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선거경제/복지미디어전쟁국제정치.경제민족/통일사회/사법군사/안보문화/스포츠
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번 찾기
전체기사보기 교육/과학   고대사/근현대사   고향소식/해외동포   포토/해외토픽   해외동포모임방   자유게시판   남북민족문제토론방   사법피해자모임방   사랑방  
편집  2017.12.15 [18:16]
교육/과학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에티오피아의 진실~~~꼭! 읽어보세요~~~
잊혀진 영웅들-에티오피아 황실근위대(한국전 참전) 왜 우리 역사교과서는 이런 사실들을 가르치지 않는지...?????
 
다음카페등 기사입력 :  2017/06/06 [15:01]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밴드

에티오피아의 진실 ~~~
         <에티오피아의 군주 하일레 셀라시에 1세>                         


                                                                   
아프리카 나라 중에 '에티오피아'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아마 대부분 사람은 '가난'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러나,
전 세계가
그렇다 해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가난'이 아닌
'감사함'이란
단어를
먼저 떠 올려야 할 것입니다.
관련기사
'한국 아동 행복감 최저'.. 네팔·에티오피아에도 뒤져
한국 청소년 윤리의식, 방글라데시보다 '7배' 낮다
유고는 왜 남침설을 지지했는가..."6.25 최대 승자는 유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
그것을 누리게 된
배경에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193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탈리아의
침략을 받은
에티오피아군은
저항하였으나,
결국 패전하였습니다.

그러자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영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가, 제네바
국제연맹에 가서
전 세계
지도자들에게
에티오피아를
도와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약하고 득 될 것이 없는 나라를 선뜻
돕겠다고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나라에서도
작은 도움조차
기대할 수 없게 되자
셀라시에 황제는
에티오피아의
젊은이들을 모아
군사훈련을 시킵니다.

드디어
1941년
이탈리아를
몰아내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그 후
유엔이 설립되자
셀라시에 황제는
유엔에서
"우리가 힘들 때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지만
원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와 같은 나라가 나오지 않도록 모두가
힘을 모아
약한 나라를 도와주자!" 라는 '집단안보'를
주장하고 나섭니다.

유엔은
셀라시에 황제의
의견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집단안보'는
세계 평화를 향한
진보적
한 걸음을 떼게 한
위대한
결과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그 후,
첫 번째로
발발한 전쟁이
공교롭게도
'한국전쟁 6.25'입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셀라시에 황제는
'집단안보'를 주장하며
유엔에
한국을
도울 것을 강조했습니다.

셀라시에 황제는
왕실 근위대였던
'강뉴 부대'를
파병하기로 하였습니다.

강뉴란 말은
에티오피아어로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1. 혼돈에서 질서를 확립하다
2. 초전박살

한마디로
한국전쟁에서
두 가지의 뜻을
실천하고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셀라시에 황제는
'강뉴 부대'를
파병할 당시
이런 연설을 했습니다.

"우리 에티오피아가
항상 추구해왔던
'세계평화를 위한 집단안보'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그대들은
오늘 장도에 오르는 것이다. 가서 침략군을 격파하고, 한반도에
평화와 질서를 확립하고 돌아오라.

그리고
이길 때까지 싸워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싸워라."

강뉴 부대는
16개국
참전군인 중에서도
가장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5차에 걸쳐 6,037명의 참전하였고,

123명의 전사자와
536명의 부상자를 냈지만, 단 한 명의
포로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기든지
죽든지 둘 중 하나만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253번의 전투에서
253번의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어떤 참전용사들은
월급을 에티오피아로
보내지 않고,
부대 안에
'보화원'이라는
보육원을 만들어
전쟁고아들과
음식을 나누어 먹고,

잠을 잘 때는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을
옆에서 지켜 줬다고 합니다.

그렇게 고마운
강뉴 부대원들은
6.25가 끝나고
모국으로 돌아가자
7년 동안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게 됩니다.
목축업을 하던
나라에
풀이 없어지자
가축들은
굶어 죽었고,
아프리카
최강국이었던
에티오피아는
가난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어느 해에는
100만 명이
굶어 죽기도 했습니다.

