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높은 석탑, 주체사상탑’ /통일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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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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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 기사입력 : |
2008/11/16 [2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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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이기사는 열렬한 통일운동단체들을 대변하고 있는 이른바 대표적 진보(?)매체의 하나인 통일뉴스에서 방금 원문그대로를 퍼온것이거니와,기사 내용을 보면 소위 주체사상탑을 비롯한 김일성-김정일父子의 우상화를 위한 거대한 건축물과조형물들이 얼마나 거대하고 웅장한것이며,그러한 각종 건축물-조형물들에 대한 북한 인민-민중들의 충성심과 경외심이 얼마나 열렬한것인지에 대한 설명만 있을뿐,그들 김일성-김정일세습체제가 도대체 왜 그런따위의 초대형 건축-조형물들이 굳이 필요한것인지,그러한 초대형건축-조형물들을 세우는데 예산과(군사비를 제외하고라도) 인력이 얼마나 투입되었고, 그로인해 인민-민중들의 피땀이 얼마나 헌납(?)되었으며, 바로 그때문에 정권수립 이미 무려 60년이상이 지난 지금도 인민들의 하루세끼 끼니조차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는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이나 해설은 단 한글자도 찾아볼 수 없다는것을 확인 할수 있다. 뿐만아니라, 그들 소위 진보(?)진영인사들과매체들은 그들자신들이 두눈으로 똑똑히 목격하고온 北의 세습정권의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집단주의-전체주의는 왜 눈살이 찌푸려지기는 커녕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것으로, 심지어 아름답게까지 보이는 반면, 남쪽체제에서의 폭도에 가까운 일부 난동분자들에 의한 과격 촛불집회에 대한 강경대응은 왜 그토록 도저히 용납못할 극악무도한 파쇼적 행태로 규정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다는것이다. 그들 이른바 진보(?)집단의 그러한 행태야 말로, 무슨 국가보안법따위의 저촉여부나 소위 진보냐 보수냐 좌파냐 우파냐 통일이냐 반통일이냐 하는 따위의 이데올르기 문제 이전에 인간양심의 문제이자, 최소한의 지각능력과사리분별력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만큼 최소한의 이성과지성그리고 인격의 문제인것이다. 아래 기사중의 압권은 아무래도 독도 표시가 있는 것이 인상적이어서 북측 안내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아니 저기 작은 곳에도 독도까지 그려 넣었네요.” “당연한 거 아닌가?” 외세에 언제나 당당한 북녘, 다시 한 번 당당함을 느꼈다. 는 대목과“도대체 왜 조선 사람이 자꾸 미국의 눈치를 보나?” 일것이다. 그렇다면 그토록 외세에 당당한 김정일정권이 중국의 동북공정전체는 일단 차치하고라도, 중국인들의 노골적인 백두산 공정에조차 왜 단 한마디도 못하고 꿀먹은 벙어리 행세를 하고 있는가? "도대체 왜 조선사람이 자꾸 중국의 눈치를 보나?"라고 대놓고 물어보면 그들은 대체 뭐라 할까??
내친김에 또하나, 아래 민노당 지도부 방북기사에서 보듯이 그들 민노당은 여태까지 단한번도 北의 유일당인 조선노동당을 상대하지 못하고 , 고작해야 무슨 <조선사회민주당?> 이라는 조선노동당의 하부 꼭두각시 기구를 상대로(그나마 감지덕지하면서) 무슨 남북정당간 정치회담(?)을 하는것을 대단한 성과나 자랑인양 잔뜩 폼을 잡고 있는 꼴이 참 가관이다 못해 측은할 정도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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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16일 늦은밤 인터넷 민족신문 발행인: 김기백 http://www.minjokc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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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희 기자의 다시 쓰는 평양일기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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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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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사상탑 옥상에 올라 내려다본 대동강 풍경. 멀리 5월1일경기장이 보인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 다음으로는 주체사상탑을 방문했다.
동대원구역 신리동에 위치한 주체사상탑은 1982년 4월 15일 김일성 주석의 70회 생일을 맞아 주체사상을 창시한 김 주석의 업적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2년여에 걸쳐 건립한 탑이다.
탑신의 높이는 150m이며 봉화의 높이는 20m로 세계적으로 석탑 중에서 가장 높은 탑이라고 한다.
