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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정권 창립일 출산혜택?혼자 아이낳고 태반먹어···"
통일된 땅에서 만날 두 딸에 부끄럽지 않은 엄마 되고파
 
중앙일보 기사입력 :  2017/04/02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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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된 땅에서 만날 두 딸에 부끄럽지 않은 엄마 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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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김수정 기자 사진 김수정 기자
[김수정의 상큼 인터뷰]
장교 출신 멀티플레이어 탈북맘 김정아
 
 

 
탈북한 지 만 10년, 인생사를 풀자면 ‘약도를 그려야 한다’는 김정아 통일맘연합회 대표. 여섯 살 아들에게 ‘탈북자 엄마’가 아닌 사회에 한몫하는 당당한 엄마가 되고 싶다고 한다. 활짝 웃는 김 대표의 눈자위가 젖어 있다. 북한과 중국에 두고 온 딸들 때문이다. 신인섭 기자

탈북한 지 만 10년, 인생사를 풀자면 ‘약도를 그려야 한다’는 김정아 통일맘연합회 대표. 여섯 살 아들에게 ‘탈북자 엄마’가 아닌 사회에 한몫하는 당당한 엄마가 되고 싶다고 한다. 활짝 웃는 김 대표의 눈자위가 젖어 있다. 북한과 중국에 두고 온 딸들 때문이다. 신인섭 기자

북한엔 탈북 전 이혼하며 두고 온 딸
중국선 강제 북송 공포에 두고 떠나
‘엄마, 나 버렸어’ 얘기에 억장 무너져

자랑스러운 엄마 되려 배우기 올인
방송·강연에 자격증 따고 석사 도전
고향 청진항 그리워 동해 찾아 위안
“청진항 바로 앞 동해에서 해가 뜨는 걸 매일 보며 자랐댔어요. ‘야, 시원한 바람 좀 마시라’며 아버지가 창문을 열면서 깨우면 저는 더 자겠다고 이불 속을 파고들었죠. 학교 마치고 해안공업품 상점에서 근무하던 엄마한테 들렀다 백사장에서 한참을 놀고. 제 추억이 서린 곳, 부모님이 누워 계신 곳을 눈 안에 담을 수 있는 곳이 동해입니다. 마음에 뭔가 쌓인다 싶으면 강원도 양양이나 속초 앞바다를 찾습니다.”


탈북 10년차 전 북한군 장교 김정아(41)씨. 5년째 북한 관련 방송 채널을 오가며 활동하는 방송인이자 북한여성인권 운동가, 안보 전문 강사다. 국방부 육군정책홍보자문위원이기도 한 그는 지난해 11월 특허청·한국여성발명협회가 주최한 ‘생활발명코리아대회’에서 ‘속시원한 세면기’로 대통령상도 받았다. 말 그대로 ‘멀티플레이어’다. 한국에서 찾은 힐링 장소가 어디냐는 질문에 그는 “묻지도 말고 동해”라고 답했다. 빡빡한 그의 스케줄 탓에 강원도 바닷가에서 만나려던 계획은 무산되고 다음 약속 동선을 고려해 지난주 여의도 국회에서 그를 만났다. 2시간여 인터뷰. 그의 투박한 함경북도 사투리가 눈물에 젖을 때가 많았다.

 
질의 :동해에서 청진항이 보이진 않을 텐데.
응답 :“내 눈엔 보이는 것 같다. 탈북해 중국 시골에 2년 반 있을 땐 바다가 보고 싶어 죽겠더라. 그곳엔 바다 그림도 한 장 없었다. 2009년 한국에 와서 울면서 잠 못 잘 때도 바다를 생각했다. 그해 겨울 생일 때 다니던 교회의 북한선교팀 집사이던 지금의 남편이 바다로 데려갔다. 속에 쌓였던 게 터지면서 한참을 소리 내 울었다. 바다에 갈 땐 부모님과 오빠를 위해 소주 한 병 가져가서 따라 드린다.”
 
그는 2년 전 탈북여성단체 ‘통일맘연합회’를 만들어 대표를 맡고 있다. 북송 공포 속에 아이를 중국에 두고 온 탈북여성들을 후원하고 중국의 강제북송정책과 중국 내 탈북여성 인권 유린 실태를 고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엔 유엔을 방문해 서맨사 파워 당시 주유엔 미국대사를 만나 강력한 지지를 얻어 내기도 했다. 2012년 한국에서 결혼한 남편과의 사이에 아들(5)을 둔 김 대표는 북한과 중국에도 딸(각 16세, 10세)이 있지만 목소리도 들을 수 없다. 이 단체의 슬로건 ‘내 아이 안고 싶어요’ ‘엄마의 마음으로 통일을 품어라’는 바로 그의 얘기다.
 