가난에 시달리자
사람들은 봉기했고,

1974년
'맹기스투'라는
군인이
공산주의를 주장하며
쿠데타를 일으켜
에티오피아는
공산국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 셀라시에 황제는 수술 합병증으로
사망 하였다고
발표했지만
측근에 의하면
독살형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세계평화를 위해
더욱이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노력했던 그가 그렇게 생을 마감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강뉴 부대원들
또한 공산주의와
싸운 대가로
감옥에 가두거나
재산을
몰수하는 등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게 됩니다.

핍박을
견디다 못해
어떤 분들은
6.25 참전 사실을
숨긴 채
이름도 바꾸고
뿔뿔이 흩어져
숨어버렸다고 합니다.

그 후 에티오피아는
공산 정권에서
민주정부로
바뀐 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많은
참전 용사들을
찾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6.25 당시
나라의 존망이
풍전 등화였을 때,

그분들은
대한민국이
지구 상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달려왔고,
가장 용감히 싸웠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모르고 그저 가난한 아프리카의 나라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더욱 슬픈 일 일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갈 수 있도록
희생한 그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유는
공짜로 얻는 것이 아니다. 당신들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

- 워싱턴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관 -

😭왜 우리
역사교과서는
이런 사실들을
가르치지 않는지...?????



|||||||||||||||||||||||||||||||||||||||||||||||||||||||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용사 "한국 잘살게 됐다니 내가 고마워"


송고시간 | 2016/03/31 09:30
 
246명 생존자 대부분 80∼90대…가난ㆍ질병으로 하루하루 힘겨운 삶
황실근위대 출신 엘리트였지만 1970년대 공산화 겪으며 '홀대'

(아디스아바바=연합뉴스) 김수진 특파원 = "한국이 잘살게 됐다니 내가 더 고맙소. 에티오피아와 한국의 우정이 영원하길 바라오."
지난 29일(현지시간)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 시내 자택에서 만난 테레다 메르샤(85)는 침대에 누운 채 이렇게 말했다.
1953년 한국에 파병된 메르샤는 강원도 철원에서 북한군과 전투 중 오른쪽 다리에 폭탄 파편을 맞아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게 됐다.
한국전에서 부상해 평생을 누워서 보낸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테레다 메르샤(85). 부서진 라디오가 세상과 그를 연결해주는 유일한 도구다. (아디스아바바=연합뉴스)
 
 
메르샤가 한국전 참전 당시 다친 오른 다리 상처를 보여주고 있다. (아디스아바바=연합뉴스)


8평도 채 안 되는 집에서 그가 흘려보낸 60여 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커튼을 쳐 분리한 침실 옆으로 작은 TV, 찌그러진 냄비, 녹슨 휠체어 등 얼마 되지 않는 세간이 늘어서 있었다.
아내와 10대 손녀 3명까지 다섯 식구가 어디서 먹고 자는 것인지 좀처럼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의 한 달 수입은 한국 국가보훈처에서 생존 참전용사에게 지급하는 영예금 700비르(약 3만7천원)와 에티오피아 정부 연금 500비르(약 2만6천원)가 전부. 집세와 다섯 식구 생활비, 약값을 감당하기에 빠듯한 금액이다.
메르샤의 집에 늘어선 낡은 세간 (아디스아바바=연합뉴스)


메르샤의 곁을 지키는 아내(70)와 시집간 막내딸(26)이 멍하니 집안을 바라보고 있다. (아디스아바바=연합뉴스)


