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선거경제/복지미디어전쟁국제정치.경제민족/통일사회/사법군사/안보문화/스포츠
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번 찾기
전체기사보기 교육/과학   고대사/근현대사   고향소식/해외동포   포토/해외토픽   자유게시판  
편집  2018.08.21 [04:59]
교육/과학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의암 손병희 부인 주옥경, 기녀 신분서 여성 운동가로
수운 최제우는 링컨의 흑인노예 해방 선언보다 3년 앞서 두 여종 가운데 하나를 딸로 삼고 다른 하나를 며느리로 삼아
 
중앙선데이 기사입력 :  2010/02/21 [19:46]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밴드

의암 손병희 부인 주옥경, 기녀 신분서 여성 운동가로


2010.02.21 03:46 입력 / 2010.02.21 09:37 수정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1971년 3·1절 당시 70을 넘긴 가냘픈 할머니가 단상에서 낭랑한 목소리로 독립선언서를 거침없이 낭독했다. 중앙청 동쪽 광장(광화문) 3·1절 기념식장에는 박정희 대통령, 이효상 국회의장, 민복기 대법원장 등 3부 요인과 외교사절, 독립유공자, 2만여 명의 시민들이 참석했다.

민족대표 33인 유족회를 대표한 주옥경(朱鈺卿: 1894~1982·사진) 회장은 의암 손병희의 미망인으로 28세 때 홀로 되어 죽을 때까지 수절한 여성운동가였다. 수의당(守義堂)이라는 도호(道號)는 바로 ‘의암을 지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천도교의 여성운동은 우리나라 여성운동사와 궤를 같이 한다. 오랫동안 천도교 내수단(內修團)을 이끈 주옥경 여사는 일본에 유학한 엘리트로서 청빈하며 겸손한 일생을 살았다. 손병희가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갇히자 수의당 주옥경은 형무소 앞 쓰러져가는 초가집을 세내어 지극한 정성으로 손병희의 옥바라지를 했다. 꼬박꼬박 하루 세끼 사식을 만들어 넣는 한편 교파를 가리지 않고 차입비용을 부담했다.

손병희는 옥중에서 뇌일혈로 쓰러졌다. 병보석이 바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치료할 기회를 놓치고 수감된 지 19개월20일 만에야 풀려났다. 주옥경은 한시도 쉬지 않고 병간호를 해서 가족들과 교도들을 감동시켰다. 그러나 잠시 차도를 보이던 손병희는 1922년 5월 19일 영면하고 만다. 이후로 주옥경은 87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60년간 수절하면서 고결한 여성운동가의 삶을 살았다.

그녀는 원래 종로 명월관의 기생 출신이었다. 평양 근교 숙천에서 태어나 8세 때 평양기생학교에 들어간다. 주산월(朱山月)이 그의 기명이다. 그는 몸을 파는 이·삼패(二三牌) 기녀가 아니라 기악과 서화에 능한 일패(一牌) 등급의 예단(藝壇: 연예인)으로서 당시 매일신보 기자는 ‘서화의 천재’라고 평하고 있다. 주산월은 평양에서 서울로 오자마자 기둥서방이 없는 기생인 이른바 ‘무부기(無夫妓)조합’을 만들고 행수(行首)가 된다. 그해 명월관과 그 별관인 태화관을 출입하던 손병희를 만나 천도교 신도가 된 주옥경은 22세 때 셋째 부인으로 들어간다. 두 사람은 33살의 나이 차가 났다. 이후로 그는 가정과 교단에 헌신한다.

스승처럼 모시던 손병희가 순국하자 주옥경은 일본 유학을 끝내고 돌아와 여성운동에 투신한다. 소파 방정환의 미망인 손용화를 비롯해 손병희의 딸들은 주옥경을 깍듯이 어머니로 모셨다고 한다.

수운 최제우는 링컨이 흑인노예 해방을 선언하던 1863년보다 3년 앞서 두 여종 가운데 하나를 딸로 삼고 다른 하나를 며느리로 삼았다. 해월 최시형은 모든 어린이와 여성을 하늘로 모시고 섬겼다. 의암 손병희는 기생을 부인으로 삼았고 그 부인은 여성운동가로 거듭나 마침내 종법사(宗法師)가 되었다. 사람이 하늘임을 몸소 실천하고 증명해 보인 혁명가들이다.

김종록 객원기자·작가

중앙sunday 구독신청

[조인스 핫 클릭]


|||||||||||||||

 

 

 

‘수의당 주옥경’의 파란만장한 삶

의암성사 손병희에게 추서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패용한 주옥경.
의암성사 손병희에게 추서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패용한 주옥경.
[서울신문]수의당(守義堂) 주옥경(1894∼1982). 천도교 3세 교조인 의암 손병희의 세 번째 부인인 주옥경은 일제 강점기에 천도교여성회를 창단하고 여성운동을 앞장서 이끌어온 천도교 여성운동의 선구자다. 하지만 그 업적과 인간적 진실은 손병희라는 커다란 산에 가려 그동안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천도교여성회본부가 올해 창립 81주년을 기념해 펴낸 ‘수의당 주옥경’은 천도교 여성운동의 상징인 주옥경의 생애를 본격적으로 다룬 ‘첫’ 책이다.

저자는 천도교중앙총부 교서편찬위원인 김응조 천도교 선도사. 주옥경의 기녀시절부터 북한산 자락 우이동 봉황각에서 보낸 말년에 이르기까지 파란의 삶을 아홉 장으로 나눠 정리했다.

주옥경이 손병희를 처음 만난 것은 22세, 서울 명월관에서 산월(山月)이라는 이름으로 기녀 생활을 할 때다. 주옥경은 무부기조합(無夫妓組合)을 만들어 그 대표인 향수(香首)가 되는 등 일급 명기로 이름을 날렸다. 의암 생전에 주옥경은 의암을 스승이자 성사(聖師)로 받들며 뒷바라지에 혼신을 다했다.3·1운동을 이끈 의암이 감옥에 수감되자 감옥 앞에 단칸방을 얻어 옥바라지했고,1922년 의암 임종 직전까지 그의 입에 미음을 떠넣으며 병구완을 했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혼자가 된 주옥경은 사별의 충격을 딛고 왕성한 사회활동에 나선다.1924년 천도교 최초의 여성단체인 천도교내수단을 창립하고 초대 회장에 오른 주옥경은 내수단이 내성단, 내수회, 부인회 등으로 명칭이 바뀌어 오늘날 천도교여성회로 정착될 때까지 반세기 가까이 천도교 여성단체의 수장을 도맡았다. 말년에는 의암 선생의 유택이 가까이 있는 봉황각에서 25년 동안 기거하며 ‘수의당’이란 당호 그대로 의암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힘썼다. 천도교중앙총부는 주옥경의 이런 업적을 기려 1971년 천도교 최고의 예우직인 종법사로 추대했다. 주옥경은 포덕 123년(1982) 88세를 일기로 환원했다. 책에는 천도교 신구파 분규, 의암 숭모사업 등의 이야기도 실려 있어 천도교 일반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8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저작권자 (c) 서울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민족신문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주간베스트
  개인정보취급방침광고/제휴 안내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대표전화 :010-6432-7771
Copyright ⓒ 2007 인터넷 민족신문. All rights reserved.
Contact baek43333@hanmail.net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