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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갓 여행기] 배낭여행과 어학연수, 그 허와 실
그간의 여행기를 신년에 써나가고자 한다.
 
물삿갓 기사입력 :  2011/01/02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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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갓 여행기] 배낭여행과 어학연수, 그 허와 실
글쓴이 : 물삿갓 날짜 : 11.01.01 조회 : 8
 
 
 
 이 칼럼은 2007년 24박 25일 유럽 7개국 배낭여행을 다녀온 경험과, 1년 2개월
 
간의 남미 체류기때의 견문을 바탕으로 쓰는 칼럼입니다.
 
그 첫째로 제가 보고 느낀 해외에서의 한국인의 모습에 대해 쓸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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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와 달라서 이제는 전세계에 한국인 없는 곳이 없다시피 할 정도다.
 
과거 90년대 초반처럼 유럽 각국들 화폐가 달라서 각 나라마다 화폐를 환전
 
하여 복대에 일일이 소지하고 가거나 여행자 수표를 비싼 수수료 물어가며
 
바꿔다가 정말 말 그대로 엄청나게 힘든, 원초적인 '배낭여행'을 하던 시대가
 
아니다. 지구 반대편 어디서든 체크카드 한장이면 얼마든지 그나라 화폐
 
뽑아쓸 수 있고 얼마든지 한국과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휴대폰을 로밍해다가
 
가서 집에 쉽게 전화하고 연락할 수 있는 그런 시대다.
 
한해 공식추산치 100만의 조기유학생들이 중국과 미국, 영국과 영어권 나라
 
라는 인도와 남아공 등으로 널리널리 가고 있으며, 인터넷 검색 몇번만 치면
 
전혀 들어보지 못한 지구 반대편에 대한 정보도 숱하게 나온다. 물론 직접
 
겪어본 것 만 하겠냐만은 참고가 될 사항이 너무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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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해외에 다녀온 이들에게 묻는다. 그곳에서 뭘 보고 뭘 느끼고 왔냐고.
 
무엇을 목적으로 갔으며 어떤 것에 대해 느끼고 어떤 점을 자신의 발전적인
 
토대로 삼고 싶겠냐고. 솔직히 이런 질문에 대답을 할 만큼 잘 다녀온 누군가를
 
삿갓은 근자에 본 적이 없다. 아니,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저 어디가 멋졌다는 둥, 어디 애들이 참 볼만 했다는 둥, 어디에서 재미난
 
누군가를 만나 어떻게 놀았다는 둥... 그런 이야기 뿐이다.
 
 
 
 그들에게 또 묻는다. 그런 건 한국에서도 가능한 짓들 아닌가? 고작 삼삼오오
 
몰려가서 술마시고 놀고 명품쇼핑하는 걸 한국보다 싼 값에 하려는 그런
 
욕심에 여행다녀오는게 그렇게도 자랑스러운 일인가? 파리 샹젤리제 거리
 
인근의 각종 명품 가게들에서는 한국말이 가장 많이 들린다. 이역만리 타국
 
에서 들려오는 한국말이 반갑지 못하고 민망할 정도다. 저렇게 정신빠진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오는구나.. 하는 그런 민망함에 말이다.
 
영어공부 하러 갔다면서, 1년 어학연수 다녀왔다면서 그 1년 중 어느 하루를
 
비집어 내보면 그나라 사람과 만난 시간보다 한국사람 만난 시간이 더 긴
 
것이 과연 어학연수를 하러 간 것이 맞다고 해야 하는가? 집에서는 그저
 
멀리 보내놓고 잘하고 있겠지, 잘지내고 있겠지 애가 타는데 그 멀리 가서는
 
한다는게 자신처럼 어학연수 온 사람들과 삼삼오오 어울리고, 진정한 영어를
 
배우려 들고 그들의 문화를 배우려 드는게 아니라 비영어권에서 마찬가지로
 
영어 배우러 온 다른 나라 출신 수강생들과 어울리는게 사실상 지금 어학연수
 
랍시고 나가있는 학생들의 십중팔구 모습이다. 피가 끓는 나이인만큼 성적인
 
문제나 마약유혹에 빠지지나 않으면 다행이랄 정도로 우리네의 해외로 배우러
 
가는 모습은 아직도 수준미달인 부분이 크다.
 
