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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옹정제
"너희들이 정치를 어떻게 하는지 짐이 모르고 대충 넘어갈 것 같은가?"
 
조선일보 기사입력 :  2010/01/16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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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가 말하기를.. 나라가 망하는 일곱가지 징조가..
다혈질의 막후정치가 정조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41] 옹정제
 

  •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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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0.01.15 22:54 / 수정 : 2010.01.15 23:08
     
     
    중국의 역대 황제 중에는 능력이 출중한 인물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청나라 옹정제(雍正帝)만큼 꼼꼼하고 성실한 제왕은 흔치 않을 것이다. 천자는 일일만기(一日萬機)라 하여 하루에 1만건의 사무를 처리한다고 할 정도로 바쁜 일과를 보냈다.

    매일 새벽 4시 이전에 기상하여 선대의 역사인 실록, 제왕의 명령과 가르침을 모은 조칙집(詔勅集)과 보훈(寶訓)을 한권씩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7시까지 식사를 마친 후 알현을 청하는 자들을 연이어 접견하였는데 대개 오후까지 계속되었다. 중간에 틈이 나면 학자를 불러 경서와 역사 강의를 들었다.

    당시에는 보통 저녁 7~8시가 취침시간이었지만 옹정제는 밤 시간을 이용해서 주접(奏摺·지방관들이 황제에게 직접 올린 보고서)을 읽고 유지(諭旨·붉은 먹으로 쓴 황제의 답장)를 써 보냈다. 이렇게 하루 저녁에 처리한 문건이 적어도 20~30통, 많게는 50~60통에 달했다.

    옹정제는 관리들에게 자신의 의견이나 자세한 보고사항들을 숨김없이 보고하도록 주문했다. 제대로 일을 못하거나 헛된 보고를 올리는 자에게는 "금수라도 너보다는 낫다, 눈가림만 하는 사기꾼, 무학하고 무능하며 욕심만 많은 놈" 하는 식으로 가혹한 질책을 쏟아 부었다. 이런 정도로 이야기를 할 때에는 물론 그만큼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방에 밀정들을 두어서 정보를 크로스 체킹하고 있었던 것이다. "짐은 이 일을 이전부터 확실히 알고 있었다. 너는 이제 와서 무슨 낯으로 보고하는 것이냐…너희들이 정치를 어떻게 하는지 짐이 모르고 대충 넘어갈 것 같은가?" 황제에게서 이런 질책이 담긴 편지를 받으면 아마 등에 식은땀이 흘렀을 것이다.

    그의 거실의 기둥에는 '原以一人治天下(천하가 다스려지고 않고는 나 하나의 책임) 不以天下奉一人(이 한 몸을 위해 천하를 고생시키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이라는 대구를 뽑아 써 붙였다. 일부 정치가들이 상대방을 향해 '제왕적'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제왕이 어떤 일들을 하고 있었는지는 알고 그런 말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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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희제 [康熙帝, 1654.5.4~1722.12.20]
    요약
    중국 청나라의 제4대 황제(재위 1661∼1722). 중국 역대 황제 중 재위기간이 가장 길다. 삼번의 난을 평정한 뒤 국가는 재정적, 내정적으로 안정되었다. 외정적으로는 중국의 영토를 크게 확장하였다.
    재위 1661년∼1722년
    본명 현엽(玄燁/玄曄)
    별칭 시호 인황제(仁皇帝), 묘호 성조(聖祖)
    국적 중국 청(淸)
    활동분야 정치
    주요저서 《강희자전》 등
    강희제 /
    본문
    이름 현엽(燁/曄). 시호 인황제(帝). 묘호 성조(祖). 연호 강희. 순치제(帝)의 셋째 아들로, 아들 35명, 딸 20명을 두었다. 순치제의 유명(命)으로 8세 때 즉위하고, 14세 때 친정을 시작하였는데, 중국 역대 황제 중에서 재위기간이 61년으로 가장 길다. 청나라의 지배는 그의 재위기간에 완성되었으며, 다음의 옹정제(帝)·건륭제(帝)로 계승되어 전성기를 이루었다. 즉위 초에는 아버지의 유조(詔)로 4명의 만주 기인(人)이 보정대신(臣)이 되어 집정(政)의 임무를 맡았으나, 1669년부터 실질적인 친정이 되었다.

