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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귀화한 일본 장수 김충선.
 
야후블로그 기사입력 :  2008/10/17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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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귀화한 일본 장수 김충선.
2008/10/15 오후 2:34 | ◐ 한국의 퇴고 ◑

임진왜란 당신 한국으로 귀화한 장수의 이야기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모하당 김충선, 그는 일본이 한국을 쳐들어온 임진왜란 당시 그의 수하 3000여명을 이끌고 조선군에 투항했다.

이후 이들은 쳐들어오는 일본군을 향해 총포를 쏟았다.

일본 측에서 보면 때려죽일 역적이지만, 한국의입장에서 영웅으로 추대할 만한 인물이다.

김충선 과연 그는 누구인가?






<조선왕조실록>에 두번이나 그 이름이 올라와 있는 김충선은 임진왜란 당시 한국으로 귀화한 일본군 장수로 그의 실명은 사야가(沙也可)로 알려져 있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우선봉장으로 군사 3,000명을 인솔하고 한반도로 쳐들어왔다가 조선의 수준 높은 문물을 보고 흠모하여, 경상도 병마절도사(慶尙道兵馬節度使) 박진에게 항복한 뒤 귀부(歸附)하여 여러 번 전공을 세웠다. 동래성으로 상륙한 지 다음 날이었다. 이때 사야가는 박진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강화서에서 “이 나라의 예의문물과 의관 풍속을 아름답게 여겨 예의의 나라에서 성언의 백성이 되고자 할 따름입니다.”라고 썼다.

그는 실제로 조선을 쳐들어왔을 당시, 자신의 생명이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부모를 들쳐얻고 도망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제 목숨하나 부지하기 힘든 상황에서 부모님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은 계속되는 전쟁속에서 살아온 사야가에게는 꽤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김충선은 경상도의 의병들과 함께 힘을 합쳐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고, 곽재우와도 연합하기도 했다. 의병 및 조선군 장수로서 모두 78회의 전투를 치렀으며, 1597년 사야가는 울산성 전투에 경상도 우병사 김응서 휘하로 울산성에 농성 중이던 가토의 1군을 섬멸하는 공을 세웠고, 무관 정3품인 가선대부를 하사받기도 했다.

또한, 조선의 조총개발에도 큰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의 무기는 활과 창, 검이 전부였다. 왜군은 조총부대를 선두로 조선을 침공하였고, 굉음과 함께 쓰러지는 동료의 모습을 본 조선군은 전의를 상실하고 연전연패했다. 조선군 입장에서는 조종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일본에서도 철포대라 하여 조총 부대를 지휘한 경험이 있는 김충선(사야가)은 조총 개발을 건의하였고, 이에 큰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순신 장군 또한 이미 조총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김충선의 가세는 엄청난 시너즈 효과를 불러왔다.

임진왜란 이후에도 김충선은 정유왜란, 병자호란 등에서 공을 세웠다.

선조로부터 김해 김씨의 성을 하사 받았다. 그리고 그의 충의와 선의를 길여 충선이라 이름지었다. 
그에게 대구쪽에 땅을 하사하여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주었다. 김씨 중에는 사성 김씨가 있는데 시조가 김충선으로 나온다. 이는 귀화한 김충선의 후손들이며, 아직도 대구지역에는 사성 김씨의 집성촌이 남아있다.



일본에서도 시야가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귀화한 장수에 관한 자료가 없을뿐만 아니라 사야가라는 이름의 장수 또한 없다.

그로 인해 조선왕조실록과 사야가가 직접쓴 모하당문집의 내용을 토대로 이를 추정하고 있다.

이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인물로 손꼽히는 것이 하라다 노부타네이다.

그는 인진왜란 당시 가토와 함께 조선으로 출병하였고 이후 그에 대한 기록은 사라졌다.