 
 
 
 
 
 물론 한국이란 테두리 내에서보다 밖으로 나가서 뭔가 하나라도 더 보고
 
배우는 건 백번 좋은 일이다. 하지만 왜 나가야 하는지, 내가 무엇을 하러
 
가는지 목적을 모르고 가는 이들이 태반을 넘어 거의 대부분에 이른다 해도
 
과언이 아닌 요즘이다. 가서 무엇을 할것인지에 관한 목표의식도 없고, 인터넷
 
검색 몇번 두드리면 전부 나오는 정보들은 이역만리 타국도 바로 옆동네 가는
 
것처럼 코웃음 치게, 경시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 수많은 학생들이 방학을 이용하여 배낭여행을 다녀온다지만 열에 아홉은
 
한국 교민이 운영하는 민박을 이용한다. 물론 나쁘지는 않다. 저렴한 가격에
 
때로 나라 밖에서 좋지못한 일을 당하면 한국말 할 수 있는 이가 있기에 도움
 
받을 수도 있는 장점등이 있다. 그러나 허구헌날 그래야 하나? 여행 내내
 
한국인 민박을 전전해야 할 만큼 한국 음식이 대단히 그립고 한국에 대한
 
향수가 그리운가? 한국인 민박에서 제공되는 웬만한 서비스는 현지인 유스
 
호스텔에서도 대부분 제공된다. 한식만 제외하면 모든걸 다 이용하고 그나라
 
사람들과 한마디라도 더 이야기 해보고 무언가 하나라도 더 주고받고 보고
 
배우는 게 있다. 그들이 한국이란 나라 사람에 대해 보고 배우는 것도 있다.
 
그런 기회를 한국인 민박만 전전하면서 철저히 잃어버리고, 생전 얼굴 처음 본
 
사람과 한국인 민박집에서 술잔이나 기울이는 모습 등은 배낭여행이랍시고
 
온 것에 대한 환멸감을 느끼게 만든다. 낮에는 그나라에서 이름난 어떤 명소에
 
가서 이리저리 예쁘게 사진찍는게 전부이고, 한국 돌아와서는 자기 미니홈피에
 
그 사진들을 올리며 부연설명을 한마디도 적지 않는다. 그러니 다녀와서
 
남는건 사진이란 말밖에 안나오지 않겠는가.
 
 
 
 어학연수도 마찬가지다. 1년이란 짧고도 긴 시간을 타지에 가면, 부지런히
 
그나라 사람들과 친해질 무언가를 자꾸 찾아야 한다. 자신의 취미와 공통점이
 
있을법한 사람과 자꾸 소통해야 말이 안통해도 처음부터 무언가의 흥미를
 
이끌어내고, 그러다보면 말도 저절로 늘게 된다. 그게 진짜 어학연수다.
 
어학연수가서 제일 바보짓하는게 어학당이나 대학 도서관에 틀어박혀 한국
 
영어 문제집 단어장 공부하는 것이고, 두번째 바보짓이 바로 한국 학생들끼리
 
만 어울리는 것이라 한다. 근데 실상 대부분이 그러고 있다는 게 더 크나큰
 
문제이다. 그렇게 해서 1년이 아니라 10년을 지낸들 도대체 타국에서 얻는게
 
무엇인가? 타국에서 좁은 금 긋고 그 안에 한국인으로, 외톨이로 자라는 것
 
말고 남는게 무엇이겠는가? 1년 단기 어학연수가 이럴진대 인성도 갖춰지지
 
않은 10대에 나가는 조기유학 성공률이 어떨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게 전망
 
될 수 밖에 없다.
 
 
 
 
 
 구한말 조선사람 중 최초로 세계일주를 했던 유길준이 쓴 서유견문, 그리고
 
마찬가지로 개화파 일당이었다가 갑신정변으로 도망쳐 미국에서 오랜 타국
 
생활을 지냈던 서재필 등이 남긴 각종 기록들을 보면 100년전의 조선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했다. 지금처럼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도 아니고 정말
 
먹고 살기 바쁜 시절이었겠지만 해외 나와서까지 서로 반목하고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한채 방황하는 모습에 유길준 선생은 준엄하게 '의미도 모른채
서양인들의 시계를 차고 그들의 술을 즐기는 모습은 개화의 병신이다'라고
 
꾸짖었다.
 