     
    당시 명(明)나라의 마지막 세력이었던 계왕(王)은 이미 멸망하고, 반청세력이었던 정성공(功)도 사망하여 중국의 지배가 완성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평정(定)을 맡았던 윈난[南]의 평서왕(西王) 오삼계(桂), 광둥[東]의 평남왕(王) 상가희(喜), 푸젠[建]의 정남왕(王) 경계무(茂)와 그 아들 정충(忠)의 삼번왕(王)은 강력한 군사력과 함께 독립정권을 유지하며 청나라를 위협하였다.
     
    1673년 평남왕의 철번(藩)을 계기로 삼번의 난이 일어나자 단호한 태도로 이에 대처하여 1681년 평정에 성공하였으며, 대만의 정씨(氏)도 내분으로 1683년에 멸망함으로써 마침내 청나라의 군사적 지배가 완성되었다. 삼번의 난을 평정한 후에는 이에 소비되던 방대한 비용이 필요없게 되어 국가재정은 여유가 생겨 안정을 찾게 되었다. 그리하여 50년간의 면세 총액이 1억 냥(兩)을 넘었으며, 1712년에는 인두세(稅)를 정액화하고, 조운(運)을 정비하며, 황허강[江]의 치수(水)에 힘쓰는 등 내정상으로도 안정된 시대를 이루었다.
     
    외정에 있어서는 러시아의 남하를 방위하기 위하여 아이훈성[城]을 구축하고 1689년 유리한 조건으로 네르친스크조약을 맺었다. 1690년에는 외몽골[古] 중가르부[部]의 갈단[丹]을 토벌하고, 1691년에는 칼카부를 평정하였으며, 1696년에는 차오모드[多]에서 갈단군[軍]을 괴멸시키고, 1697년에 갈단을 자살하게 만듦으로써 외몽골을 판도 안에 집어넣었다. 그 후 갈단을 계승한 체왕아라푸탄[坦]이 티베트에 들어가 세력을 떨치게 되자 1718년부터 티베트에 원정하여 그 지배권을 빼앗고, 중국의 영토를 크게 확대하였다.
     
    국내외 정치에서의 성공은 문화에도 반영되어 중국 최대의 유서(書)인 《고금도서집성》의 편찬과 《강희자전》의 출판을 비롯하여 많은 서적을 편찬하였다. 또한 예수회를 중심으로 한 선교사들로부터 서양의 학문과 기술을 도입하게 하였으며, 중국에서 처음으로 위도(度)를 적은 정밀한 지도 《황여전람도(輿圖)》를 작성시키는 등 문화발전에도 기여하였다. 만년에 후계자 문제로 고통을 겪고, 황태자를 폐위시키기도 하였으나, 끝내 해결하지 못하고 1722년 12월 20일 병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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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정제 [雍正帝, 1678.12.13~1735.10.8]
    요약
    청(淸)나라 제5대 황제(재위 1722∼1735). 군기처대신(軍機處大臣)을 두었고 지방대관에게 주접(奏摺)이라는 친전장(親展狀)에 의해 정치의 실정을 보고하게 하였다. 토착민에게는 개토귀류(開土歸流)의 정책을 펴서 내지화(內地化)를 꾀하였다.
    본명 애신각라 윤진
    별칭 묘호 세종, 시호 헌제
    국적 중국 청
    활동분야 정치
    옹정제 / 청(淸)나라 제5대 황제.
    본문
    성명 애신각라 윤진(胤禛). 묘호 세종(宗). 시호 헌제(帝). 재위 연호에 따라 옹정제라 부른다. 강희제(帝)의 넷째 아들이다. 강희제 말기에 이르러 황족과 조정의 신하 사이에 붕당의 싸움이 심하였으므로, 즉위 후 동생인 윤사(祀) ·윤당(允禟) 등을 물리쳐 서민으로 삼고, 권신인 연갱요(堯) ·융과다(多) 등을 숙청하여 독재권력을 확립하였다.
     