그는 철포대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반 히데요시 파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누구였으며, 그가 어떠한 연유로 조선으로 귀화한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임진왜란 뿐만 아니라 조선의 위기가 있었을 때마다 출병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사야가는 진정 조선을 사랑한 인물로 조선을 위해 자신을 모든 것을 받친 인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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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08/10/16 (목) 오후 2:21   [검나루]
역사적으로 연구할 유가치하고 해박한 지식입니다. 공감합니다 .
08/10/16 (목) 오후 2:55   [초선]
대구에 사는 사람으로서 반갑습니다.
모하당 김충선을 모신 곳이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동의 녹동서원입니다.
또 대구에는 임진왜란 때에 참전했던 명나라 장군 두사충의 후손들도 살고 있습니다. 사당은 모명재입니다.
임진왜란을 계기로 일본인과 명나라 사람의 후손이 함께 있던 묘한 곳이 대구라고 생각됩니다.
08/10/16 (목) 오후 3:20   [치바위62] from 211.115.190.25
김충선 장군님을 그저 귀화장수로만 알았던 제가 다 부끄럽네요. 아 이번 계기로 조금 더 알게 되었고, 김충선 장군과 그 외의 장수와 수하들에 대해 기록이 더 남아있다면 다시 한 번 정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08/10/16 (목) 오후 3:23   [장군님] from 61.41.215.113
역사를 하나 더배워갑니다....감사합니다
08/10/16 (목) 오후 4:06   [가족사랑] from 210.104.250.44
난 후손으로서 나의 정체성에 대해 조금 헷갈릴때가 있었지만..그분의 뜻에 따라는 것이 좋겟죠...
08/10/16 (목) 오후 4:11   [낙수] from 210.103.83.29
그럼 명박이는 뭐죠? 그 인간은 도대체 뭥미? 대구에사는 박근혜는 또 뭥미?
08/10/16 (목) 오후 4:14   [잘난놈] from 220.71.69.179
이 곳에서도 명박이, 근혜를 찾냐! 이 오라질 인간아. 네 핏속에도 유구히 전국토를 짓밟은 왜구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인터넷에서 사라져라. 너희놈들은 인터넷 메뚜기이다.
08/10/16 (목) 오후 4:22   [코레아] from 211.224.134.42
참.. 일본인이지만, 정말 한국인처럼 살다간 사람이군요. 저런 외국인들이 한국인이 되고 싶다면, 노랑 머리든, 빨간머리든, 파란눈이든.. 정말 한국인처럼 대하고 싶군요. 아니 한국인으로 대하고 싶습니다.
08/10/16 (목) 오후 4:45   [오필승코리아]
그때 당시 3000명이면.....음...
08/10/16 (목) 오후 4:46   [눈내리는적도]
사야가라는 일본이름때문에 일본에서도 나름 유명한 사이가 마고이치라는 인물이 김충선이라는 말이 제법 돌았는데 새로운 인물 하라다라는 이름을 듣게되네요...일본 장수들중에서도 조선의 문물에 관심이 많아 적과 싸우기보다는 문화재 침탈에 더 열을 올린 경우가 많다고 했으니..어찌 보면 유럽의 십자군원정처럼 그들도 전쟁을 통해 얻은게 꽤 많을것이라 생각됩니다.
08/10/16 (목) 오후 5:21   [마메] from 59.20.217.232
시너즈가 아니고 시너지아닌가요
08/10/16 (목) 오후 6:44   [ㅁㅁㅁ] from 203.170.106.60
일본을 배신했다고 할수는 없지요... 반대파들의 관심돌리기용으로 일으킨 전쟁일뿐... 통일한지 얼마된돼다, 잔여세력이 많은 상황에서, 전국시대의 잔여세력이 다른 세력에 가담했다고 그걸 배신이라고 하기는 에메하다는거죠... 위의 경우 말고도 투항해서 왜군과 싸우는 왜인들이 꽤 많았다고 합니다...
08/10/16 (목) 오후 7:01   [dukewind] from 59.152.167.104
우리나라 누구랑 바꾸게요
이 머시기 있쟌아요 중딩이랑 싸우더만 인자 돌지난 아이랑 싸우네 에라이
08/10/16 (목) 오후 7:06   오대출장부페
오,,,너무나 감동깊게 읽었다,,조선에 귀화한 김충선 이런 인물도 있었다니,, ^^
08/10/16 (목) 오후 7:13   [임관]
감동은 무슨 뼈아픈 이유가있을지도?고국에가면 사형당할 ~~~~?알수없지 긍정적으로 ~~~~~~~
08/10/16 (목) 오후 8:21   [shinjkr]
시야가가 귀화한이유가 높은 문화와문물? 개가웃겟다 중국의아류작을 보고흠모? 시야가는 일본에서이미그거점을 잃어버린 말하자면 로닌과도같은 신세로 전락햇다 돌아가봐야 뱡사들이나 자신이나 개차반 신세로 죽을께 번하니깐 조선에머무른것이다
