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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만 “한국 가요로 세계 대장정 … 14년 전 꿈 이뤘다”
42년 만의 대반전 … 서울의 클리프 리처드 → 파리의 소녀시대
 
중앙일보 기사입력 :  2011/06/1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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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만 “한국 가요로 세계 대장정 … 14년 전 꿈 이뤘다”

[중앙일보] 입력 2011.06.13 01:18 / 수정 2011.06.13 10:32

월드컵 경기장 같은 … 파리의 k-pop 공연장 열기

10일(현지시간) 오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sm타운 콘서트 현장. 10~11일 이틀간 펼쳐진 공연에는 1만4000여 명의 한류 팬이 몰렸다. 소녀시대·샤이니·동방신기·f(x) 등 k팝 가수들의 공연이 이어지자 유럽 각국에서 온 팬들이 한국어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 등 열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sm엔터테인먼트]

“14년 전 저는 꿈이 있었습니다. 제가 프로듀싱한 음악·아티스트와 함께 세계로 나아가는 꿈이었습니다. 2000년 hot의 베이징 공연을 시작으로 바로 어제(10일) 프랑스 파리 공연도 전회 매진되는 성공을 거뒀습니다. 아시아의 조그만 나라 한국에서, sm엔터테인먼트에서 시작된 대중가요의 붐이 어떻게 ‘한류’라는 고유명사를 획득할 정도의 발전을 가져왔을까요.”

 11일 파리의 한 호텔. 이수만(59) sm엔터테인먼트(sm) 회장의 ‘자기고백’에 장내가 숙연해졌다. 이날 열린 콘퍼런스에서 이 회장은 1997년 sm을 설립한 이후부터 그간 걸어온 길, 그리고 한류 성공의 과정 등을 공개했다, 70여 명의 유럽 작곡가와 프로듀서 등이 기립 박수를 보냈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이 11일(현지시간) 오후 유럽의 작곡가·프로듀서 등이 참석한 콘퍼런스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회장은 한류의 성공을 ‘문화기술(culture technology·ct)’ 이론으로 설명했다. 미국에서 컴퓨터엔지니어링을 전공했던 그는 “14년 전 우리 문화 콘텐트를 갖고 아시아로 나가기 시작할 때 it(정보기술)와 구별하기 위해 ct란 용어에 주목했다”며 “it가 지배하던 90년대 이후엔 ct 시대가 올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ct는 it보다 더 정교하고 복잡한 기술로 it 기술은 3개월 정도면 습득할 수 있지만 ct는 배우기가 쉽잖다”며 “연습생을 뽑아 수년을 훈련시켜 ‘보석’으로 만드는 과정이 ct며 음악·댄스·뮤직비디오·메이크업 등의 노하우가 여기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한류 3단계’ 발전론도 제시했다. ▶1단계=음반 등 한류상품을 직접 만들어 수출 ▶2단계=현지 회사 또는 연예인과의 합작으로 시장을 확대 ▶3단계=현지 회사와 합작회사를 만들어 현지인에게 ct를 전수하는 단계다. hot가 중국 시장에서 인기를 끌던 때가 1단계 한류고, 2006년 강타가 대만 f4의 바네스와 결성한 ‘kangta & vanness’가 2단계 한류에 해당한다. 3단계는 2010년부터 sm이 준비하는 현지화 사업이다.

 이 회장은 “ct의 3단계는 현지화에서 얻어지는 부가가치를 함께 나누는 것이며 이것이 한류의 궁극적 목표”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에서의 3단계 한류를 준비 중이며 중국에서만 활동하는 슈퍼주니어 m을 만들고 여성 아이돌 그룹 에프엑스에 중국인 멤버를 영입한 것도 이 과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제 ‘made in(원산지)’이 아닌 ‘made by(제조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3차 한류의 스타가 중국인 아티스트나 중국 회사가 될 수도 있지만 그 스타가 바로 sm의 ct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날 콘퍼런스엔 마이클 잭슨의 프로듀서 출신으로 ‘뉴 잭 스윙’을 창시한 ‘세계 3대 프로듀서’ 테디 라일리와 유럽의 대표적 음반 발매자인 윌리 모리슨도 참석했다. 라일리는 k팝에 대해 “단순한 음악장르가 아닌 일종의 현상이자 ‘무브먼트’다”고 말했다. 모리슨은 “10일 공연을 보며 과거 영국 비틀스에 열광하던 팬들이 생각났다”고 평가했다.

