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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은 충격으로 자살… 犯人은 아직도 "억울"
'빗나간 욕정'…'연쇄 살인' 보성 어부의 운명은
 
조선일보 기사입력 :  2010/03/06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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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큰아들은 충격으로 자살… 犯人은 아직도 "억울"

입력 : 2010.03.06 02:58 / 수정 : 2010.03.06 16:06

3년 전 보성 연쇄살인 漁夫와 그 가족 만나 보니

'빗나간 욕정'…'연쇄 살인' 보성 어부의 운명은
 
헌법재판소가 1996년 11월 합헌 결정했던 사형제에 대해 25일, 재판관 9명 중 5명의 의견으로 다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사형수 오모(72)씨가 낸 위헌심판 사건에서 "사형제는 헌법(110조 4항)이 스스로 예상하고 있는 형벌"이라며 "생명권 제한에 있어서 헌법의 한계를 일탈했다 할 수 없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본지 2월 26일 보도


보성 앞바다에 썰물이 빠져나갔다. 어선들이 갯벌에 몸을 묻고 있었다. 오씨는 더이상 마을에서 회자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오씨가 요즘 어디 있느냐”고 물어왔다. / 한경진 기자
오씨는 2007년 8월 말 전남 보성 우암마을 앞바다에서 20대 남녀를 1t어선에 태워 한적한 바다로 갔다. 오씨는 김모(남·21)씨를 바다에 밀어 갈고리가 달린 2m짜리 '삿갓대'로 찍어 살해했고, 추모(여·20)씨를 추행하려다 여의치 않자 역시 바다에 빠뜨려 숨지게 했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오씨는 같은 장소로 여행 온 20대 여성 안모(23)씨와 조모(24)씨를 배에 태웠다. 노인은 이들을 추행하려다 몸싸움 끝에 바다에 빠뜨려 목숨을 빼앗았다. 2008년 2월 광주지방법원은 오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해 8월 노인은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했다. 그 결과가 올 2월 나온 것이다. 사형제는 '합헌'이라는 결론이다. 오씨는 이 어촌에서 2남5녀를 키웠다. 자식들이 출가하자 오씨는 부인과 읍내로 이사했고, 주꾸미를 잡으려 며칠씩 홀로 우암마을에서 머물곤 했다.

잊혀져 가는 살인의 추억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랑께! 나하고는 상관이 없다니까, 뭔 상관인데 여길 찾아왔어! 뭘 물어보고 싶은겨! 큰아들? 큰아들도 사건 나고 그 해에 바로 죽어버렸어! 나는 인자 그쪽하고는 연을 끊은 사람이여."

1일 오후 3시 가랑비 내리던 마을에서 오모(여·47)씨가 외쳤다. 오씨는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며 찾아온 기자에게 억센 사투리로 소리쳤다. 그는 새로 지은 양옥집 철문을 쾅 닫아 걸어 잠그고 거실 커튼을 쳤다.

소금기 머금은 바람이 불었다. 그는 1시간쯤 지나 집 밖으로 나와 "아버지고 뭐고, 그런 짓을 한 사람과 나는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인자 잊고 지냈는디! 빨리 돌아가버리세요." 조용한 마을에 카랑한 목소리가 퍼져나갔다.

마을 사람들은 덤덤하게 말했다. 최모(여·69)씨는 "오씨도 잡혔고 잊혀진 사건"이라고 했다. "지 각시는 싫다는데 오씨가 더 매달렸지. 남자가 각시질 잘하는 것만 빼면 괜찮았어. 사건 났을 땐 웅성웅성했는데 지금은 조용혀."

마을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오씨의 사촌동생(67)은 "그렇게 독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큰아들은 사건 있고 나서 충격으로 자살했고 오씨의 처는 읍내를 떠나 서울에서 곱창집을 하는 딸네 집으로 갔다"고 했다.

