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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재벌家 3세가 빈소도 없이…
"故이재찬, 항상 앞서가는 사람이었다"/아시아경제
 
조선일보 기사입력 :  2010/08/20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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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재벌家 3세가 빈소도 없이…


 


입력 : 2010.08.20 02:59

지난 18일 자살한 삼성그룹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 손자인 고(故) 이재찬(46)씨는 19일 빈소도 없이 홀로 영안실에 머물렀다. 5년 전부터 월세 아파트에서 혼자 살다 간 이씨의 마지막 가는 길도 쓸쓸했다.

이씨 시신은 18일 오후 7시 50분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순천향병원에서 서울삼성병원 영안실로 옮겨졌다. 그러나 장례식장에 빈방이 여럿 있었는데도 그의 빈소는 차려지지 않았다. 18일 이씨 시신이 처음 안치됐던 순천향대학병원에는 빈소가 차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친구와 지인 5~6명이 찾았지만, 이날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는 빈소가 없어 조문객도 눈에 띄지 않았다. 장례식장 관계자는 "과거 사업 등으로 이씨와 인연을 맺은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빈소가 어디인지 묻는 전화가 여러 통 걸려오기는 했다"고 말했다. 장례식장에서 유가족이나 삼성그룹 관계자들 모습도 볼 수 없었다. 장례식장 관계자는 "유가족들이 영안실을 찾았는지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이씨 시신은 19일 오전 비공개로 입관된 것으로 알려졌다. 발인은 20일 오전 11시 30분 진행되고 시신은 화장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보통 빈소가 없는 장례는 고인(故人)의 가족이 없는 경우에 치러진다. 이씨 지인들은 이씨 형제들이 평소 삼성가(家) 모임에 잘 나가지 않은 채 은둔 생활을 했고, 이씨 가족이 대부분 해외에 사는 데다 별거 중인 부인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빈소 없이 장례를 치르는 게 아니냐고 짐작했다.

이씨의 한 친구는 "범(汎)삼성가 친척과 가족 중 누구도 이번 일에 나서지 않고 있다"며 "재벌가 3세의 끝이 이렇게 허망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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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이재찬, 항상 앞서가는 사람이었다"


 
[아시아경제 박성호 기자, 김진우 기자, 임혜선 기자]20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의료원 장례식장에서 치러진 故이재찬 씨의 발인식에 참석한 지인들은 한결같이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했다.

이날 발인식에는 유가족 외에도 적지 않은 지인들이 참석했다. 빈소가 마련되지 않다 보니 발인식 만이라도 지켜보겠다는 지인들이 몰려 든 것.

새한 미디어 재직 당시 고인과 함께 일했던 한 여성은 "전날 장례식장을 찾았지만 빈소가 마련돼 있지 않아 다시 왔다"며 "인자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며 울먹였다.

고인과 디지털 미디어에서 함께 일했다는 한 중년 남성 역시 안타까워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항상 앞선 사고로 모든 일을 진두지휘하던 사람이었다"며 고인을 선구자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발인식에는 고인의 영정을 안은 아들과 미망인 등 유가족을 비롯해 유석렬 삼성토탈 사장과 배호원 삼성정밀화학 사장 등 평소 고인과 친분을 유지했던 지인 30여명은 조용히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한편 지난 18일 오전 7시30분께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d아파트에서 투신한 후 세상을 떠난 이 씨는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차남인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의 차남으로, 새한그룹에서 새한건설 사장을 역임하다 새한건설과 (주)새한이 합병되면서 그룹을 떠난 바 있다.

재찬씨는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딸 선희씨와 결혼해 두 아들을 뒀으며 유가족들은 5년 전부터 고인과 떨어져 미국에서 생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성호 기자 vicman1203@
김진우 기자 bongo79@
임혜선 기자 lhs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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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찬 前 새한미디어 사장 자살… 한 재벌가의 쓸쓸한 몰락

조중식 기자 jscho@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삼성家의 방계 새한그룹… 한때 재계 20위권 진입
외환위기 때 무리한 확장, 그룹해체 후 경영권 상실… 형은 구속, 동생은 자살

삼성의 방계그룹이었던 새한그룹의 이재찬(46) 전 새한미디어 사장이 18일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삼성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의 손자이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조카다. 삼성이라는 국내 최대그룹에서 분리돼 나와 한때 재계 서열 20위권에 들었던 새한은 외환위기를 거치며 그룹이 완전 공중분해된 데 이어, 오너 경영인 중 한 명이 자살하는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새한그룹의 흥(興)과 망(亡)

새한그룹은 이병철 회장의 차남인 고(故)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이 설립한 새한미디어에서 출발했다. 이창희 회장은 1966년 당시 삼성그룹 소유의 한국비료 사카린 원료 밀수 사건에 연루돼 수감 생활을 하고, 나중엔 부친인 이병철 회장의 경영 복귀에 반기를 들면서 삼성그룹 경영에서는 사실상 배제됐다. 이후 그는 마그네틱미디어코리아를 설립해 독자 경영의 길을 걸었고, 1977년 인수한 새한전자를 합쳐 1980년 새한미디어를 출범시키며 재기에 나섰다. 하지만 1991년 58세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숨졌다.