그래도 그는 한국전 참전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엔의 일원으로 싸울 수 있었기에 자랑스럽소. 지금도 북한이 도발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 싸우고 싶은 심정이오".
다만, 부모로서 다섯 남매에게 미안한 마음은 감추지 못했다. 유일한 아들이었던 넷째는 7년 전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내가 일만 할 수 있었더라도 아이들을 잘 가르쳤을 텐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뚱이 때문에 좋은 학교에도 못 보내고 제대로 된 직업도 찾지 못하게 됐다"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안타까운 마음은 메르샤를 비롯한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당대 최고 엘리트들로 구성된 황실근위대 출신이었기에 더 크다.
당시 하일레 셀라시에 에티오피아 황제는 군사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젊은이들을 모아 황실근위대를 만들었고, 1950년 한국전이 발발하자 유엔 결의를 따라 황실근위대 출신들로 '초전박살' '혼돈에서 질서를 세운다'는 뜻의 '칵뉴(Kagnew)부대'를 꾸려 지구 반대편으로 보냈다.
1951년부터 1956년까지 5차례에 걸쳐 파병된 칵뉴부대원 6천37명은 253전 253승이라는 용맹스런 성적을 거둔 뒤 전사자 122명의 시신을 모두 수습해 고국에 돌아왔지만, 1974년 군부 쿠데타로 셀라시에 황제가 축출돼 찬밥 신세가 됐다. 일부 장교는 쿠데타 가담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반대파에 살해되거나 수년간 투옥했다.
이 같은 상황 때문에 참전용사 대부분은 메르샤처럼 크게 다치지 않았더라도 힘겨운 삶을 견뎌야만 했다.
일부 참전용사들은 귀국 후 아디스아바바에 정착해 '코리안 빌리지'를 이루고 살았는데 사실상 빈민촌으로 전락했다. 현재 생존 참전용사 246명 중 10여 명만이 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apos;코리안 빌리지&apos; 안내 간판이 마을 한구석에 쓰러져있다. (아디스아바바=연합뉴스)


수십 년 전 코리안 빌리지에 뿌리를 내린 참전용사 테섬 자마리암(84)도 침실이 1개뿐인 비좁은 집에서 아내와 아들 내외, 손자, 손녀 등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시력을 거의 잃은 데다 지팡이 없이 걷지 못하는 그는 "군에서 나온 뒤 경비원으로 어렵게 살았지만 한국전에 참전해 행복했다"고 말했다.
생존 참전용사와 가족들은 각각 1992년, 1996년 설립된 한국전 참전용사 협회와 한국전 참전용사 용사회 후원회를 중심으로 국가보훈처와 한국국제협력단(KOICA), 화천군, 각 NGO 단체 등의 지원을 받고 있다. 국방부도 지난해 8월 에티오피아 무관부를 신설해 이들을 살피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다.
예컨대 아디스아바바 명성병원은 생존 참전용사들에게 무료 진료를 하고 있지만 거동이 불편하면서 별다른 교통수단이 없거나 먼 지방에 사는 이들은 혜택을 보기 힘들다. 메르샤도 참전 당시 봉급을 털어 보살폈던 한국인 고아가 2년 전 자신을 찾아와 병원에 데리고 가 진료를 받은 게 마지막이다.
참전용사들은 고달픈 삶을 살아가면서도 하나같이 한국전 참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참전용사 협회 부회장을 맡았던 옐마 베라츄(85)는 한국전 참전 당시 찍은 사진, 한국 정부에서 받은 메달과 표창 등으로 꾸민 집안의 '작은 전시관'을 보여주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국가보훈처에서 수여한 메달을 매일 달고 다니는 그는 "한국에서 눈을 처음 봤다. 손이 얼어 방아쇠를 당길 수 없을 정도로 추웠지만 한국의 자유를 위해 열심히 싸웠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자마리암도 "칵뉴 부대에는 자발적으로 들어간 것"이라며 "자유를 되찾은 한국 사람들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집안 한편에 한국전 참전 당시 찍은 사진 등으로 &apos;작은 전시관&apos;을 만들어 놓은 옐마 베라츄(85) (아디스아바바=연합뉴스)


gogogo@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03/31 09:30 송고
 
 
|||||||||||||||||||||||||||||||||||||||||
 
 
작열하는 태양, 후끈한 날씨와 함께 돌아온 ‘그냥 간사’입니다. 오늘, 6월 25일은 61년 전 6·25전쟁이 일어난 날입니다....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워준 수많은 참전국 중, 유일한 아프리카 국가에 에티오피아가 있다는 사실, 혹시 아시나요?
무척 고마운 나라이지만, 지금은 빈곤국으로 전락해버린 에티오피아를 지금 저와 함께 돌아보시죠!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설명_함석 판자촌 앞에서 놀고 있는 에티오피아 아이들의 모습>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는 ‘코리아타운’이 있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구촌 최빈국 중 하나인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 동쪽의 예카 지역은 에티오피아에서도 가장 낙후한 지역입니다. 함석으로 지붕을 얼기설기 엮어 지은 집들이 언덕배기에 닥지닥지 붙어있는 판자촌에는 3만여 명의 극빈층 주민들이 하루하루를 연명해 나가고 있지요.
그런데 이곳에 ‘코리아타운’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에티오피아의 ‘코리아타운’은 미국 LA처럼 한인들이 주로 모여 사는 지역이 아니라,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에티오피아의 노병들과 그 가족들이 모여 사는 곳이랍니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설명_마을 입구에 세워진 '한국마을'간판의 모습>