08/10/16 (목) 오후 8:22   [웃긴다] from 211.189.204.58
김해 김????ㅎㅎ 쪽발이 성?
08/10/16 (목) 오후 8:22   [shinjkr]
음...그러쿤 김해김씨 역시나 쪽빨이성씨엿군
08/10/16 (목) 오후 8:36   [qorwpdls]
조선이 병합되고 식민치하에서 김충선이나 그의 가솔(함께 투항한 일본인들)이 모여사는 곳은 참 박해를 많이 받았지요.. 한국인 남편을 둔 일본인 여자들도 고통을 많이 받았고.. 어쨌거나 조선을 생각하고 조선을 위해 애를 쓰시는 것은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마땅합니다.. 조선에서 태어나 조선을 파는 것과 완죤 반대라고 할수 있죠..
08/10/17 (금) 오전 12:08   [로랭]
얼라...친할머니 조상이다...
친할머니 직계 조상이시네..
친할머니께서 김해김씨(사성 김씨)니깐..
대구에 살아서 가창인가? 근처에 있다고 했는데...
아빠가 그분 내 조상이라고...;;;
방학때나 곧 가봐야겠다 일단 내 조상이시니깐...;;;
08/10/17 (금) 오전 12:16   [유운] from 121.151.138.135
아빠가 말해주신거랑 들어맞네...
한 번도 못 찾아뵜다...
일요일에라도 갈까나...
제 말이 거짓말이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진짜 저희 할아버지 댁에서 할머니 족보를 보면
저분 성함 한국식(일본식 또한)이름이 올려 져 있더라구요
한자로 김충선이라고.....
08/10/17 (금) 오전 12:20   [유운] from 121.151.138.135
발음이 부정확한지 알만하다아이긋나...
08/10/17 (금) 오전 12:21   [와쌈도인들의] from 61.78.141.128
이분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는데
덕분에 많이 알게 됬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주인장님!
08/10/17 (금) 오전 12:24   [유운] from 121.151.138.135
인간은 다 똑같잖아요.일본말 쓰던 한국말 쓰던 그게 중요한게 아니 잖아요.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지..욕만 해대는 족속들은 한국이나 일본 모두의 적입니다..
08/10/17 (금) 오전 12:28   [샤크 레드]
일본과 미국 말이라면 껌뻑 죽는 자칭 우익 뉴라이트들과 그들을 열렬히 후원하는 대구 시민들은 이번 기회에 김충선 장군을 잘 새겨보아야 할듯..........
일본과 한국 다 같은 한민족끼리...쪽발이라고 조센징이라고 서로 비하하지 맙시다.......누워서 침밷기니 말이지....
08/10/17 (금) 오전 12:57   [francis]
김충선의 귀순 동기는 여러가지가 돌고 있었군요. 제가 본 어떤 서적에선 왜군들이 아녀자들을 겁탈하려 어떤 여인을 쫒는데 그 여인이 넘어진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치마를 여미는 것을 보고 백성들조차 도의를 안다 감동해 귀순을 결심했다는 얘기가 있었죠. 모방송국에서 김충선을 소개할때는 왜군들의 만행에 한탄하며 귀순했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사유야 어찌됐든 그는 이순신장군의 전투에도 도움을 줬다는 후일담이 있고 그의 충성심은 일회성이 아님을 증명하는 여러 일화가 있습니다
08/10/17 (금) 오전 12:58   [샤방] from 211.47.94.128
김충선이 나이를 먹어 낙향해 있을때 조선에선 한때 도성이 점령당하기도 하는 이괄의 난이 일어납니다. 이때 김충선은 노구임에도 임금이 위험하다하며 군사들을 이끌고 상경해 난의 진압에 공을 세웁니다. 그는 이미 일본인이 아닌 뼛속까지 조선인이었음을 알수있죠.
08/10/17 (금) 오전 1:04   [샤방] from 211.47.94.128
임란때 조선군은 어느 시기를 넘어서 조총부대가 대량으로 조직되고 왜군과의 접근전에서도 밀리지않게 되는데 왜군의 모든 것을 알고있던 김충선과 귀순한 많은 왜군들의 도움이 있었음을 알수있습니다. 귀순한 왜군들은 부대를 조직해 전투에 나가 많은 이가 죽기도 했습니다
08/10/17 (금) 오전 1:05   [샤방] from 211.47.94.128
좋은글 이네요
08/10/17 (금) 오전 1:06   [ㅇㅇ] from 222.239.52.59
토요토미의 징집명령에 따라 조선원정에 참가하기는 했으니 토요토미와 적대관계에 있던 영주들이나 그 휘하 정수들의 경우는 마지못해 나선 경우가 많았고 병졸들도 전쟁이 길어지면서 탈영이 늘었습니다. 김충선과 같은 왜인들은 상당히 많았다는 거지요
08/10/17 (금) 오전 1:09   [샤방] from 211.47.94.128
병자호란때는 70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 말을 달려 인조가 있던 행주산성으로 가던 중, 항복 소식을 들고 땅에 이마를 찍으며 슬피 울었다 하죠. 자신이 생각한 옳곧은 길을 실천한 그분의 용기... 참.. 많은 감동을 주더군요.
