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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국주의에 희생된 청년들 넋 팔아 ‘관광특수’
가고시마 ‘자살특공대 마을’ 17살에 희생 박동훈 등조선인 11명 자료 전시
 
한겨레신문 기사입력 :  2010/02/16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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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국주의에 희생된 청년들 넋 팔아 ‘관광특수’
2010특별기획 성찰과 도전
가고시마 ‘자살특공대 마을’
‘특공평화회관’ 취재 까다로운 사항 많아
 
  • 친일로 치부하기 힘든 부분 연구 필요
  • 조종사 꿈꾼 두 조선청년 ‘인간폭탄’으로
  • b-29와 충돌뒤 전사…유골 쪼개 ‘군신’으로 선전
  • 한겨레
    » 가고시마현 특공평화회관 내부에 전시돼 있는 자살특공대원을 기리는 ‘특공용사’ 동상.
    지난달 20일 규슈 남쪽 가고시마현의 지란특공평화회관(이하 회관)을 찾았다. 특공은 특별공격대의 약어다. 일본 군부가 구사한 특공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는데 지란의 특공은 소형 전투기에 250㎏의 폭탄을 싣고 날아가 적군 함정에 그대로 돌진하는 자살공격을 말한다. 지란은 현재 특공의 대명사처럼 돼 있다. 전사자들이 남긴 유서, 일기, 편지 등 각종 자료와 부대원들의 일상생활을 보여주는 사진, 당시의 전투기 실물과 복원한 모형 등을 전시한 회관이 있기 때문이다.
     

    사전에 취재신청을 할 때부터 남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전자우편과 팩스로 취재계획을 알렸더니, 취재신청서 용지를 보내주었다. 취재 목적과 방법, 취재 책임자의 이름 등을 쓰는 항목 외에 주의사항이 따로 있다. 전사한 대원이나 유족 관계자를 모독해서는 안 되고 관내의 사진 촬영은 금지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가고시마중앙역에서 미나미큐슈시 지란초에 있는 회관까지는 버스로 1시간20분 정도 걸렸다. 안내소에 용건을 말했더니 마쓰모토 준로라는 노인이 나와 응대를 했다. 명함에 쓰인 그의 직책은 참사이고 82살의 고령이다. 자신의 중학교 동기생 2명이 자살특공대로 나가 전사했다는 그는 회관의 전시 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만물박사인 듯 변사처럼 말을 했다. 입구로 들어가면 오른쪽 벽에 1036명의 사진이나 그림이 간략한 인적사항과 함께 쫙 불어 있었다. 전사 일시와 부대 순서에 따라 배치한 것이라고 한다.

    » 지란특공평화회관 들머리에 1999년 세워진 조선인 자살공격대 위령비. ‘아리랑 노래 소리 저 멀리 어머니 나라에 생각을 남기고 진 꽃들’이란 비문이 새겨져 있다.


    17살에 희생 박동훈 등조선인 11명 자료 전시
     
     
    마쓰모토는 수많은 사진 가운데 하나를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했다. 일본명 오카와 마사아키, 한국명 박동훈, 함경남도 함주군 출신이다. 1945년 3월29일 전사한 그는 소비 15기였다. 소비란 육군소년비행학교를 말한다. 이곳에 전시된 11명의 조선인 가운데 가장 빨리 희생된 그는 나이가 17살, 계급은 소위다. 마쓰모토가 17살의 나이에 어떻게 소위가 될 수 있는지 묻고는 스스로 말을 이어갔다. 소년비행학교 과정을 이수하면 부사관인 오장(하사) 계급이 주어졌다. 일제는 특공대로 나갔다가 전사한 사람에게 원칙적으로 2계급 특진을 시켰다. 하지만 군국주의 영웅을 만들려면 아무래도 장교 지위가 필요했다고 생각했던지 소위로 만들었다. 마쓰모토는 “남한 출신의 경우 유족이 회관을 찾아오기도 하지만 북한 출신은 유족과 거의 접촉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3명은 죽어서도 우리 이름을 찾지 못해 일본 이름으로 남아 있다.
     

    고이즈미 등 비 건립 매년 50만명 관람

    지란이 특공의 마을이 된 유래는 진주만 기습 직후인 41년 12월 말 다치아라이 육군비행학교의 분소가 설립됐던 데서 비롯했다. ‘아카돈보’(붉은 잠자리)로 불리던 연습기로 훈련하던 생도들은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극단적 자살공격에 투입됐다. 회관은 45년 3월 말부터 7월 초에 걸쳐 오키나와 전투에 참여했던 육군 특공대원 전사자들을 기리는 시설이다. 주변에는 악몽을 좋은 꿈으로 바꿔준다는 관음보살이 있는 특공관음당, 호국신사, 생존 동기생들이 기수별로 세운 추도비들이 있다. 비 건립자 중에는 총리 재임 중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극우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의 이름도 보였다.

    회관 안에는 전사자들을 출신 지역별로 집계한 큰 표가 걸려 있다. 북쪽의 홋카이도에서 시작해 가고시마로 내려오고, 오키나와·가라후토(사할린)를 거쳐 맨 마지막에 조선이 있다. 표를 유심히 지켜보던 한 일본인이 “어, 조선인도 있네”라고 동행자에게 말을 건넸다. 전시물 어디에도 조선인이 왜 전사자 명단에 있는지 설명하는 부분이 없다. 일본 젊은이들을 비극적 죽음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은 지도부의 잘못을 지적하는 내용도 찾아볼 수 없다. 마쓰모토에게 잘못된 전쟁을 미화하고 있다는 비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개개인이 보고 느낄 문제”라고 짧게 답했다. 전반적으로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당한 앳된 청년들의 넋을 팔아 관광특수를 즐기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해마다 수학여행 등으로 50만명이 찾아온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회관의 영어 표기를 ‘peace museum’(평화박물관)으로 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지란/글·사진 김효순 대기자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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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등록 : 2010-02-16 오전 08:20:33 기사수정 : 2010-02-16 오전 08:5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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