이 마을은 한국전에 참전했던 에티오피아 군인들이 1950년대 중반 귀환하면서 형성된 참전용사촌으로, 에티오피아의 참전용사들이 한국 땅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후 귀국했을 때, 황제가 그들에게 하사한 땅이었다고 해요! 구릉지인 예카 지역은 한국 지형과 비슷해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의 파병 전 훈련소였다고도 하지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그 찬란한 이름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설명:1950년대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모습. 출처_http://blog.naver.com/lishgirl2010/60126279936>
61년 전 6·25 전쟁이 발발했을 때,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주기 위해 지구촌 곳곳에서 21개국이 참전했습니다. 물론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전사자들도 많았지요.
 
이들의 값진 희생이 불씨가 되어, 도움 받던 대한민국은 이제 당당히 다른 나라를 돕는 ‘원조 공여국’이 되었습니다.


 
 
앞서 살짝 말씀드렸지만,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일하게 한국전쟁에 파병을 한 국가였답니다.

에티오피아는 현재 가난과 질병으로 허덕이지만, 한국전쟁 당시만 해도 우리보다 훨씬 부자 나라였다고 해요.
한국전쟁 당시 참전한 에티오피아 군대의 이름은 ‘각뉴(Kagnew)’로, 당시 에티오피아의 황제였던 하일레 세라시에 황제가 친히 내린 이름이었어요. ‘각뉴’는 ‘혼돈에서 질서를 확립하다’ ‘격파하다’라는 뜻이었지요.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설명_한국 땅을 밟은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출처 http://blog.naver.com/sky_shower2/70107556249

 

전쟁 당시 한국에 온 에티오피아 황실근위대 6037명은 화천과 양구, 철원 등 강원도 중·동부의 산악지역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웠고, 123명이 숨지고 536명이 부상당했습니다. 단 한명의 포로도 없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길 정도로 용맹스럽고 강한 부대였다고 전해지구요.
이처럼 이름도 생소한 동방의 작은 나라를 위해 1만 4500km를 단숨에 달려와 대한민국의 자유 수호를 위해 희생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에티오피아의 참전용사들,
그런데, 우리를 위해 몸 바쳐 싸운 에티오피아 노병들이 사는 이 마을은 왜 이렇게 가난할까요?


‘참전용사’ 훈장은 낙인이 되어…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설명_한국전쟁 당시의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 출처_강원도민일보>


뙤약볕 아래 전선을 누볐던 에티오피아의 참전용사들. 지금은 예카지역의 코리아타운에서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전공을 세운 후 당당히 귀국, 황제에게 땅을 하사받을 정도로 칭찬받았던 그들은, 1974년 에티오피아가 공산화 되면서 공산권 동맹국인 북한을 상대로 전투를 했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나는 등 17년간 수많은 핍박을 당했습니다. ‘전쟁 영웅’이 한순간에 ‘배신자’가 된 것이죠.
참전용사라는 사실만으로도 죄인 취급을 받아 숨어 살다보니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워졌고, 참전용사의 자식, 손자 손녀들은 교육을 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되었죠.
다니던 직장에서도 쫓겨나고, 한 달 연금도 120비르(우리 돈 약 3,000원)로 어려운 삶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 교육 없이는 가난을 벗어날 수 없어, 가난의 대물림은 지금까지도 계속되어오고 있습니다.



참전용사 3세 베자윗 이야기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설명_에이즈에 감염된 사실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베자윗의 모습>

여기서 잠시, 예카 지역에 살고 있는 참전용사 가족의 이야기를 소개해드릴게요.
베자윗 피토(9·여)는 에이즈(AIDS) 환자입니다.
할아버지가 한국전쟁 참전용사인 베자윗은, 남편과 헤어진 후 베자윗을 굶주림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려고 매춘부로 나섰다가 에이즈에 감염된 엄마로부터 병을 옮겨 받은 불쌍한 아이입니다.