08/10/17 (금) 오전 1:09   [111] from 119.70.50.82
아, 저 분이 쓰신 한시도 읽어 보았는데, 결코 무식한 왜장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08/10/17 (금) 오전 1:11   [111] from 119.70.50.82
김해 김씨를 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야가 망하면서 많은 가야인이 일본으로 향했고 결국 돌아온 것이므로 김해 김씨를 준 것이지. 김해 김씨는 일본인의 큰 조상일 수도 있다.
08/10/17 (금) 오전 1:20   [장영식]
우리의 피는 절대 단일민족이 아닙니다. 몽고, 중국, 일본, 인도, 남쪽나라 여러 피가 섞여 있죠. 이건 역사가 말해주고 있잖아요. 우리의 신념, 정신이 단일민족이죠. 그리고 백제서기에 보면 일본도 그 옛날 백제, 고구려,신라가 넘어가 만들어진 이민국가이예요.
08/10/17 (금) 오전 1:28   [이현]
일본 사람도 우리나라를 위해서 일했는데 우리도 우리의 국가를 위해서 열심히 일합시다.
08/10/17 (금) 오전 2:31   [] from 168.131.60.180
조금 더끌고와서 귀화했으면 전세에 도움이 컸을텐데 아타깝네. 3 만명정도 ?
08/10/17 (금) 오전 2:38   [부강한나라]
조종 -> 조총
08/10/17 (금) 오전 3:30   [] from 121.164.33.247
그당시에는 어쨌든지 좋았는지모르지만...세월이흘러서,,,, 내가볼땐 지금으로 생각하면 한심한 일본장수...후세들은 모두 일본으로 돌아갔겠징... *(^-^)*현대시대에서 볼땐 미래를 잘못본 일본장수...깨으친한국인이나 일본인이 보면...... 한심한 장수... 역적이기전에 한심한장수
08/10/17 (금) 오전 5:09   [북극성] from 71.242.41.123
이유를 불문하고 태어나고 자란 조국을 배반하는 것은 크게 비난받아 마땅하다. 특히 전시에는 꼭 극형으로 다스려야 함.
08/10/17 (금) 오전 6:28   [녹슨칼]
이거 누가봐도 사기다. 어찌 자료하나가 없는 사람이 실존인물이라고 생각하나? 이건 왜란 당시의 고도의 심리전에 불과하다. 더이상은 없는 내용이다.
08/10/17 (금) 오전 6:33   [이거 사기다] from 119.67.237.91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우선봉장?? 이정도의 인물이 자료하나 없다? 그가 쓴 글조차? 고향이 어디인지? 부모형제가 누구였는지? 역사적으로 이정도의 인물이 배신을 때렸다면 그가문은 아주 절단이 났을 것이다. 각각 철천지 원수로 살던 전국시대 당시 절단 난 가문은 한둘이 아니었는데 유독 이 가문만 그 절단난 가문의 족보에서 사라졌다?? ㅎㅎ
08/10/17 (금) 오전 6:47   [이거 사기다2] from 119.67.237.91
받친 -> 바친
08/10/17 (금) 오전 7:12   [jeongyun@rogers.com]
웃긴다//당시 일본의 문화가 어떠한지나 알고 말씀을 하시지? 일본이 일본도와 여러가지를 만들 기술을 가진게 저 전쟁 후인데? 그 전에는 문화라고 말을 하기도 민망한 정도였다. 알겠냐?
08/10/17 (금) 오전 7:54   [내가더웃기다] from 58.237.24.85
이름은 들어 보았지만 님께서 말씀 하신 그내용들에 대해서는 첨으로 알게 되었네요...감사 합니다..
앞으로 이런 역사적인글에대해서 아시는 내용들 있으시면 많이 올려주셔요...
08/10/17 (금) 오전 8:06   [최진희] from 58.146.255.151
녹슨칼//닥치세영 헛소리하고 자빠졌네 악법은 법이 아니라 고쳐야 할 법이죠 불의에 저항하는게 사람다운겁니다.
08/10/17 (금) 오전 8:15   [minbyeonguk]
동래성으로 상륙한 다음날로 ‘명분 없는 전쟁은 불가’라며 조선에 투항하겠다는 뜻을 적어보낸 사야가의 편지를 받은 박진과 김응서는 그의 귀화를 고심 끝에 찬성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얘기입니다만..뭐가 사기극이라는 건지? 편년체로 년과 월에 따라 사실적으로 서술한 책입니다 거기에 나오는 내용을 부정한다면 조선역사 500년 까지 거짓으로 봐야 겠죠? 이거 사기다님..당신이 더 사기꾼 같습니다만
08/10/17 (금) 오전 8:20   [minbyeonguk]
대구남부도서관에서 책과함께하는 문화탐방차 거기 갔는데 안애자가 우리의 입장과 일본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고 햇습니다 마침그때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인들이 관광왓더라고요 헤어질때 우리는 사요라라 그들은 안녕히 가세요 라고 했죠
08/10/17 (금) 오전 8:31   [찔레꽃]
운동 했지만,,1키로 빼는게 정말 힘들더라구요..
굶어도 봤지만,, 요요현상으로 더 찌더라구요ㅠ_ㅠ정말 포기할까했는데~
식이요법만으로도 뺄 수 있단말에 무작정 따라해봤더니 6키로 감량^^
사이즈도 많이 줄었구요~ ㅋ 구경해보세용~