질의 :남북한과 중국, 세 곳에 흩어진 아이들이라. 너무 드라마틱해 보인다.
응답 :“한국에 온 뒤 국정원 조사를 받으며 이런 얘기를 했더니 ‘드라마 쓰느냐’고 하더라. 나 스스로도 ‘미치지 않고 어떻게 여기까지 살아왔나’ 싶었다. 청진시립병원에서 태어나자마자 입양됐다. 청진수산사업소 기사장을 하신 아버지는 내가 열두 살 때, 어머니는 그 3년 뒤 돌아가셨다. 당신들이 낳은 다섯 살 위 오빠와 함께 친자식처럼 나를 키우셨다. 1990년 초반 전 인민이 굶주림에 허덕인 고난의 행군 때였다. 이후 강제입양되면서 험난한 인생이 됐다.”
 
질의 :강제입양이란 게 뭔가.
응답 :“고난의 행군 시기 고아들이 길거리에 떠돌아다녔다. 사태가 심각하니까 김정일이 ‘공산주의적 미풍을 발휘해 부모 없는 아이들을 돌보라’는 방침을 내렸다. 당일꾼 가운데 처음 입양에 나선 게 김책 사단 정치위원으로 있던 양아버지다. 곧 성인이 될 나를 친척들과 미리 짜고 입양했다. 오빠가 당시 양아버지 휘하 부대에 있었는데 김정일에게 ‘홀로 남은 누이를 걱정하는 군인이 복무를 잘하도록 입양했다’고 보고했고, 이후 양아버지는 승승장구했다. 양아버지는 김정일로부터 93년 4월 25일 ‘훌륭한 당일꾼’이라며 치하하는 친필서한을 받았다.”
 
김 대표는 꽃제비(북한에서 집 없이 떠돌며 구걸하는 유랑자를 일컫는 말)로 살다 세상을 뜬 오빠에 대한 회한이 크다. 그의 오빠는 이제수 군사대학에 들어갔지만 당 간부의 개를 훔쳐 먹은 분대원과 연대책임을 지면서 강제퇴학됐다고 한다. “폐농양에 걸린 상태였는데 양아버지한테 내쫓겨 고향 청진으로 내려갔다. 나중에 석 달치 장교 식량을 타서 판 돈을 갖고 찾아갔지만 이미 사망한 뒤였다. 시신도 못 찾았다.”
 
질의 :꽃제비가 어느 정도로 많았나.
응답 :“길거리에 맨 꽃제비였다. 소위 계급장을 달고 집에 가는 날 평성역에서 도시락을 먹는데 꽃제비들이 달려들었다. 애 업은 여자는 먹을 거 달라 울고, 노인은 바닥에 엎드려 살려 달라고 울고. 학교 안에만 있을 땐 몰랐다. 집에 가 보니 오빠가 꽃제비로 살고 있더라. 도우려 했지만 늦었다.”
 
질의 :황해북도 8·15훈련소에서 중위로 제대했다고 들었다. 탈북한 이유는.
응답 :“군사대학 졸업 후 탄약고를 관리하는 보위대장 일을 했다. 17세에 시작한 군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어 결혼과 함께 제대했다. 생활이 어려웠다. 딸을 낳고 아들을 임신했는데 조산했다. 남편의 폭행이 원인이었다. 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아 군병원·도병원을 다 찾아도 방법이 없었다. 중앙병원(평양산원)까지 찾아갔다. 사흘 동안 병원 울타리를 돌며 진단이라도 받게 해 달라고 했지만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등이 차가워 진 뒤에야 아이가 죽은 걸 알았다. 샛강 가 땅을 파고 아이를 묻었다. 남편에 대한 증오심만 커져 결국 이혼했는데 시아버지가 딸아이를 내주지 않았다. 고향 가서도 있을 곳이 없어 두만강을 건넜다. ”
 
질의 :북한 주민들에게 탈북도 하나의 선택인가.
응답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거기선 살 수 없으니까. 일단 살려고 중국으로 건너가는 거다.”
북한 이제수 군사대학에서 열병식 훈련조였던 김정아 대표. 각을 잡고 걷는 게 몸에 배어있다는 그의 걸음걸이는 남달랐다.

북한 이제수 군사대학에서 열병식 훈련조였던 김정아 대표. 각을 잡고 걷는 게 몸에 배어있다는 그의 걸음걸이는 남달랐다.
 
평양에 가서 아이를 낳은 황선씨와 재미교포 신은미씨가 2014년 토크콘서트에서 북한 체제를 언급하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김 대표는 그때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황씨가 북한 여성들이 첫 출산은 평양산원에서 하고 정권 창립일 출산한 여성들은 각종 혜택을 받는다고 했다. 내 등에서 죽은 아이는 가슴에만 묻어 두려 했는데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첫아이를 군병원에서 낳았지만 식량을 낼 수가 없어 사흘 만에 병원에서 나왔다. 산모들은 입원 기간 자신이 먹을 쌀을 병원에 내야 했다. 당신이 평양산원에서 호강한 2005년 나는 혼자 아이를 낳고 태반을 손질해 먹었다. 그 아이는 진단도 못 받고 내 등에서 죽었다’고 증언했다.”
 