탑신의 앞, 뒤, 양옆에는 70개의 단으로, 탑신은 2,550개의 화강석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는 김 주석의 70평생의 하루하루를 상징한다고 한다.
기단에는 김일성화가 앞 뒤 35송이씩 총 70송이가 새겨져 있고 ‘누리에 빛나라 주체사상이여’라는 헌시비가 있다.
▲ 북이 자랑하는 소위 주체사상탑:민족신문 편집부 | | 헌시비가 새겨진 기단의 높이는 4m, 길이는 15m로 1912년 4월 15일에 태어난 김 주석의 생일을 상징하고 있을 만큼 모든 것이 다 의미가 있다. 기단의 통돌은 300톤에 이르며 탑 제작에 사용된 돌들은 온천, 룡강, 해주, 개성 등에서 구한 것이다.
탑 앞에는 노동자, 농민 지식인을 형상하고 있는 30m의 청동으로 제작된 3인 군상이 세워져 있다. 이는 전 인민이 함께 단결해 주체사상의 조선노동당이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을 상징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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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사상탑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 벽면에 모자이크처럼 붙어있는, 각국에서 보내온 옥돌장식판.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 북측 해설강사는 “주체사상탑이 평양에 건립된다는 소식에 주체사상의 신봉자 등 82개국 252개의 국제기구와 단체 등에서 자신들의 성의도 깃들게 해달라고 돌들을 보내왔다”고 소개했다. 각국에서 보낸 옥돌들은 탑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탑 안에는 150m까지 올라가는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승강기에 숫자뿐 아니라 ‘ㅈ’, ‘ㄱ’이라는 층이 표기돼 있다. ‘ㅈ’은 지하를, ‘ㄱ’은 기단을 의미한다.
북쪽으로 능라도 5.1경기장과 개선문, 서쪽으로 인민대학습당, 남쪽으로 고려호텔과 양각도호텔 등 평양 시내의 전경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다.
해설강사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사적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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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사상탑 해설강사. 그녀는 북측 해설강사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사적지가 만경대고향집이라고 답했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 해설강사는 “1950년, 전쟁 3년 동안 평양에 40만 시민이 살았는데 미제는 42만개의 폭탄을 투하해 완전히 폐허가 됐었다”며 “동평양을 시작으로 가장 먼저 복구돼 이곳을 찾는 이들은 평양의 발전을 보고 깜짝 놀라곤 한다”고 말했다.
주체사상탑의 왼쪽에는 ‘주체공업’, ‘철벽의 요새’, ‘무병장수’라는 명칭의 3인 군상이, 오른쪽에는 ‘만풍년’, ‘배움의 나라’, ‘주체의 예술’이라는 명칭의 3인 군상이 세워져 있다. 또 탑의 좌우로 대동강 안에 150m 높이까지 물을 뿜어 올리는 대형 분수대가 설치되어 있는 등 주변이 공원처럼 잘 정돈돼 있다.
그래서인지 주변에는 산책을 하고 있는 평양시민들과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사람이 많다. 또한 데이트를 하고 있는 남녀의 모습도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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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사상탑 아래, 대동강과 붙어있는 도로에서 북녘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 주체사상탑에서 대동강을 건너 맞은편에는 인민대학습당이 있는데 이는 인민대학습당에서 학습을 하다가 나오면 바로 주체사상탑이 보이도록 해 ‘주체사상’에 대한 신심을 더욱 높이도록 한 것이라고 한다.
갑자가 재미있는 질문이 떠올랐다. 만경대고향집, 주체사상탑, 백두밀영, 삼지연혁명사적지 등 어느 곳을 맡고 있더라도 해설강사들은 늘 자부심을 갖고 일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특히 일을 하고 싶은 장소가 있을 터. 주체사상탑 해설강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해설강사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사적지가 어디인가요?” “선생이 한번 매겨보십시오.” “가장 먼저 북에 방문하면 찾는 만경대고향집이 아닐까요?” “어디나 다 보람되지만 아무래도 만경대고향집 해설강사로 가장 가고 싶어 하고 두 번째가 주체사상탑이나 백두밀영입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이곳도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라 긍지로 삼고 있습니다.”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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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의 관문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 다음 일정은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 방문이다.
남녘에서 북을 향해 들어올 때 첫 관문이자 백두와 한라 대통로에 위치한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은 지난 2001년 8월 15일 건립, 북녘에서 21세기 들어 처음으로 건립된 통일염원 상징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곳은 새 세기 첫해 조국해방의 날을 계기로 남과 북 해외의 각계각층이 모여 ‘2001년 민족통일대축전 개폐막 행사’를 가진 곳으로도 유명하다.
