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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제를 타파하고 군현제를 실시하여 중국천하를
책을 불사르고 유가들을 구덩이에 묻어 죽이다. -분서갱유(焚書坑儒)
 
양승국 기사입력 :  2009/03/0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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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5- 봉건제를 타파하고 군현제를 실시하여 중국천하를 2009-03-04 15:25:20  
작성자: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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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군으로 나누었다.
 

5. 봉건제(封建制)를 타파하고 군현제(郡縣制)를 실시하여 중국 천하를 36군으로 나누었다.




   승상 왕관(王綰) 등이 건의했다.

“ 제후들을 모두 멸하여 그 땅에 처음으로 군현(郡縣)을 설치하였으나 연(燕), 제(齊), 형(荊) 땅은 모두 이곳에서 거리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그곳에 왕을 두어 다스리지 않으면 안정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청컨대, 황자들을 그 곳의 왕으로 세울 것을 청하오니 허락하시기 바랍니다.”

 

  시황이 왕관 등이 건의한 내용을 군신들끼리 의논하도록 했다. 군신들은 모두 찬성하였으나 정위(廷尉) 이사(李斯) 한 사람만이 반대하며 말했다.

 

“ 주무왕(周武王)이 은(殷)을 멸하고 주(周)를 세웠을 때 그의 수많은 자제와 동성의 친족들을 분봉하여 각 나라의 제후로 봉했으나 시간이 지나자 왕실과는 소원해 지고 서로간에 싸움이 일어나 원수지간이 되고 심지어는 서로 간에 전쟁을 일으켜 정벌하고 죽이고 했습니다만 주천자는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에 이르러 천하는 폐하의 조상들 신령에 힘입어 하나로 통일되어 모두가 군현(郡縣)으로 되었습니다. 폐하의 자제들과 공신들에게 이곳에서 얻어지는 부세로 중상(重賞)을 내리신다면 그들을 다스리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천하가 다른 뜻을 품지 않게 하는 것이 곧 천하를 안정시키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제후들을 세우는 것은 옳지 않는 일입니다.”

 

  시황이 말했다.

 

“ 천하의 제후들이 쉬지 않고 싸움을 계속하여 고통을 많이 받아온 것은 이것은 모두 제후들이 할거했기 때문이다. 조상들의 신령에 힘입어 천하를 처음으로 안정시켰는데 다시 제후들을 세운다면 그것은 곧 다시 전쟁의 씨앗을 심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어찌 평화와 안녕을 얻기다 어렵지 않겠는가? 정위가 한 말이 옳다. ”

 

  시황은 천하를 36군으로 나누고 각 군(郡)에는 수(守), 위(尉), 감(監)1)을 두었다. 백성들을 검수(黔首)라고 바꾸어 부르게 하고 천하에 큰 잔치를 벌이게 하였다. 다시 천하의 병기를 거두어 함양(咸陽)에 모아놓고 녹여서 종과 악기를 만들고 다시 12개의 동상(銅像)을 만들었는데 무게가 각각 1000 석(石)2)으로 모두 궁전의 뜰 안에 세워 두었다. 법률과 무게와 길이를 재는 단위를  통일하고, 수레와 그 폭을 표준화 시켰다.

 

또한 문자의 서체는 한 가지만 쓰도록 했다. 진나라의 영토는 동쪽으로는 바다에 이르러 조선(朝鮮)에 닿고 서쪽으로는 임조(臨洮)와 강중(羌中)에 이르렀고 남쪽으로는 북향호(北嚮戶), 북쪽으로는 황하를 천연의 방어선으로 삼아 음산(陰山)에서 요동(遼東)에 이르렀다. 천하의 부호(富豪)들을 모두 함양에 옮겨 살게 하여 그 호수가 무려 12만 호에 달했다.

 

조상신을 모시던 종묘(宗廟)와 황제가 거했던 장대궁(章臺宮) 그리고 상림원(上林苑) 등은 모두 위수(渭水)의 남쪽 언덕에 자리잡았다. 진나라가 제후들을 파할 때마다 그들의 궁실을 본떠 함양의 북쪽 언덕에 궁궐을 축조하여 함양의 남쪽 위수 강안으로 나있는 옹문(雍門)의 동쪽으로 나가 경수(涇水)와 합류되는 지점에 이르기까지 구름다리로 연결된 전각(殿閣)과 주각(周閣)3)이 연이어 늘어 우고 제후들을 멸할 때마다 그들로부터 얻은 미녀들과 종고(鐘鼓)로 그 건물들의 안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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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6. 분서갱유
 
작성자:양승국
2009-03-04 15:3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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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책을 불사르고 유가들을 구덩이에 묻어 죽이다. -분서갱유(焚書坑儒)

   진시황 34년, 기원전 213년 함양궁에서 주연을 베풀었다. 박사복야(博士僕射)4) 주청신(周靑臣) 등이 시황제의 위엄과 덕을 칭송했다.5) 제인 순우월(淳于越)이 앞으로 나가 간했다.

