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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異人)을 인정하는 나라
 
[文香] 기사입력 :  2009/10/06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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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異人)을 인정하는 나라
  글쓴이 文香 작성일 2009/07/10 22:33 조회 591 추천 16



 



1.

역사를 개관하다보면 때로는 많은 사람이 못하는 것을 어느 한 사람은 할 수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놓치는 것을 어느 한 사람은 놓치지 않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많은 사람은 부분을 보나 그 어느 사람은 전체를 보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람을 선지자 선각자 선구자라 부르기도 하며

이의자(異議者) 항의자(抗議者) 반대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사람들은 관습이나 전례(前例), 통념에 이의를 달고 반기들 들기도 하며

전혀 생소한 것을 소개하거나 오랫동안 정상에서 벗어난 것을 원래대로

되돌려놓기도 한다.

인체가 계속적인 신진대사를 해야 원활한 상태를 유지 하듯

나라도 계속적인 신진대사를 해야 유지 발전된다.

고인 물은 썩기 쉬우며, 처음에는 진선진미한 것도 세월이 가면 구악(舊惡)이

되고 신악(新惡)으로 바뀌기 때문에 이를 바로 잡고 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시대의 향도(嚮導)노릇을 하며 시대정신을 규정할 필요가 생기기도 한다.

바로 이 역할을 하려고 시대 앞에 서고, 사람 앞에 서는 것이

이 사람들의 의무이다.

이 사람들이란 종교적으로는 계율적인 유대교를 배척한 예수이고, 다신교를

거부한 마호멧이고 만인평등을 내세운 최제우(崔濟愚)이다.

정치적으로는 새로운 세상을 지향했던 남이(南怡) 조광조(趙光祖) 허균(許均)

김옥균(金玉均) 전봉준(전琫準)이자 황소(黃巢) 이자성(李自成) 홍수전(洪秀全)

주덕(朱德)이다.

사상사에서는 인간인식의 지평을 열어준 코페르니쿠스(copernicus) 토마스 모어(more)

갈릴레오(galileo) 로크( j locke) 루소(j j rousseau) 등일 것이다.




2.

옛날부터 우리나라에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있어왔고

「앞에도 서지 말고 뒤에도 서지 말고 중간에 서라.」는 말이 아직까지도

득세하는 것은 숱한 사화와 정변 속에서 독특하고 걸출한 사람에 대한

기피경향이자 경원의 대상이 되었음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람들은 이른바 뉴턴(newton)의 제 1법칙이라 일컫는 「관성의 법칙」에

충실하여 기존 것을 따르고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는 속성이 있다.

변화는 현상을 타파하고 익숙한 것과 결별하게 하며 오랫동안 신주처럼 모셔왔던

지식들을 부셔버리기 때문에 심정적으로나 기득권적 측면에서

반감을 갖게 하고 저항을 불러온다.

우리가 기존의 인습과 제도를 혁파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위대한 이라는 최상급을

붙이고, 반역자를 써서 모순어법을 쓰는 것은 개혁 개량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우며

대단한 용기와 끈질긴 신념이 필요함을 나타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역사란 시대 앞에 서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금기(禁忌)가 해제되고 성역(聖域)이

벗겨지며, 비밀이 밝혀지는 것이다.

이러함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선각자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으며

대접하지도 않는 장구한(?)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이웃나라 중국은 정적(政敵)이라도 예외적으로 죽이는데 반하여 우리나라는

예외적으로 살리며, 왕조에 충성하지 않거나 유교이외의 다른 것을 내세우면

「난신적자(亂臣賊子)」라 하여 가차 없이 도륙(屠戮)한다.




3.

역사에서 가정은 있을 수 없다지만

만일 루터(luther)의 종교개혁이 없었다면 암흑중세는 훨씬 더 지속 되었을 것이고

이율곡(李栗谷)의 「십만양병설(十萬養兵說)」이 있었더라면 임진왜란의 병화(兵禍)는

덜 했을 것이며,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의 착공을 미루었더라면

대량수송의 대동맥은 꽤 많이 늦어졌을 것이다.

우리는 오늘 똑똑히 알아야 한다!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이가 메시아(the messish)이며,

이교도(異敎徒)들이 죽이려고 했던 사람이 예언자(豫言者)이며,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죄명을 쓰고 죽은 전봉준이 민중의 대변자였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는 명심하고 환기(喚起)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버리고 내치고 짓밟은 사람 중에 선지자가 있으며

선구자가 있다는 사실을-

잘못하면 우리가 핍박자이며 압제자이며 개혁을 방해하고 기득권만 고집한

수구세력으로 낙인찍히며, 역사의 죄인 시대의 장애물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내가 강정구나 조갑제를 인정하고 마광수나 안병훈을 수용하는 것은

그들이 영예를 받을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우리가 놓친 것을 그들은 보며

우리가 버린 것들의 소중함을 그들만은 알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의자는 우리의 무지를 깨우쳐주며 체제의 경색을 막아주고

시대의 진운(進運)을 타게 하는 것이다.




4.

통론(通論) 통설(通說) 통념(通念)에 이의를 달고 항의를 하며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불온하거나 불령(不逞)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이다.