▲ 금강산 곳곳에 새겨진 김일성 찬양문구 오마이뉴스 : 민족신문 편집부 | |
지난 2002년에 발간된 조선 평양 조선화보사의 화보집에는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이 ‘김일성 주석의 조국통일 유훈을 실현해 나가시는 김정일 영도자께서는 주석께서 내놓으신 조국통일 3대원칙과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을 조국통일 3대헌장으로 정립해 주시고 그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으로 온 겨레를 고무하기 위해 탑을 세우도록 하시였다’고 소개하고 있다.
▲ 어디 금강산 뿐이며 김일성 뿐이겠는가? 집집마다 거리마다 건물마다 내걸고 있는 金父子사진은 기본중에 기본이고 북녘강산 요소 요소 수천,수만군데를 뒤덮고 있는 초대형의김일성-김정일 우상화 건축물-조형물로도 모자라서 골짜기마다 새겨놓은 金父子 찬양문구:민족신문 편집부
| |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은 조선 옷차림을 한 똑같은 여인이 한반도지도가 그려진 3대헌장 마크를 힘 있게 받들어 올리는 모습을 형상하고 있다. 이는 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하나의 핏줄, 하나의 나라 등 모든 것이 하나이기 때문에 쌍둥이로 형상화를 한 것이다.
특이하게도 대부분 지도를 자세히 그리지 않는 한 한반도 정도로만 그려내는데 3대헌장 마크에 그려진 우리나라의 지도는 울릉도는 물론 독도까지 모두 표기가 돼 있다.
천연 화강석으로 만들어진 탑의 높이는 조국통일 3대 헌장을 상징하여 30m, 너비는 남북공동선언을 상징해 61.5m로 이루어져 있다.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도 주체사상탑처럼 탑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인데 기념탑에는 남과 북은 물론 해외동포들과 세계 통일운동단체들이 각지에서 지성을 담아 보내온 740여개의 기념 돌들을 전시한 4개의 방이 있다.
내부에는 남녘의 단체들이 보낸 돌도 눈에 띈다. 일행은 내부의 넓고 화려한 구조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탑의 양쪽 기단에는 ‘조국통일3대원칙’편과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편,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편, 그리고 ‘통일조선만세’편 등 4개 부문의 부주제 군상들이 있다. 기념탑의 총 부지면적은 10만여㎡에 이른다.
독도 표시가 있는 것이 인상적이어서 북측 안내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아니 저기 작은 곳에도 독도까지 그려 넣었네요.” “당연한 거 아닌가?” 외세에 언제나 당당한 북녘, 다시 한 번 당당함을 느꼈다.
“북녘을 테러지원국에서 삭제를 하는 등 합의된 사항을 이행하지 않으면 핵 시설을 다시 재가동 하겠다고 위협, 연일 북미간의 긴장이 팽팽하게 이어지는데 미국을 압박하면 더욱 제재를 가해 어렵지 않을까요?”라는 나의 질문에 그는 의미심장한 답을 한다.
“붉은 기는 달려야 휘날린다, 깃발이 바람 불면 휘날리듯 당이 결심하면 우리 인민들은 무조건 한다. 미국은 해방 후부터 이제까지 언제나 우리를 제재 해왔다. 그러나 우리는 전쟁 후에도 바로 재건을 해냈고 고난의 행군시기도 이겨냈다. 당과 함께라면 어떤 일이든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
민예전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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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품 등을 구입할 수 있는 민예전람실 광경.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 빠듯한 일정에 다음 참관지인 평양국제문화회관에 위치한 민예전람실로 향했다.
북녘이 자랑하는 수예작품과 조선옷 등이 가득하고 전시뿐만 아니라 기념품을 살 수 있도록 판매도 하고 있다.
민예전람실 안쪽에는 학생으로 보이는 이들이 모여 탁구를 하고 있다. 학생들이나 이곳의 직원들이 짬을 내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탁구대 등이 비치돼 있다.