"아들은… 그해 아버지 면회 간다고 해놓고 면회 못하고 죽어버렸어. 처음에는 사람들이 여길 두고 '죽음의 바다'라고 했는데 이젠 안 그려." 오씨의 이복형(88)은 "그나저나 지금 동생이 어디 가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포구 횟집에서 일하는 이모(여·48)씨는 "아주 가끔 외지에서 온 손님들이 바다를 가리키면서 '그 어부가 어디서 죽였느냐'고 묻지만 '이제 그냥 안 좋은 기억은 잊으라'고 말한다"고 했다.

"처음엔 '화성연쇄살인'처럼 마을 이미지가 굳어질까 봐 걱정을 했어요. 이제 전어축제를 해도 사람들이 100m 넘게 줄 서는 일은 없지만 경기가 안 좋아서 그렇지, 사건 때문은 아닌 거 같아요. 잊혀졌지요."

광주교도소…칭호번호 7××번

오씨는 2007년 10월 순천교도소에 들어왔다. 다음해 2월 사형 선고를 받고 광주교도소로 이감됐다. 2일 오후 12시10분 광주교도소 미결 2호 접견실. 키가 165㎝ 정도 되는 노인이 누런 수형복을 입고 들어섰다. 오씨는 짧게 깎은 머리와 이마에 진 굵은 주름 때문인지 초췌해 보였다. 충혈된 눈에 눈물이 차오른 노인은 겁먹은 듯 말할 때마다 두 손을 포개 만지작거렸다. "사형제 합헌 결정이 난 소식을 아느냐"고 물었다. 오씨는 "합헌이 무엇입니까?"라고 되물었다. "앞으로 사형을 받을 수도 있는 거다"라고 설명하자 그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가 배 태운 죄로 죽어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귀가 어두운 노인은 목청을 높이며 기자에게 "억울하다"고 거듭 말했다. "나가 사실 배 태워 달라고 해서 배 태우고, 빠진 사람 신고 안 한 죄밖에 없제. 나 보고 거짓말한다고 보성서에사 조사받으러 온 사람 너이서(넷이서) 온 데를 때려서 아프고 정신이 없어서 그랬어요. 쓰레빠로 팔목도 때리고, 발길질로 오른쪽 팔이랑 등골을 때려서 정신이 없었어요. 나는 글도 모르제, 무조건 '네''네'하고 지장 찍었어요."

남녀 넷을 살해한 70대 어부가 울먹였다. 마을 사람, 가족 모두 그가 어디 수감돼 있는지 알지 못했다. 버려진 노인은 "밥은 교도소에서 주는 대로 먹고산다"고 했다. "큰아들의 소식 들으셨느냐"고 하자 그는 "큰아들이 왜요?"라고 했다. "피해자 가족들한테 가진 것이 없어 보상을 못해줘서 마음속으로만 반성하고 있어요. 근데 희롱한 것은 없어요. 주꾸미를 몇 마리 잡아서 날것을 좋아한다길래, 고추장이랑 꺼내서 줬어요. 삿갓대로 뭣 하려고 죽였겠어요. 아가씨 조심하라고 하는데 머시매가 잡으려다 같이 빠졌어요. 나는 잡으려고 했는데 항해하는 도중이라 그렇게 되어버렸어요."

오씨의 판결문에는 사고 당일 피해자 추씨가 오후 6시26분부터 5분 동안 4번에 걸쳐 119 통화를 시도한 것으로 나와 있다. 추씨가 119에 네 번째 통화를 했을 때 "어따……하냐"라고 말하는 오씨의 음성이 녹음돼 있다.

처음 사건에서 여자친구에 앞서 먼저 익사한 것으로 알려진 남자 친구 김씨의 시신은 양쪽 발목·정강이·왼쪽 어깨·팔이 부러지고 심하게 찢어진 상태였다. 2차 범행일 당시 피해자 안씨는 오후 3시36분쯤 이전에 통화한 번호로 '배 타다가 갇힌 거 같아요~~ 경찰보트 좀 불러주세요'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전송했다. 피해자 조씨의 목에는 전형적인 목졸림 자국이 있었다.

10분 후, 접견 시간이 끝나 마이크가 꺼졌다. 오씨는 계속해서 "경찰서에서 네 명이 온몸을 뚜드렸다"고 외쳤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서도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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