1999년 6월 열린 ㈜새한과 일본 도레이 간의 합작법인 설립투자의향서 체결식에 참석한 새한그룹 오너들. 이영자 새한그룹 전 회장(왼쪽 첫 번째)과 이 회장의 장남인 이재관 새한 부회장(왼쪽 두 번째). /새한그룹 제공
이창희 회장 사후 새한은 1995년 삼성그룹으로부터 분리된 제일합섬을 넘겨받아 기존의 새한미디어와 함께 그룹 체제를 갖추었다. 1996년 ci(기업 이미지 통합)작업을 통해 그룹명을 '새한그룹'으로 정하고, 이창희 회장의 부인인 이영자(73)씨가 회장, 장남인 이재관씨가 부회장을 맡아 경영을 이끌었다. 그룹체제를 갖춘 뒤 새한은 공격적인 경영으로 그룹의 외형 확장에 나섰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imf 외환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에 주력했으나, 새한은 오히려 구미공장에 투자하는 등 대대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계열사 수도 12개까지 늘었으며, 자산 규모로 재계 27위까지 올랐다.

무리한 확장은 곧 큰 화를 불러왔다. 1995년 말 7000억원대이던 부채가 1998년에는 1조7000억원대로 급증했다. 주력사업인 화섬과 비디오테이프 경기도 침체되며 경영 손실 규모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새한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오랜 협력관계를 유지해온 일본 도레이사로부터 5억달러의 외자를 유치하며 일부 사업을 떼내 '도레이새한'을 설립했으나 위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급기야 채권 금융기관들이 자금회수에 나서며 코너에 몰린 상황에서 새한그룹은 2000년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이재관 부회장은 작은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의 지원을 기대했으나, 오히려 삼성의 금융 계열사들이 다른 곳보다 먼저 자금 회수를 하는 바람에 최악의 상황에 몰렸다. 결국 이재관 부회장과 이재찬 사장 등 오너 일가는 회사 지분과 자택 등 사재(私財)를 전부 내놓고 새한그룹 경영에서 완전 손을 뗐다. 새한이 그룹 형태를 갖추고 아들 형제가 경영을 맡은 지 5년 만이었다.

새한그룹의 주력사였던 ㈜새한은 채권단 관리에 있다가 2008년 웅진그룹이 인수해 현재는 웅진케미칼로 사명을 바꾸었다. 새한미디어는 여전히 채권단 관리 아래에서 매각 작업이 진행 중이며, 지난 5월 gs그룹 계열인 코스모화학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협상이 진행 중이다. 도레이새한은 도레이가 지분을 전량 인수해 현재는 도레이첨단소재로 사명이 바뀌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33세의 젊은 나이에 그룹 경영을 맡은 이재관 부회장의 경험 부족이 그룹 해체를 불러왔다"고 말했다.

구속, 자살…불운한 오너 형제들의 행로

새한 오너 형제들의 불운은 그룹 해체와 경영권 상실로 끝나지 않았다. 이재관 부회장은 워크아웃 직전 분식회계를 통해 대규모 불법 대출을 받은 혐의로 2003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의 실형을 받았다. 이재찬 사장은 연예·엔터테인먼트 사업에 관심을 갖고 '디지털미디어'라는 계열사를 통해 드라마·음반 제작 사업을 벌였으나, 이 회사 경영권도 잃었다. 디지털미디어에서 이재찬 사장과 함께 일했던 예당컴퍼니 신용열 이사는 "이재찬 사장은 경영에서 물러난 뒤 직접 사업을 하지는 않고 투자하는 데 주로 관심을 갖고 있었다"며 "최근에는 mp3 음원을 대체할 수 있는 사업을 검토 중이었다"고 말했다.

이들 형제는 새한그룹이 해체된 뒤 삼성·cj·신세계·한솔 등 범(汎) 삼성가(家) 모임에도 잘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가의 한 관계자는 "이재관 부회장 형제들은 지난 2월 호암 탄생 100주년 행사 때도 참석하지 않은 걸로 안다"며 "이들은 가족 모임에도 잘 나오지 않고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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