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7.10.01 12:39 수정 2017.10.01 20:20
북한에 800만 달러(91억7600만원) 규모의 대북지원을 결정한 정부가 이산가족 추석 망향제에 쓰일 예정이던 1000만의 예산집행을 차단하고 나서 반발을 사고 있다. 핵·미사일 도발을 자행한 김정은 정권에는 대규모 지원을 해주면서, 이북5도 실향민 행사에는 대북지원액의 0.11%에도 못미치는 돈도 쓰지못하게 한다는 비판이다.
지난 2015년10월 북한 금강산에서 열린 제20차 남북이산가족상봉 행사가 끝난 뒤 한 할아버지가 북측 가족과 헤어지며 눈물짓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망향제 예산 부족하자 한적 협찬 결정
정부 "지원말라" 제동에 실향민 반발
대북지원 규모의 0.11% 수준 불과
논란 일자 "당초 계획대로 지원" 해명
실향민 단체에 따르면 통일부는 2일 오전10시 서울 구기동 이북5도청에서 열릴 '제36회 이산가족의 날' 행사에 대한적십자사가 지원하려던 예산 1000만의 집행을 중단하라고 통보했다. 행사 관계자는 "추석을 맞아 열리는 행사 취지와 이산가족에 대한 배려차원에서 한적 측이 소정의 지원을 검토했으나 통일부가 제동을 건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행사를 주관하는 (사)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는 북한에 고향을 두고온 고령 이산가족 500여명을 초청해 추석 망향제와 기념식, 위로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행사 관계자는 "어르신들께 점심식사와 기념품을 제공하고 초대가수를 섭외하는 데 1700만원의 예산을 잡았지만 턱없이 모자라는 형편"이라며 "한적 측에서 1000만원 지원을 알려와 숨통이 트이는가 했는데 통일부가 가로막아 아쉽다"고 말했다.
지난 2015년 10월 금강산에서 열린 20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서 남쪽 권오희(왼쪽)씨가 북쪽의 의붓아들 이한식과의 작별를 아쉬워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통일부는 실향민 사회의 반발이 일자 "1000만원은 어렵고 800만원만 쓰라"고 위원회 측에 다시 통보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산가족들은 "문재인 정부가 이산가족 문제를 대북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겠다 말하면서, 돈 몇 백 만원으로 실향민을 우롱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통일부가 중복지원 문제를 제기했지만 예산이 빠듯한걸 알면서도 한적 측의 협찬성 지원까지 막는 건 심했다는 얘기다.
중앙일보의 보도로 논란 사실이 알려지자 통일부는 1일 오후 보도 해명자료를 통해 "금년에는 이례적으로 이산가족의 날 행사에 정부 예산 1000만원을 추가로 지원해 올 행사비로 총 2700만원을 지원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당초 한적 측의 1000만원 지원을 두고 제동을 걸었다는 대목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통일부 당국자는 "우리가 한적 측에게 위탁한 예산 가운데 이산가족 관련 1000만원을 한적이 사전 협의없이 일천만이산가족위 측에 지원해 이중지원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며 "결과적으로는 1000만원 지원을 최종결정 했으니 과정은 문제삼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63빌딩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10.4 남북 공동선언 10주년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