    중앙관제상 종래의 내각은 형식을 중히 여겨 정무가 막혀 잘 처리되지 못하였으므로, 별도로 황제 측근의 군기처대신(臣)을 두고, 군기처가 내각을 대신하여 6부를 지배하게 하였다. 지방의 백성을 다스리는 데에도 마음을 써서, 지방대관에게 주접(摺)이라는 친전장(狀)에 의해 정치의 실정을 보고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황제 스스로 뜯어 보고 주필(筆)로 주비(硃批:비평)를 써서, 발신인에게 반송하여 지시 ·훈계를 내렸다. 뒤에 이것을 편찬한 것이 《옹정주비유지(正硃旨)》이다.

    지방관리의 봉급이 지나치게 적었으므로 그들에게 양렴전(錢)을 지급하였다. 또 학교에 《성유광훈(訓)》이라는 교육칙어를 배포하여 시험 때에 베끼도록 하고, 지방에 남은 천민의 호적을 제거하여 양민으로 만들었다. 윈난[南] ·구이저우[州] ·광시[西]의 산간에 사는 토착민인 먀오족[族]이 토사(司) 밑에서 반독립의 상태에 있는 것을 철폐하였다. 즉, 정부에서 파견하는 관리인 유관(官)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는, 개토귀류(流)의 정책을 펴서 내지화(化)를 꾀하였다. 대외적으로는 칭하이[海] ·티베트의 동란을 평정, 지배체제를 확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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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륭제 [乾隆帝, 1711.9.25~1799.2.7]
    요약
    중국 청나라 제6대 황제(재위 1735∼95). 조부 강희제에 이어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강희 ·건륭 시대’라는 청나라 최성기를 이룩하였다. 이 때에 중국이 유럽에 소개되었다.
    재위 1735년∼95년
    본명 홍력(弘曆)
    별칭 시호 순황제(純皇帝), 묘호 고종(高宗), 십전노인(十全老人)
    국적 청(淸)
    활동분야 정치
    건륭제 /
    본문
    이름 홍력(曆). 시호 순황제(帝). 묘호 고종(宗). 옹정제(帝)의 넷째 아들로, 모후는 유호록(鈕祿: 都의 女)이고 황후는 부찰(察: 保의 딸)이며 아들 17명, 딸 10명을 두었다. 옹정제가 제정한 태자밀건법(法)에 따라 1735년 황태자를 거치지 않고 바로 즉위하였다. 조부 강희제(帝)의 재위기간(61년)을 넘는 것을 꺼려 재위 60년에 퇴위하고 태상황제가 되었는데, 이 태상황제의 3년을 합하면 중국 역대황제 중 재위기간이 가장 길다.

    조부 때부터의 재정적 축적을 계승하여 안정되고 문화적으로도 난숙한 ‘강희 ·건륭 시대’라는 청나라 최성기를 이룩하였다. 초기에는 민중을 계도하고, 만인(滿人) ·한인(人) 간의 반목을 막고, 붕당의 싸움과 황족의 결당을 금하는 등 내치에 전념하였으며, 만년에는 중가르 평정 2회(1754 ·1757), 위구르 평정(1759), 대금천(川) 평정(1749), 대 ·소금천(川) 평정(1776), 타이완(1788) ·미얀마(1778) ·베트남(1789) ·네팔(1790 ·1792) 등의 원정과 평정 등 10회에 걸친 무공을 세워 스스로 십전노인(人)이라 불렀다. 또 조부 강희제를 본떠 남순(巡) 6회, 동순(巡) 5회, 서순(西巡) 4회의 내지 순회도 하였다. 그러나 많은 외정(征)과 내순(巡), 천수연(千叟宴) 등의 사치로 막대한 경비를 낭비하여 만년에는 쇠운을 가져왔다. 정치적으로도 그가 총애하던 화신(和珅)의 전횡과 관리의
     독직(職), 만주인 ·무관들의 타락 등이 1796년 백련교(敎)의 난 때 표면화되었고, 각지에 반란이 일어나자 1795년 가경제(帝)에게 양위했다.

    문화적으로는 그의 개인적 자질이 풍부하여 절정에 달했으며, 예수교 전도사들을 통해 서양의 학문 ·기술이 전래되고, 중국이 유럽에 소개되는 등 국제적 교통이 열렸다. 한편 고증학의 번영을 배경으로 《사고전서(書)》가 편집되고 《명사(明<span onmouseover="tooltip_on('','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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