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불화, 왜 유럽까지 갔을까 '일본 인쇄 기술 아버지'로 불리는 이탈리아 판화가 코소네가 수집
- "한국 最古 수묵 소나무 그림" 가지와 솔잎까지 생생한 묘사
- "목걸이 채색 방법도 독특" 몸 전체 금칠한 뒤 그 위에 그려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14세기 고려불화 한 점이 이탈리아 제노바의 박물관에서 발견됐다. 고려불화 연구자인 정우택 동국대박물관장은 "이달 초 동국대 개교 110주년 기념사업회의 후원으로 유럽 지역 한국 불교 미술품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고려불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를 발견했다"며 "소나무가 그려진 첫 수월관음도"라고 20일 밝혔다. 수월관음도는 달빛 아래 바위 위에 반가좌(半跏坐)로 앉은 관음보살을 그린 그림으로, 고려불화 중에서도 백미로 꼽힌다.
◇고려불화가 왜 유럽에서 발견?
그림이 발견된 곳은 이탈리아의 근대 동판화가인 에도아르도 코소네(Edoardo Chiossone·1833~1898)의 기증품을 모은 박물관이다. 에도아르도 코소네는 19세기 후반 메이지(明治) 정부가 근대화를 위해 초빙한 외국인의 한 사람으로, 1875년(메이지 8년) 대장성(재무부) 조폐국에 취임했다. 화폐, 우표, 초상화 등 고급 인쇄 기술을 일본에 전해 '일본 인쇄 기술의 아버지'라 불린다. 수집가이기도 했던 그는 일본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23년간 1만5000여 점에 이르는 동양 미술품을 수집했고, 1905년 유족들이 제노바시(市)에 기증했다.
수월관음도는 그가 일본에서 수집한 그림 중 하나다. 정 교수는 "유럽에서 확인된 8번째 고려불화다. 코소네가 수집해 제노바시에 기증한 작품이라 출처가 분명하고, 일본이 근대기에 유럽과 활발하게 소통했음을 고려할 때 앞으로도 유럽에서 새로운 고려불화가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소나무가 그려진 첫 수월관음도
비단에 색칠을 한 이 수월관음도(세로 105.9㎝, 가로 55.4㎝)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화면 왼쪽 제일 윗부분에 그려진 소나무다. 정 교수는 "수월관음도에 소나무가 그려진 유일한 사례일 뿐 아니라 한국 최고(最古)의 수묵 소나무 그림이라 주목된다"고 했다. 지금까지 소나무가 그려진 한국 최고(最古)의 수묵화는 일본 교토 묘만지(妙滿寺)의 '세한삼우도(歲寒三友圖)'로, 이 그림은 고려 말 또는 조선 전기로 추정된다. 정 교수는 "고려시대의 일반 회화가 거의 전하지 않는 상황에서 당시의 회화 경향을 짐작하게 하는 귀한 자료"라고 했다.
관음보살의 목걸이는 독특한 채색 방법이 돋보인다. 정 교수는 "일반적으로 수월관음도에선 금을 아끼기 위해 목걸이를 먼저 그리고 나서 금니를 칠해 몸체를 표현했는데, 이 그림은 몸체 전면에 금을 칠하고 그 위에 목걸이를 그려 넣어 금의 효과를 최대한 살리려 했다"며 "이 같은 채색 방법은 처음"이라고 했다.
◇고려불화, 왜 중요한가
고려청자, 고려나전과 함께 예술적 기량이 뛰어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는 고려불화는 세계적으로 160여 점밖에 없다. 일본에 120여 점이 있고, 미국에 18점, 유럽에 8점이 있다. 국내에는 20여 점이 있는데 이 중 대부분이 최근 외국에서 구입해온 것이다. 전문가들은 "고려 말 왜구들이 약탈하거나 임진왜란 때 유출된 것이 적지 않고 외교적 목적과 교역품으로 적지 않은 고려불화가 현해탄을 건넜다"며 "조선은 폐불(廢佛) 정책으로 불교 유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탓에 1970년대 후반까지 국내에는 고려불화가 한 점도 남아 있지 않았다"고 했다.
현재 미국과 유럽의 박물관에 소장된 고려불화는 모두 일본을 거쳐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불화의 예술적 가치에 대해 워싱턴 스미스소니언박물관 프리어 새클러 미술관의 키스 윌슨 부관장은 "동아시아 불화 가운데 섬세함과 장식성이 돋보인다"고 했고, 유키오 리피트 미국 하버드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놀라울 만큼 묘사가 세밀하고 금을 잘 사용했으며 표현에 다양성이 넘친다"고 감탄했다. 정 교수는 "이 수월관음도는 원래 족자형이었으나 박물관에서 1970년대에 나무 틀의 패널식으로 바꾸면서 화학 접착제를 사용해 배접했기 때문에 화면의 색감이 변질됐다. 보존 처리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