“ 신은 듣건대, 은나라와 주나라가 천여 년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왕실의 자제와 공신들을 제후로 봉하여 왕실의 심복으로 삼아 돕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폐하께서는 천하를 가지시고도 그 자제들을 일개 필부로 만들어 종국에는 전상(田常)6)과 당진(唐晉)의 육경(六卿)7)이 일으킨 것과 같은 화근을 만들고 계십니다. 주위에 보필하는 신하들이 없는데 위험에 빠졌을 때는 어떻게 서로 구할 수 있겠습니까? 옛것을 받들어 모범으로 삼지 않고서는 오래 가는 것을 저는 듣지 못했습니다. 오늘 주청신 등이 면전에서 아첨하여 폐하를 잘못으로 이끄니 이는 충신이 아닌 것입니다. ”

 

  진시황이 주청신과 순우월이 논한 것을 승상에게 내려 보내 검토하도록 했다. 이사는 두 사람의 말에 오류가 있다고 내치고 곧바로 그 이유를 들어 상소문을 올렸다.

 

“ 옛날 천하가 혼란스럽게 된 것은 하나로 통일되지 못하고 제후들이 난립하여 말을 할 때는 항상 옛날의 일을 끄집어내어 당대의 일을 부정하고 허언을 꾸며 세상의 실제적인 일들을 어지렵혀 왔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사로운 학문만이 옳다고 하면서 황제께서 세우려고 하는 것들을 비방하고 있습니다.  오늘 폐하께서 천하를 겸병함으로 해서 흑백과 시비를 분명히 구분하여 온 천하에 황제 한 분만만이 존중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백가의 각 학파들은 조정이 제정한 법령과 제도를 비난하고, 일단 조정이 법령을 공포했음을 듣게 되면, 그들은 즉시 그들의 학설로 갑론을박합니다. 그들이 집에 돌아가면 마음속으로 불만을 품고, 문밖으로 나서면 길거리에서 이러쿵저러쿵 말을 분분하게 만들고, 폐하를 비난함으로써 명성을 삼습니다. 또한 그들은 취지를 달리함을 고상함으로 삼으며 여러 무리들을 이끌고 비방을 조장합니다. 이러한 일들을 금지하지 않으면 위로는 폐하의 위세를 떨어뜨리고 아래로는 도당을 결성합니다. 따라서 그들을 금지시켜야 옳을 것입니다. 

 

청컨대 시경(詩經)과 상서(尙書)를 금하고 제자백가들이 지은 책들을 모두 폐기시키기 바랍니다. 령을 발하여 30일 안에 모두 버리지 않으면 묵형을 가한 후 성 쌓는 노역의 벌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폐기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은 의서나 약서, 복술서와 농사와 수목에 한하고 그것들 배우고자 하는 자들은 관리들을 스승으로 삼게 하십시오.”

  진시황이 이사의 의견을 옳다고 여겨 시경과 상서 및 제자백가가 지은 책들을 모두 거두어 불태움으로써 백성들을 우매하게 만들어 천하에는 옛일로써 지금의 일을 비방하지 못하게 했다.




  법도를 밝히고 율령을 제정했으며 또한 문자와 도량형을 통일시켰다. 천하의 각 지역마다 이궁(離宮)과 별관(別館)을 짓게 하고 그 이듬해에 순행을 행하고, 밖으로는 사방의 오랑캐를 물리쳤다. 이것들은 모두 이사의 노력에 힘입은 바가 컸다.


1) 수(守)/군(郡)의 행정장관, 위(尉)/군(郡)의 군사 책임자, 감(監)/군(郡)의 감찰관


2) 석(石)/ 중량의 단위로 한 석은 120 근이다. 진한 때 한 근의 무게는 약 250그람임으로 한 석의 무게는 30키로그람이다. 천 석에 해당하는 동상 한 개의 무게는 30톤이다.


3) 주각(周閣)/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망루


4)박사복야(博士僕射)/ 박사는 서적을 관리하고 황제를 자문한 관직이고 복야는 박사를 지도하고 심사하는 관직이다. 


5) 주청신은 “제후들의 땅을 정벌하여 모두 군현(郡縣)으로 삼아 전쟁에 대한 근심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만세에 전해 질 것입니다. 상고시대 이래로 천하의 군주들 중 폐하의 위엄과 성덕을 따를 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라고 노래했다. 


6)전상(田常)/ 춘추 때 제나라의 대신으로 원래 이름은 항(恒)이었으나 한문제(漢文帝) 유항(劉恒)을 휘(諱)하여 상(常)이라고 바꿔 부르게 되었다. 전걸(田乞)의 아들로 제간공(齊簡公) 밑에서 상국이 되어 감지(闞止)와 정권을 다투었다. 그 부친으로 하여금 백성들에게 곡식을 빌려 줄 때 큰 되를 사용하고 받을 때는 작은 되를 사용하도록 하여 민심을 얻은 후 기원전 481년 군사를 일으켜 제간공(齊簡公)과 감지(監止)를 죽이고 간공의 동생 평공(平公) 오(驁)를 대신 세우고 자신은 상국(相國)이 되어 제나라의 정권을 전횡하였다. 전상 이후 그의 5대 손인 태공(太公) 전화(田和)가 기원전 376년에 제나라 국권을 빼앗아 강씨들의 정권을 대신했다.


7)육경(六卿)/ 춘추시대 거의 전기간 동안 패권국으로 제후들을 호령했던 당진국의 여섯 세가로써 한(韓), 위(魏), 조(趙), 지(智), 순(荀), 범(范) 씨 등을 말한다. 춘추말 순씨와 범씨와 먼저 권력다툼에 패한 뒤에 다시 한위조 삼가가 당시 가장 세력이 컸던 지가를 멸하고 당진의 공실을 폐하고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기존의 진(秦), 초(楚), 제(齊), 연(燕) 등과 함께 전국시대를 열었다. 역사상 이를 삼가분진(三家分晉)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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