 
 
 남들이 하기 어려운, 정말 인생에 흔치 않은 기회인 해외로의 유랑 기회가
 
찾아오는 그 순간을 한국에서와 별반 다르게 지내지 못한다면, 그건 그 기회에
 
대한 배신이다. 마찬가지로 구한말 미국 선교사를 통해 조기유학을 경험한
 
故 유일한 유한양행 회장의 경우가 가장 이상적인 조기유학의 성공 케이스라
 
하겠다. 겨우 열살의 나이에 아버지가 큰 마음 먹고 선교사의 손에 맡겨
 
미국 네브레스카로 떠나간 유일한 회장은 평범한 가정이지만 슬하에 자식이
 
없어 쓸쓸한 어느 노파 자매의 집에서 성장하며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
 
하는 무언가를 어릴적부터 발휘하기 시작했다.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운동 아메리칸 풋볼을 같이 즐겨보려 열심히 뛰었고, 키가 작았음에도
 
달리기를 무척 열심히 했음에 기어이 주전 선수로 뽑혀 네브레스카 고교
 
풋볼팀에서 가장 핵심 자리인 쿼터백을 맡게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반일 시절
 
가세가 기울어 다시 조선으로 급히 와달라는 아버지의 요청에 번민하다가
 
그의 담임 선생님과 그의 친구 은행장의 도움으로 100달러(지금이야 별 것
 
아닌 액수지만 당시만해도 한 가정 1년 예산정도 되었던 큰 돈)를 집에 보내고
 
미국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대학까지 자신의 힘으로 마친 그는 미국에서의
 
사업을 일궈내고 이를 식민지 시절과 전화로 피폐해진 자신의 조국에 어떻
 
게든 도움이 되고자 헌신했다. 그 이후 유한양행 설립과 함께 조국에 헌신한
 
부분이야 접어두더라도, 우린 그가 미국에서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 문화에
 
파고 들었는가를 우선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미식축구를 같이 하려 애썼고, 그들이 chink(중국인 놈)라 놀리는 가운데서도
 
꿋꿋이 실력으로 그들에게 뒤쳐지지 않으려 노력하면서도 그들과 절대 적대
 
하지 않고 그들의 말을 배워 그들 가운데서도 정말 대단한 인물이라고 인정
 
받을 수 있었던 것들.. 이런 점들이 바로 지금의 해외로 나가려는 많은 이들이
 
배워야 할 점이라 생각된다.
 
 
 
 
집에서 적지않은 돈 깨서 보내주는 어학연수이고 적잖은 수고 하면서 모은
 
용돈으로 가는 배낭여행인만큼, 더 크고 많은 걸 보고 듣고 배울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모두에게 주어졌음을 바라 마지 않으며 그간의 여행기를 신년에
 
써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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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래서 썼는데 제글 어디갔습니까?
글쓴이 : 물삿갓 날짜 : 11.01.02 조회 : 11
 
 
 여기 집필진 중의 한분이신 김기백 선생님 소개받고
 
오늘부터 글쓰기로 했는데...아까 하나 썼더니 어디 사라졌군요.
 
어찌된 것인지 좀 알고 싶네요.
 
 
수고들 하십시오.


ip:112.161.178.206
쥔장아찌 11/01/02 [02:1] 수정 삭제
이게 뭔소리여?? 안그래도 눈알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데...
날짜가 1월2일로 넘어가기 전에 암만 봐도 없던데...??
쥔장아찌 11/01/02 [02:1] 수정 삭제
거참,자네가 헛소리할 사람도 아니고...
여태 그런일도 없었는데...새해 첫날부터 어떤녀석이 해킹을??

하여간... 미안하게 됐네만... 다시한번 올려놔보게...
신경 좀 쓴 글이면 기사제보란에 넣어놔도 되고...

쥔장아찌 11/01/02 [06:1] 수정 삭제
그러면 그렇지~ 이제보니 자네가 자게판이 아니라...남북민족문제 토론방에 올려놨구만! 자네가 착각한거야~멀쩡하게 잘~ 있으니 염려푹~놓게나~!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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