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72] 오서오능(鼯鼠五能)
입력 : 2010.09.16 22:09
"여러 가지를 조금씩 잘하는 것은 한 가지에 집중하느니만 못하다. 날다람쥐는 다섯 가지 재주가 있어도 기술을 이루지는 못한다." '안씨가훈(顔氏家訓)'에 인용된 말이다. 공영달(孔穎達)은 이렇게 풀이한다. "날 줄 알지만 지붕은 못 넘고, 나무를 올라도 타넘지는 못한다. 수영은 해도 골짜기는 못 건너고, 굴을 파지만 제 몸은 못 감춘다. 달릴 줄 알아도 사람을 앞지를 수는 없다." 오서오능(鼯鼠五能), 즉 날다람쥐의 다섯 가지 재주는 이것저것 하기는 해도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팔방미인(八方美人)과 비슷하다. 누고재(螻蛄才)란 말도 쓴다. 누고(螻蛄)는 땅강아지다. 땅강아지도 날다람쥐의 다섯 가지 재주를 갖추었다. 제법 날줄도 알고 타오르기도 하며 건너가고 땅을 파고 달려가는 재주가 있다. 그런데 요놈도 다 시원찮다. 재주를 갖추었으나 미숙한 상태를 가리킬 때 쓴다. "말을 많이 하지 말라. 말이 많으면 낭패가 많다. 일을 많이 벌이지 말라. 일이 많으면 근심이 많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나온다. 이런 말도 했다. "잘 달리는 놈은 날개를 뺏고, 잘 나는 것은 발가락을 줄이며, 뿔이 있는 녀석은 윗니가 없고, 뒷다리가 강한 것은 앞발이 없다. 하늘의 도리는 사물로 하여금 겸하게 하는 법이 없다." 발이 네 개인 짐승에게는 날개가 없다. 새는 날개가 달린 대신 발이 두 개요, 발가락이 세 개다. 소는 윗니가 없다. 토끼는 앞발이 시원찮다. 발 네 개에 날개까지 달리고, 뿔에다 윗니까지 갖춘 동물은 세상에 없다.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못하는 게 없다. 모두들 선망하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다재다능도 전공이 있어야지 오지랖만 넓어 이것저것 집적대면 마침내 큰일은 이룰 수가 없다. 두루춘풍으로 '못하는 게 없어' 하는 소리를 듣는 것은 무능하다는 말과 같다. 이것저것 잘하는 팔방미인(八方美人)보다 한 분야를 제대로 하는 역량이 더 나은 대접을 받는 시대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 했다. 한 문으로 들어가 깊이 파면 모든 문이 다 열린다. 공연히 여기저기 기웃대기만 해서는 끝내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 균형 잡힌 안목으로 핵심 역량을 길러야 한다. 깊게 파야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우물을 얻는다. 바야흐로 전문가 시대란 말씀.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조선닷컴 핫뉴스 b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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