이종교배를 통하여 더 건강할 수 있으며, 새로운 가지치기나 접목을 통하여

풍성한 결실을 거둘 수 있으며, 약점을 보강하고 단점을 고치며,

나를 나날이 강성하게 하는 우군(友軍)이자 원군(援軍)인 것이다.

이렇게 하면 체제의 우수성이 드러나고 부단한 자기혁신을 할 수 있으며

저절로 관용하고 포용하는 정신을 깃들게 한다.

이의자는 마치 한 알의 밀알이 썩어 많은 소출을 거두는 것과 같고

겨자씨만한 믿음으로 태산을 움직이는 것과 같다.

항의자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를 일으키기도 하고, 한 국가나 세계의 지형을

바꾸기도 하며, 나라의 구획을 정하기도 하고, 사람들을 수족처럼 부릴 수 도 있고,

격앙하게 하기도 하고, 분노하게 하기도, 하며 탄식하게 할 수 있다.

「어찌 일찍이 들어보지 못했다.」는 말로 내치기만 할 것인가.

나는 우리나라가 에드워드 기번(e gibbon)이 로마제국을 가리키는

「호수(湖水)」가 되어 갖가지 상이한 것들을 받아들이며 분해하고 동화시키며,

 다시 다른 나라로 나눠주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




5.

우리는 이의자들이 스스로 변명하게 하고 변호할 수 있게 허락하고

못 마친 것을 완성시킬 수 있는 여지도 남겨놔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남선(崔南善) 이광수(李光洙)을 위한 변명도 허락하고

인혁당 사건으로 고혼(孤魂)이 된 사람들의 호소도 경청해야 한다.

뿌리를 뽑아버린다거나 싹을 잘라야 한다는 위협성 발언들은

인간의 보편적 가치들이 침입 받을 때 그것들에 대해 쓰는 것이지

법령의 존재유무나 정책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는

너그러워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들에게 동냥은 못줄망정 쪽박은 깨지 말자는 것이다.

선각자는 모든 것의 단서(端緖)이고 단초(端初)이자 시작이고 비조(鼻祖)가 된다.

이들이 길을 열어놓으면 이 길을 튼튼히 하며 확장하여 이들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보수주의자들이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정통이라 부르고 다른 사람들을 이단이라 부르지만

따져보면 승자가 정통이고 패자가 이단이었다.

현실이 정통이었고 미지(未知)의 것, 장차 올 것은 언제나 이단이었다.

그러나 꼬리가 몸통을 흔들며, 주변이 중심이 되며, 나중 배운 자가

먼저 되기도 하는 것이 세상사인 것이다.

어느 사람들 중에는 열에 아홉은 못하지만 하나는 공맹(孔孟)을 능가하는

것이 있을 수 있으며, 조종지법(祖宗之法)이라 하여 마냥 따를 수만은

없는 것이다.




6.

오늘날은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하고 사유체계를 바꾸자고

아우성하는 시대이다.

어떠한 반동(反動)이 일어나고 어떠한 전단(戰端)이 일어나도

「초(楚)나라 궁에서 쏜 화살은 초나라 사람이 줍는다.」는 말을 떠올려

보다 너그러워져야 한다.

그 옛날 남이를 척살(刺殺)하고 조광조를 사사(賜死)하고 허균을 주살(誅殺)하고

김옥균을 참살(斬殺)하고 전봉준을 효수(梟首)한 것을 반복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인재를 알아주거나 대접은 못할망정

그렇게 무참히 죽이지는 말아야 되는 것 아닌가?

또다시 이땅은  뜻있는 사람들을 좌절시키며 그들의 꿈과 이상을 묻어버리는

무덤이 되지는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가 사람을 못 알아보는 것은 용렬해서 손해라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활발한 의견 개진을 막고 창의성을 꺾으며

기개를 좀 먹으며 사람을 수동적이게 하는 것이 더 큰 악폐인 것이다.

그것은, 이인(異人)을 멀리하는 것은 진취적이고 역동적인 나라와는 대치되는 것이다
  

다경
역시 한수 높은 글 안목을 확 트여 주시는 군요. 나의 주변이 인재가 묻히는 무덤이 되지 않게 되기를 나날이 새로워지는 마음가짐으르가져야 겠다는 결의를 하게 됩니다.
2008/07/31 07:49:39

벽진
문향님, 오래 만입니다, 하절에 건강힛며 잘 계셨는지요, 오래만에 대하는 글이라 단숨에 읽고 나니 다시 읽어야 하겠네요, 아무쪼록 건강하시고 건필하시어 자주 뵙기를 바랍니다.
2008/07/31 16:08:21

文香
다경. 벽진님. 안녕하세요? 무더위와 장맛비가 사람을 느슨하게 만듭니다. 백석의 시 한 줄은 1000억보다 더 가치있다는데,우리도 그런 글을 쓴다는 것은 요원한 것인가요? 기억력은 소진되고 열의는 식는 것이 문제입니다.
2008/07/31 22:01:14

ㅋㅋㅋㅋ
이 글을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 몇이나 있을까요? ㅎㅎㅎㅎㅎ 좋은 이야기 입니다.
2008/08/05 19:2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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