사진을 한 장 찍었지만 너무 어두워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았다. 아쉽지만 사진을 찍을 때 터진 후레쉬 불빛이 탁구에 열중하고 있는 이들에게 방해가 되는 듯 해 그만 접었다. 사진으로 남기진 못했지만 내 가슴 속에는 평양국제문화회관에서 까르르 웃으며 활기차게 탁구를 치던 이들이 아주 오랫동안 밝게 웃으며 탁구를 칠 것이다.
일행이 기념품을 사는 동안 나는 밖으로 나와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봤다. 언제 또 이 거리를 걷고 지켜볼지 모르는 만큼 모든 것을 다 기억하겠다는 그런 마음으로...
담배를 피우러 나왔던 북측 박용호 안내원이 내게 말을 건넨다. “아니 김 기자는 기념품 안사나?” “나중에 호텔에서 사면되죠, 박용호 안내원님이랑 이야기도 나누고 싶고 거리도 지켜보고 싶어서 나왔어요.” “무슨 이야기할까? 시집 안간 처녀에게는 총각 소개시켜 준다는 이야기가 제일인데...” “북녘에는 서른 살 넘은 처녀 총각이 별로 없다고 다 들었습니다. 뭐 포기예요.”
(웃으며) “그랬구나, 나도 주위에 그리 나이 많은 총각이 없어. 대신 다음번에 평양 올 때는 내가 마중을 나가지.” “에이 말씀만 그러시는 거죠? 제가 언제 올 줄 알고 마중을 나와요?” “아니다. 내가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김 기자 올 때 마중 간다.” “그럼 꼭 약속했습니다.”
▲ 삼일포의 봉래대로 오르는 길에 새겨진 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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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이전에도 북녘 안내원들과 약속을 여러 번 했었다. 1년 후에 꼭 보자는 그런 약속부터 ‘처녀 총각 만나기 좋은 꽃피는 봄에 오시면 우리 집에 데려가 가장 맛있는 음식을 대접 하겠다’던 금강산의 산림원 남송이와의 약속까지.
나는 직접 행동하는 것이 우선이지, 말이 앞서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 탓에 약속도 중요시 생각하고 또 빈말로 약속을 하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또 약속을 하고 ‘이 약속은 지켜질 수 있을까?’ 실낱같은 희망을 가져보지만 한켠에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언제쯤 말 뿐 아니라 진심으로 약속을 하고 지키고 그럴 수 있을까?
“도대체 왜 조선 사람이 자꾸 미국의 눈치를 보나?”
“에이 그러지 말고 그럼 제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이명박 대통령이 된 뒤 남북관계가 많이 경색됐는데 하실 말씀 없으세요?”
“기사로 쓸라고 그러는구만, 그럼 입을 닫갔어. 언론은 진실을 보도해야 언론이지 호도를 하는 것은 언론이 아니야. 제가 보고 느낀 대로 쓰는 게 기자인데 호도하니 남녘 사람들은 검은 것도 희다고 믿고 있어. 여기 온 사람들 중에는 북녘 사람들을 보고 빨갱이들이라고 하는데 얼굴이 빨개서 빨갱이인 줄 알았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지. 기자들도 이곳에서 하던 얘기를 그대로 쓰는 사람이 없어. 남쪽에 가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쓰니 나는 기자들이랑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
▲ 평양의 만수대 기념비로 불리우는 김일성 동상. ⓒ연합뉴스 :민족신문 편집부 | | “에이, 그래도 박용호 안내원님 이야기 듣고 싶어요.” “그럼 내가 한마디만 하갔어. 남쪽 국민들이 촛불집회를 한다고 들었는데 이 촛불이 6.15선언, 10.4선언을 어서 이행하라고 하는 촛불로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통일을 위한 길로 나가야 민족 모두가 번영을 하지. 도대체 왜 조선 사람이 자꾸 미국의 눈치를 보나?”
그는 어제 백두산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외교와 관련, ‘일본에 왜 우리 땅이라고 당당히 이야기하지 못하나’라고 쓴 소리를 한 데 이어 한미동맹 강화라는 명목 하에 친미외교를 고집하면서 이전의 대통령들과는 달리 북에 압박을 가하는 정책을 내세우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다시 한 번 다음과 같이 주먹을 날렸다.
“리명박 대통령은 북과 남이 합의 한 것을 자꾸 부정하는데 그럼 로무현 대통령은 조선사람이 아니라 선언을 한 것인가?”
어제 오늘 박용호 안내원이 한 말 중에서 공통점을 찾자면 바로 “이명박 대통령은 조선 사람이 아니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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