질의 :중국의 딸은 어떻게 됐나.
응답 :“탈북하면 브로커에 의해 중국 농촌으로 팔려 가는 경우가 많다. 이미 배 속에 북한 남편과의 사이에 아이가 있었다. 그걸 알고 누군가 신고를 해 반바지 차림으로 시 공안으로 끌려갔다. 내가 자해를 하고 악을 쓰니까 중국 남편이 자기 아이라고 해 줘 풀려는 났다. 이후 북송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해 한국으로 왔다. 내 딸과 마지막으로 통화한 게 2013년 1월이다. 딸이 ‘엄마, 나를 버렸어?’라고 얘기하는데 억장이 무너지더라. 내가 힘들 때마다 생부모에게 한 원망을, 내가 내 자식으로부터 듣고 있다. 아이가 그 집 아이로 호적에 올려졌는데 연락도 못하게 한다. 중국법상 생모의 권리가 전혀 먹히지 않아 괴롭다.”
 
질의 :북한에 남겨 두고 온 딸은.
응답 :“5대 외독자라 가족의 보살핌을 잘 받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통일될 때까지 건강히 있어 달라는 마음뿐이다. 얼마 전 부산에 있는 친구가 울면서 전화했는데 북한에 있는 딸을 데려오려 했다가 아이가 두 달 동안 교화소에 끌려가 실컷 맞았다고 했다. 감시를 받고 있는 걸 몰랐던 거다. 북한으로 돈을 보내 주고 풀려 나오게는 했다는데. 연락한 걸 가슴 치며 후회하더라.”
 
그는 지난해 미국에서 중국의 탈북여성인권 침해를 주제로 강연도 했다. “버지니아대 강연 때 중국 유학생들이 몰려와 ‘경제적 도주자가 왜 인권을 얘기하느냐’고 공격해 왔다. 그래서 말했다. ‘경제적 도주자라 치자. 그러면 엄마가 아이와 생이별당해도 말을 못해야 하나. 그게 국제사회 인권이냐’고. 질문한 친구가 강연이 끝난 뒤 눈물을 흘리더라.”
 
질의 :탈북자들이 얘기하는 정보가 다를 때가 많다.
응답 :“북한은 미로 같은 나라다. 당 간부의 삶, 장마당 사람들의 삶, 장마당 근처에도 못 가는 농장원들의 삶을 서로 모른다. 물론 경력을 속이고 얘기를 과장하는 탈북자들이 일부 있지만 종합해 보면 좋겠다. 한국 내 일부 북한 전문가의 경우 자신과 가까운 탈북자들의 얘기에만 집착하는 걸 많이 봤는데 고정된 관점을 버렸으면 한다. 북한도 바뀌고 진화하고 있다.”
 
질의 :‘속시원한 세면기’를 발명했는데.
응답 :“세면기 배수구에 낀 물때와 머리카락 때문에 화를 내다가 나온 아이디어다. 배수구 밸브 지렛대에 우산 모양으로 물길을 따로 내는 건데 남편이 발명 특허에 장기가 있어 함께 궁리했다. 이 세면기로 물을 빼면 12초, 시중제품은 25초 걸린다. 인천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창업 신청을 했고 경쟁 끝에 선정돼 현재 창업교육을 받고 있다.”
 
질의 :통일맘연합회 운영은 어떻게 하나.
응답 :“회원은 100명 정도다. 북한과 중국에 아이들을 두고 온 사람도 있고, 가족이 순차적으로 한국에 와 함께 사는 이도 있다. 남성 회원도 있다. 그런데 홈페이지 운영 같은 건 잘 안 된다. 탈북자들은 독특한 소통방식이 있는데 정보 검색이나 공식적인 정보보다 직접 대화를 선호한다. 입소문을 믿는 경향도 크다. 북한에서의 생활방식 때문인 듯하다.”
 
질의 :멀티플레이어로 살아왔다. 서울생활을 돌이켜 보자면.
응답 :“한 달 10만원으로 버티며 배우는 데 올인했다. 정보기술자격(ITQ)도 따서 엑셀·파워포인트 다 가능하다. 중소기업에 다니며 회계도 배웠다. 2012년 아들을 낳고 바로 국제사이버대 경영학과에 등록해 공부했고, 지금은 이화여대 경영학과 석사 과정에 들어가기 위해 15주 과정 강좌를 듣고 있다. 아들에게 ‘탈북자 엄마’가 아닌 ‘이 사회에서 한몫하는 자랑스러운 엄마’로 보이고 싶어서다. 대한민국에서는 스펙이 중요하지 않나(하하). 통일된 땅에서 만날 내 자식들한테도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다.”
 

DA 300


 
김수정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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