네이버에서 슬림우 치세요! ☎ 영오 영오 - 8o2 - o82o
08/10/17 (금) 오전 8:56   [슬림우 바로가기] from 59.22.29.60
정말 감동의 글입니다.아직두 우리는 당파적 지역적 이익을 위해 같은민족인가를 의심케하는 행동들이 많은데,,,,
고결한 행동의 누구를 막론하고 추앙받아 마땅합니다!
08/10/17 (금) 오전 8:58   [조선백성] from 220.123.132.184
글세요.. 제가 알기로는 막부에서 김충선의 가족을 인질로 잡고 있었다고 하던데.. 조선출병이 싫었지만 막상와서 느낀바가 있어 귀화한듯..
08/10/17 (금) 오전 9:22   [nattojm]
사야가에 관한 책은 나와있고 저도 통독했습니다.바다의 가야금입니다.일본인이 저자죠.
제생각엔 사야가는 반 히데요시파라 억지로 한국에 끌려온것입니다.그리고 철포대 조총부대장이죠.
당시의 일본군은 유럽전역을 합친 조총수보다 많은 총을 보유했다고 합니다.
08/10/17 (금) 오전 9:23   [ryuyh9]
말이 임진왜란이지
사실상 세계대전이었습니다.그리고 아시다시피 철갑선도 우리가 먼저 만든게 아니라
일본에서 먼저만들고 우리가 거북선으로 리모델링했다고 합니다.그때 우리 위정자들은 정신을 차리고
부국강병을 추진해야했었는데..어쨋든 나중에 도쿠카와 이에야스(반 히데요시파)는 조선에 사과를 했지만..
08/10/17 (금) 오전 9:23   [ryuyh9]
이웃나라는 역사적으로 어느지역이든 선린관계유지도 중요하지만 언제든 분쟁이 일어날 소지가 있다는게
진리아닙니까...유럽을 보더라도..어쨋든 일본인들도 사야가를 존경하는 사람이 적잖다고합니다.
역적이 아니라 평화주의자?라고 칭송한다더군요.
08/10/17 (금) 오전 9:23   [ryuyh9]
중학교 도덕과 1학년 교과서에 일부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은 일부가 나오지만 여기서는 자세히 알 수 있네요.. 잘 읽었습니다...
08/10/17 (금) 오전 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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