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 용병 투입' 루머에 가장 두려웠다" "제3국 근로자들 안전하게 후송시켜 자부심" 항만에 주차된 현대.기아차 등 100여 대 약탈
(카이로=연합뉴스) 맹찬형 특파원 = "카다피가 진압을 위해 보낸 용병들을 미리 매복하고 있던 반정부군들이 대부분 사살하는 등 반정부 시위대가 단순 시위대 이상의 무장과 작전능력을 갖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반정부 시위대가 장악한 리비아 동부 지역의 데르나 건설현장에서 육로를 통해 이집트로 탈출한 원 건설 직원들은 25일 카이로에서 연합뉴스 특파원과 만나 "반정부 시위대를 중심으로 자경단이 있기는 하지만, 일부는 밤이 되면 약탈을 일삼는 폭도로 변하기 때문에 자경단과 폭도가 구별이 안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원 건설 직원들은 지난 21일 데르나에서 40㎞ 떨어진 라브락 공항에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 측이 투입한 용병 40여 명이 수송기편으로 도착했으나, 미리 매복하고 있던 반정부군에 대부분 사살되고 8명은 생포돼 인근 모스크에 감금됐다고 전했다.
이들에 따르면 지난 23일에도 무바라크 측 용병들이 또다시 진압 차 라브락 공항에 투입됐다가 사살당하는 일이 반복됐다.
연합뉴스가 입수한 즉결처형 장면으로 추정되는 동영상에 대해 이들은 "진압에 투입된 아프리카 용병들이 반정부군에게 사살된 현장일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았다.
원 건설 직원들은 또 데르나 인근 항만을 통해 수입된 현대.기아차와 도요타 등 수입 자동차 100여대가 모두 약탈당했다고 전했다.
리비아 데르나에서 주택 건설 사업을 하고 있던 원 건설 직원들은 교도소에서 탈옥한 죄수들을 포함한 폭도들이 철근과 몽둥이 등 무기를 들고 현장에 쳐들어올 것에 대비, 약 1천500명에 달하는 직원들을 인근 학교와 예식장 등으로 장소를 옮겨가며 이동했다.
이집트 출신 근로자들을 먼저 철수시킨 원 건설 측은 밴 2대와 대형 트레일러 18대를 동원, 방글라데시와 필리핀, 네팔, 태국, 베트남 출신 근로자 1천430명을 포함해 1천500명에 달하는 인원을 이끌고 약 350㎞의 사막길을 달려 이집트로 탈출했다.
한 직원은 "편의상 여권을 약 1천100㎞ 떨어진 미수라타에 맡겨뒀는데, 여권을 가져오면 1년치 연봉보다 많은 돈을 주겠다고 제의했는데도 제3국 근로자들 중에서 아무도 가려는 사람이 없어서 결국 포기했다"고 말했다.
특히 북한 출신 용병들이 벵가지 등에서 반정부 시위대 진압에 동원됐다는 소문이 퍼져 두려움이 컸다고 원 건설 직원들은 전했다.
장명천 현장소장(67)은 "남북한 사람의 외모가 구별되는 것도 아니어서, `코리아 용병'이 동원됐다는 소문이 퍼졌다는 얘기가 가장 두려웠다"고 말했다.
장 소장은 그러나 제3국 근로자들을 모두 안전하게 이동시키고, 사후 대책까지 마련해줄 수 있어서 가장 큰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 소장은 근로자들이 인질로 잡히지 않도록 변호사의 공증을 받아 현지 근로자들의 미지급 임금을 수표로 미리 결제해서 현지인들의 신뢰를 확보했고, 네팔과 베트남 등 5개 나라 출신 근로자들의 이집트 주재 대사관에 미리 연락해서 입국 수속을 밟도록 조치했다고 전했다.
원 건설이 리비아에 남겨둔 직원은 갑자기 담석증이 발병한 방글라데시인 1명과 이를 돕기 위해 남은 같은 국적의 동료 3명 뿐이다.
장 소장은 "카이로로 오는 도중에 이집트 쪽 국경 검문소에 남아있는 제3국 직원들을 위해 이날도 2천명 분의 빵과 식수를 배달하도록 주문해뒀다"며 "사태가 진정되고 다시 현장에 돌아갈 때 제3국 직원들이 가장 먼저 원 건설과 함께 일하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안도감과 뿌듯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