파리=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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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이수만
(李秀滿)
[現] sm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
195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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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 만의 대반전 … 서울의 클리프 리처드 → 파리의 소녀시대

[중앙일보] 입력 2011.06.11 01:33 / 수정 2011.06.11 11:23

이수만의 ‘엔터테인먼트 산업혁명’…노래·춤·외국어 무장한 k팝, 아시아 너머 미국·유럽으로

1969년 10월 유럽 팝가수 클리프 리처드의 내한 공연에 열광하는 한국 여성 팬들(왼쪽). 42년 세월이 흐른 2011년 5월 이번엔 역으로 프랑스 팬들이 파리 루브르박물관 앞에서 한국 아이돌그룹 슈퍼주니어의 노래 쏘리쏘리(sorry sorry)에 맞춰 춤추고 있다. [중앙포토], [www.flickr.com/photos/mamikolegend 화면 캡처]

프랑스 파리에 입성한 한국 아이돌 스타들의 첫 공연이 열린 10일(현지시간), 가장 큰 감회에 젖어든 이는 이수만(59) sm엔터테인먼트 회장이었다.

팝의 본고장 유럽에 k팝(korean-pop)이 울려퍼지는 광경 앞에서 그는 40 여 년 전 자신의 꿈을 돌아봤다. 1969년 10월 15일 영국 팝 가수 클리프 리처드가 서울에 왔을 때 김포공항은 환호하는 500여 명의 팬으로 들어찼다. 이 풍경은 17세 소년 이수만의 마음에 목표 하나를 새겨넣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돌아봤다.

 “클리프 리처드의 한국 공연에 당시 내 정서로는 이해가 안 갈 정도로 국내 여성 팬들이 열광했다. 우리도 외국에서 환호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오기가 그때 생겼다.”

이수만
 이수만 회장의 당찬 오기가 결실을 보고 있다. 보아·동방신기를 내세워 일본을 무너뜨렸고, 슈퍼주니어를 앞세워 동남아시아를 장악했다. 지난해엔 미국 la에서 대형 콘서트를 열어 미국 시장의 문도 열었다. 그리고 유럽이다. 클리프 리처드의 대륙 유럽에서 k팝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10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sm타운 콘서트는 전석 매진을 기록했 다.

40년 전 클리프 리처드 를 보며 세계적인 가수를 꿈꿨던 이 회장은 지금 자신이 기획한 한국 가수들이 그 꿈을 이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소녀시대·동방신기·샤이니·슈퍼주니어 등이 그 주역이다. 이수만 회장은 한국 음악산업계에 ‘기획 상품’이란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끌어온 제작자다. 꼼꼼한 기획을 통해 상품이 출시되는 제조업처럼 가수도 철저한 기획을 한다면 더 잘 팔리는 ‘상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 회장이 맨 처음으로 기획한 상품은 ‘h.o.t’였다. 다섯 명의 끼 많은 소년을 선발해 2년이 넘도록 철저히 훈련시켰다. 그렇게 등장한 h.o.t는 단숨에 가요계를 장악했다. 그리고 중국·동남아시아 등으로 인기가 확산됐다. 아이돌 시대의 서막이었다. 그 다음은 일본이었다. 보아는 h.o.t보다도 더욱 산업적으로 매끄러운 방법으로 데뷔했다. 외국어 공부를 시켜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택했다. 배용준의 ‘겨울연가’ 이전에 보아가 있었다. 보아는 일본 한류 붐을 일으킨 첫 주자였다.

 이 즈음부터 이 회장의 성장 시스템은 틀을 잡기 시작했다. ‘기획(연습생)→제품 출시(데뷔)→홍보(방송 출연)→수출(해외 진출)’로 이어지는 기업형 시스템이다. 그가 만들어 놓은 이 시스템은 현재 대부분의 가요 기획사들이 그대로 적용시키고 있다. 이 회장은 가내수공업 수준에 머물던 음반 제조업을 대기업형으로 변화시켰다. 일종의 ‘산업혁명’을 이끈 셈이다.

 그런 이 회장이 가수를 양성할 때 주안점으로 두는 것은 무엇일까. 보아의 성공적인 일본 데뷔를 치른 뒤인 2005년 겨울, 그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가수를 길러낼 때) 세 가지를 본다. 첫째는 좋은 음악. 가수니까 당연하다. 둘째는 춤이다. 똑같은 무대가 주어질 경우 어떻게 해야 남보다 낫겠는가. 무대를 지배할 수 있는 춤이 필요하다. 셋째는 외국어다.”

 이 세 가지는 지금도 불변이다. sm 소속 가수들이 단 한 차례도 프로모션을 한 적이 없는 유럽 무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이 같은 세 요소를 철저히 지켰기 때문이다. sm에 들어온 가수들은 짧게는 2년, 길게는 7년씩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노래·춤·외국어를 연마한다. 여기에다 유럽 작곡가들까지 폭넓게 활용하면서 sm의 음악을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k팝은 아시아를 넘어 유럽·북미까지 장악하면서 글로벌 문화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그 중심에 ‘이수만 리더십’이 있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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