연구에 몰두했던 ‘체질인류학’이 바로 유골출토의 비밀을 푸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체질인류학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일본인들은 뼈를 통해 무엇을 알고자 했던 것일까?


 

■ 우생학 유감


 


▲소록도의 단종대(斷種臺)


사람과 사람의 ‘차이’보다는 우월과 열등을 ‘구분’하는 학문, ‘우생학’.
열자를 배제하고 보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 바람은 일제강점기 일본이 우리에게 강조한 하나의 이데올로기였다. ‘건강한 국민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하는 한편으로, 건강하지 못한 인구를 도태시키려 한 일본. 한센인들 강제 불임수술이나 전 국민 보건캠페인은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정책들이다. 박람회 인간전시를 비롯한 20세기 초 일본이 가지고 있었던 제국주의 시선을 추적해본다.
 
 
|||||||||||||||
 
 

일제강점기, 조선인을 분노케 한 ‘인간 전시’…KBS1 ‘역사스페셜’

[경향신문] 입력 2011.12.07 22:33
기사보내기 | URL축소 글자크기 글자 크게글자 작게 메일로보내기 인쇄하기
1907년 3월 일본 도쿄에서 ‘도쿄권업박람회’가 열렸다. 각종 진기한 볼거리와 여흥거리가 많았던 이곳에서 조선인들을 분노하게 한 사건이 벌어진다. 박람회 흥행을 위해 마련된 수정관 안에 조선인 남녀 두 사람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8일 오후 10시 KBS1에서 방송되는 <역사스페셜>은 ‘조선사람은 왜 일본 박람회에 전시됐나’란 제목으로 1903년과 1907년 조선인이 박람회에 전시됐던 치욕적인 사건에 대해 소개한다.

당시 펼쳐진 풍경은 난간을 사이에 두고 일본인 관람객들이 안에 있는 조선인을 구경하는 동물원의 모습 그대로였다. 조선인 전시는 1903년 오사카에서 열렸던 제5회 ‘내국권업박람회’에서 먼저 이뤄졌다.

주최 측은 대규모 박람회에서 1100여㎡(350평) 크기로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 ‘학술인류관’을 차려놓고 하루 1000명 이상의 관람객을 맞았다. 이곳에는 조선인과 함께 대만인, 아이누인, 류큐인 등이 전시됐다. 일본인 관람객들을 교육시킨다는 명목이 전시의 이유였다.

 
이와 함께 2008년 서울 대학로의 한 공사장에서 대규모 유골이 발견된 사건도 소개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당시 유골이 총 28명의 것으로 발표했으며 100년 전 누군가 일부러 수집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유골이 발견된 곳은 경성제국대학 의과대학이 있던 자리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연구에 몰두했던 것은 체질인류학이었다. 열자를 배제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려는 것은 당시 일본이 우리에게 강조한 이데올로기였다. 박람회 인간 전시를 포함한 일본의 제국주의적 시선을 추적한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포토뉴스

관련기사
快男兒 몽양 여운형, 敵都 심장부에서 조선독립의 당위성을 논파하는 獅子吼를 토하다!
"이토 히로부미 사망에 흥분한 日언론들 사흘간 한국인 죽일 수 있게 해달라 요구"
日本軍을한반도에 끌어들인다면 쿠데타를 해서라도 이명박을 축출해야!
내 이름은 김순악, 일제에 짓밟힌 소나무 한 그루
“나는 일본군이었고 인민군이었고 국군이었다”
닭대가리들의 오두방정 삽질로는 결코 일본을 제압할수 없다!
日王의 원래 국제적호칭은 倭王이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민족신문
 
 
주간베스트
  개인정보취급방침광고/제휴 안내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대표전화 :010-6432-7771
Copyright ⓒ 2007 인터넷 민족신문. All rights reserved.
Contact baek43333@hanmail.net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