베자윗은 자신이 에이즈에 감염된 것도 모른 채 열심히 살고 있죠. 학교에서도 1등을 놓치지 않는 모범생이라고 해요.
에이즈는 완치가 불가능 한 대신, 을 먹어 바이러스의 활동을 줄일 수가 있는데요. 하지만 참전용사 3세인 베자윗의 집은 지독한 생활고로 약 복용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입니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설명_(왼쪽)할아버지가 한국전쟁 참전용사였던 베자윗(왼쪽 맨 끝)의 집. (오른쪽)극심한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흙과 나무로 얼기설기 지어져 물이 새는 베자윗 가족의 집>



베자윗에겐 어떤 삶의 행복도 허락되지 않은 것일까요?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굶주림과 절망으로 고통 받던 베자윗에게, 한줄기 희망의 빛이 보이게 된 사건이 있었으니...
국방일보와 굿네이버스가 공동으로 진행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돕기 캠페인’을 통해 지원을 받게 된 거에요! 비가 오면 물이 들이치던 집에 방수포가 설치되고, 안질환으로 고통을 호소하던 베자윗에게 치료약도 지원되었답니다.
2010년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돕기 캠페인’을 통해 베자윗과 같은 참전용사 가족과 후손들이 생필품, 의료지원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답니다! 굿네이버스 에티오피아 지부의 예카 지역개발사업장(Yeka CDP)을 통해 참전용사 자녀들을 지원하고 싶다는 문의도 끊이지 않았고요.
이번 캠페인을 통해 많은 분들이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에 대한 고마움과 안타까움을 느끼셨던 것 같아요. 정말 많은 후원문의가 있었지만, 그중에서 몇 가지 사연을 소개해드릴게요.


‘은혜’를 갚으려는 고마운 손길들
한국전쟁 당시 국군으로 참전했던 이원길 씨는 82세의 나이로 에티오피아 돕기에 참여하신 최고령 후원자이시랍니다.
“국방일보 기사를 보고 당시 같이 싸웠던 에티오피아 전우들이 생각났습니다. 나이가 많아서 언제까지 후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힘닿는 데 까지 후원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시절을 기억하며 후원을 결심하신 이원길 씨의 사연, 전우를 생각하는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네요.

또 다른 국군 참전용사이신 김원도 씨(78세)는 본인도 보청기를 착용하실 정도로 몸이 불편하신 분이세요. 형편도 넉넉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위해 용감히 싸워준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의 2, 3세대들이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우셨다고 해요. 그래서 100만원의 기금을 선뜻 굿네이버스에 기부해주셨답니다.
 
에티오피아에 심겨진 희망의 씨앗, 하나 둘 싹을 틔우고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설명_(왼쪽)모금된 기금으로 마련된 선물을 받기 위해 에티오피아 어린이들과 참전용사들이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 (오른쪽) 한 아동에게 배분된 물품들의 모습>


1년 6개월 동안 진행된 국방일보-굿네이버스의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를 도웁시다’ 캠페인을 통해 총 70명의 에티오피아 아동이 한국의 결연 후원자를 만났답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 해 6월 굿네이버스 에티오피아 예카(Yeka)지역에서는 이번 캠페인을 통해 모인 후원금으로 참전용사 2,3세대 아동들에게 필요한 생필품 키트(kit) 1차 배분이 있었어요!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설명]
1. (왼쪽상단)물품을 받고 기뻐하는 참전용사 3세 나다나엘 훈드 군의 모습.
2. (오른쪽 상단)임시로 마련된 컴퓨터 교육 센터에서 활짝 웃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3. (왼쪽 하단) 예카 컴퓨터 교육 센터를 반기는 아이들과 지역주민들 한 컷!
4. (오른쪽 하단) 예카지역 화장실 건립 기금 전달식. 출처_국방일보>



국방일보를 통해 사연이 소개된 아동을 포함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손들에게 약 500만원 상당의 상R28;하의 세트 옷 세벌과 신발, 양말, 비누, 샴푸, 식료품 등이 제공되었지요. 에티오피아 현지 직원이 아이들의 옷과 신발 사이즈를 조사해 딱 맞는 새 옷을 받은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기뻐했어요.

