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산에 오르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 이다. 건강을 위함도 있을것이요 계절마다 바뀌는 절경의 모습을 감상하고자 함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여러 명산 중 경주의 남산은 앞서 말한 것과 조금은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경주 남산은 태초에 돌산이었다. 서라벌을 세운 박혁거세가 탄생하고 포석정에서 신라가 멸망하기까지 천년이란 시간 동안 돌산은 신라인들에 의해 부처의 나라가 되었다. 1천810만㎡(540만평) 자락에 절터 150곳, 석불 129기, 탑 99기 등 모두 694점의 유적을 만나볼 수 있는 남산 등산길에 올랐다.
산이라는 곳이 원래 여러 길을 가지고 있지만 신라의 유적을 가장 많이 만나는 길은 서남산주차장에서 오르는 삼릉계곡 길이다. 길 입구에는 경주 사과밭이 있어 미처 물을 준비하지 못했다면 이곳에서 사과를 몇 개 사서 올라가는 것도 좋다.
사과밭을 지나 삼릉계곡 입구로 들어서면 소나무 그림자로 장관을 이룬 솔숲이 등장한다. 아침안개 자욱할 때면 이때를 놓칠세라 사진작가들의 셔터세례가 끊임없다고 한다. 그 옆으로 아달라왕, 선덕왕, 경명왕의 무덤이 나란히 있는 삼릉이 있다.
▲ 삼릉 입구에 조성되어 있는 솔숲
나무판으로 잘 정돈된 길을 올라 처음 만난 불상은 석조여래좌상. 그런데 불상에 머리가 없다. 그뿐만 아니라 곳곳에 조각들만 전시된 불상도 있다. 조선시대 숭유억불과 일제의 문화재 약탈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다. 안타까움에 발걸음이 무거워졌지만 이 불상들이 현재 신라시대의 우수한 조각품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석조여래좌상 옆으로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돌기둥 같은 암벽에 새겨진 마애관음보살상을 만날 수 있다. 키가 154cm인 여인의 형태를 한 이 불상은 남산에서 처음으로 만난 온전한 형태의 불상이다. 입술에는 붉은색이 아직 남아 있어 등산객들에게 '미스신라'라고 불리고 있다.
▲ 붉은 입술을 가져 '미스신라'라 불리는 마애관음보살상
지척의 거리엔 선각육존불이 있다. 두 개의 바위 면에 여섯 부처님이 음각으로 그려져 있다. 천년 전 선조들은 아파트 2층 높이의 돌에 어떻게 저렇게 정교한 부처를 새겨놓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붓으로 그려 놓은 듯 자연스럽다.
불상들을 하나 둘 구경하다 보면 어느덧 남산(해발 468m) 중턱에 이른다. 온화한 미소로 반기는 삼릉계석불좌상(보물 666호)를 만나면 30분 정도 급경사를 올라야 마애석자여래좌상을 만날 수 있다.
▲ 드라마 선덕여왕 첫장면을 장식한 '마애석자여래좌상'
드라마 선덕여왕 첫 장면으로 등장해 유명세를 타고 있는 마애석자여래좌상에 도착하자 북서쪽으로 트인 남천과 평야가 펼쳐졌다. 좌상 앞에서는 한 여인이 108배를 올리고 있었다. 천연 바위에 부처가 반쯤 튀어나온듯한 형상을 하고 있는 좌상의 웅장함은 남산을 대변하는 듯했다. 좌상 앞에 놓인 초콜릿과자도 (취재진이 찾은 날은 11월 11일) 이채롭다.
이곳에서 만난 박태일(경주 황성동)씨는 "이 코스가 그렇게 험난하지도 않고 보시다시피 유적들도 많아 아이들과 시간이 있을 때 자주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마애석자여래좌상 옆으로 원만한 능선을 따라 오르면 삼릉계곡 등산코스의 정상인 금오봉에 오른다. 금오봉에서 경주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신라인들이 왜 이곳을 도읍으로 정하고 정착해왔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형산강변 사이로 넓게 펼쳐진 평야와 주변을 둘러싼 선도산, 금곡산, 소금강산이 그 해답을 말해주는 듯하다. 맑은 날에는 시내에 있는 오릉과 남산 주변의 나정, 포석정도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 남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경주의 모습
취재진과 남산을 동행한 박택선 문화해설사는 "남산은 자연유산이 아닌 문화유산입니다. 사계절마다 변하는 산길도 좋지만 노천박물관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신라의 유적들과 함께 하는 등산길이 남산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