또한 지난 해 12월에는 LIG넥스원(대표 이효구, www.lignex1.com> color=#00368f>www.lignex1.com)의 지원으로 에티오피아 예카(Yeka)지역에 ‘컴퓨터 교육 센터(Computer Training Center)’가 설립되었어요! 컴퓨터 10대와 무정전전원장치(UPS), 책걸상 등이 지원되어 약 1만 여명의 아동과 주민들에게 컴퓨터 교육을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또 하나!
육군부사관학교의 1,000만원 후원으로 예카 지역 코리아타운에 공동 화장실을 지을 수 있게 되었어요. 대부분 집에 화장실이 없고 습기가 많은 비위생적인 환경으로 인해 영유아사망률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를 정도였던 이곳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화장실이 생기게 된 것이지요.
 
이제는 우리가 은혜를 갚아야 할 때!

6·25전쟁 61주년을 맞아, 우리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도와준 그 은혜를 이제는 우리가 갚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들의 값진 희생이 불씨가 되어 한국은 오늘날 세계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고,
1인당 GNP 2만 불,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개최국, 건설ㆍ자동차ㆍ조선ㆍ반도체 1위, 군사력 8위 등의 자랑스러운 성적표를 얻었지요.
또한 올림픽과 월드컵 개최 뿐 만 아니라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지위가 바뀐 첫 국가로 개발원조위원회(DAC)에 속하게 됐답니다.
한국을 위해 용감하게 싸웠던 에티오피아의 참전용사들을 기억하며, 그들의 가족과 후손을 위해 작은 나눔을 결심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설명_낡은 훈장과 함께 우리나라를 방문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출처_연합뉴스>

 
http://www.goodneighbors.kr/give/support/overchildList**?gni=gni&campNum=2011010073]로 이동합니다." target=_blank ?http: support give www.goodneighbors.kr overchildList**?gni='gni&campNum=2011010073"'> 

문득 에디오피아 관련기사를 보다가....'별난이야기'님의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1935년 이탈리아의 무력침탈에 셀라시에 황제는 국제사회에 구원을 요청했으나 묵살 당했죠..
 
결국 이탈리아와전쟁에서 패하고 황실과 정부는 영국으로 망명해서 대전종전후 영국의 도움으로 다시 나라를 되찾았습니다.
 
황제는 자주적인 국권에서 나라의 힘이 발생 한다고 생각했고 개혁적인 정치로 에티오피아를 이끌었죠.
 
그때 한국전이 발발하자 황제는 주저없이 일반 군대가 아닌 황실근위대 일부를 한국전에 참전시키기로 하고
 
영국에서 교관을 초빙해 한국과 지형이 비슷한 곳에서 6개월동안 훈련한 후 21간 항해를 해서 부산항에 도착해서.
 
곧바로 춘천지구 전투에 참여....종전까지 단 한명의 포로도 없는...267번의 전투를 승리를 이끌었다고 합니다.
 
이에 황제는 참전용사들에게 토지를 하사했고...1974년도에 공산화가 되서 황제는 폐위당하고
 
참정용사들은 참전했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박해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동안 잠깐씩 뉴스에..소개 될 정도로...에티오피아는 잊혀진 국가였습니다..
 
90년대 말부터 각종 언론을 통해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의 어려운 사정이 보도되고...각계각층에서 도움의 손길을
 
뻗혔지만.....아직도 부족한거 같습니다..
 
후원 방법도 나왔으나... 자발적이니깐...소개는 안하겠고요..
 
한달에 만원이라도 후원하면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와 후손들에게 지원 할 수 있다고 합니다 ^^
 
 
 

에티오피아 국기

에티오피아 國章
 
 


 
NATIONAL ANTHEM OF ETHIOPIA 에티오피아 국가연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민족신문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주간베스트
  개인정보취급방침광고/제휴 안내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대표전화 :010-6432-7771
Copyright ⓒ 2007 인터넷 민족신문. All rights reserved.
Contact baek43333@hanmail.net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