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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10.1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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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전형필이 되찾은 우리문화
간송 전형필이 되찾은 우리문화중 무엇이 있나요??
 
네이버 지식백과 기사입력 :  2016/09/01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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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전형필이되찾은우리문화 1:1
cksw****
질문 9건 질문마감률66.7%
2016.06.15. 18:37
안녕하세요학교에서금요일까지해오라하네요...
일단질문하겠습니다.
간송전형필이되찾은우리문화중무엇이있나요??
그리고간송전형필이다돈을내고가지고있는건가요??
빨리답변부탁드립니다.
답변해주시면정말고개숙여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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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째 답변
질문자 채택

ltah님의 답변입니다.

채택답변수47,052
2016.06.15. 19:36

질문자 인사

정말고개숙여감사합니다내공이적은데도답변해주셔서감사합니다.
간송 전형필 선생님은 우리 문화재를 모두 돈을 들여 사모았습니다.
 
(간송 전형필이 되찾은 우리문화유산)
 
1.청자 기린형뚜껑 향로


종 목 국보 제65호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성북로 102-11) 간송미술관
시 대 고려시대


고려청자의 전성기인 12세기경에 만들어진 청자향로로 높이는 20㎝이다. 향을 피우는 부분인 몸체와 상상속의 동물인 기린이 꿇어 앉아있는 모습을 한 뚜껑으로 구성되어 있다.

 
몸체는 윗부분이 넓게 바깥쪽으로 벌어져 있고 짐승모양을 한 3개의 다리가 떠받치고 있다. 몸통에는 구름무늬가 장식되었고 윗면 가장자리에도 세 곳에 구름무늬가 배치되었으며, 그 위에 뚜껑을 덮도록 하였다. 뚜껑 한복판에는 뒤를 돌아보고 있는 기린이 조각되어 있고, 기린이 앉아있는 자리의 옆면에는 번개무늬가 돌아가며 음각되었다. 기린의 머리에는 뿔이 돋아있으나 부러져 있는 상태이고, 목뒤의 부분은 곱슬곱슬하게 표현하였다. 눈은 검은색 안료를 사용해 점을 찍었다. 구조상 향의 연기는 벌려진 기린의 입을 통하여 뿜어 나오도록 만들어졌다.

 
비취색 특유의 은은한 광택이 향로 전체를 품위있게 감싸고 있다.12세기 전반기에 비취색의 청자가 절정에 달하였을 때, 이와 같이 상서로운 동물이나 식물을 본뜬 상형청자가 많이 만들어졌다.


 
2.청자 상감연지원앙문 정병

종 목 국보 제66호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성북로 102-11) 간송미술관
시 대 고려시대

고려 전기의 청자 정병으로 높이 37.0㎝, 밑지름 8.9㎝의 크기이다. 원래 정병은 불교에서 모든 악을 씻어 버리는 의식에서 사용하던 용기의 하나로 중국을 거쳐 전해진 서방 양식이었으나, 고려에 와서 가장 세련되게 나타나게 되었다.

이 작품은 이러한 유물 중에서도 뛰어난 걸작으로 청아한 담록색 계통의 비취색 유약에 백토(白土) 상감만으로 새겨진 버드나무와 갈대, 연꽃, 원앙새 1쌍을 회화적으로 배치해 놓고 있다. 병 목에는 앞뒤 양면에 모란꽃을 하나씩 상감했다. 물을 따르는 부리는 8각으로 기품있게 만들어 병 목 위에 수직으로 세워 놓았다. 물을 넣는 아가리는 둥근 어깨 한쪽에 아담하게 붙어 있는데, 원래 뚜껑이 있었으나 없어진 상태이다.

대체로 초기의 상감청자는 유약이나 바탕흙이 매우 정선되어 있고, 청아한 비취색 유약이 세련미를 보여주는 것이 특색인데, 이러한 바탕 위에 상감무늬가 곁들여졌던 만큼 한층 더 장식 효과를 높일 수 있었다. 이 정병 또한 이러한 초기 상감청자의 하나로 매우 정제되고 세련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3.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종 목 국보 제68호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성북로 102-11) 간송미술관
시 대 고려시대

고려 매병은 중국 송나라 매병에서 유래된 것이지만, 12세기경에 이르러서는 고려만의 풍만하면서도 유연한 선의 아름다움이 나타난다. 이러한 고려 매병의 양식은 이 작품에서 세련미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높이 42.1㎝, 입지름 6.2㎝, 밑지름 17㎝의 크기의 매병의 아가리는 작고 낮으며 밖으로 살짝 벌어져 있다. 어깨는 넓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가리 아랫부분에는 꽃무늬를 둘렀으며 굽 위로는 연꽃무늬를 둘렀다. 몸통 전면에는 구름과 학을 새겨 넣었는데, 흑백상감한 원 안에는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학과 구름무늬를, 원 밖에는 아래쪽을 향해 내려가는 학과 구름무늬를 새겼다.

학의 진행방향을 다르게 표현한 것은 도자기 표면이라는 일정한 제약을 넘어 사방으로 공간을 확산시켜 짜여진 구획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추구한 듯하다. 이같은 표현상의 변화 추구와 함께 문양처리의 능숙함에서 고려 도자기의 우수함과 고려인의 창의력을 엿볼 수 있다.




 
4.훈민정음

종 목 국보 제70호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성북로 102-11) 간송미술관
시 대 조선시대

이 책은 조선 세종 28년(1446)에 새로 창제된 훈민정음을 왕의 명령으로 정인지 등 집현전 학사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한문해설서이다. 책이름을 글자이름인 훈민정음과 똑같이 ‘훈민정음’이라고도 하고, 해례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 해례본’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한다. 전권 33장 1책의 목판본이다.

구성을 보면 총 33장 3부로 나누어, 제1부는 훈민정음의 본문을 4장 7면으로 하여 면마다 7행 11자씩, 제2부는 훈민정음해례를 26장 51면 3행으로 하여 면마다 8행 13자씩, 제3부는 정인지의 서문을 3장 6면에 1자 내려싣고, 그 끝에 ‘정통 11년’(1446)이라 명시하고 있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훈민정음은 세종 25년(1443)에 왕이 직접 만들었으며, 세종 28년(1446)에 반포한 것으로 되어있는데, 이 책에서 서문과 함께 정인지가 근작하였다는 해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또한 한글의 제작원리도 확연하게 드러났다.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본이다.




 
5.동국정운 권1,6

종 목 국보 제71호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성북로 102-11) 간송미술관
시 대 조선시대

조선 세종 때 신숙주, 최항, 박팽년 등이 왕의 명으로 편찬하여 세종 30년(1448)에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표준음에 관한 책으로, 6권 6책이며, 활자본이다.

중국의 운에 관한 책인 『홍무정운』에 대비되는 것으로, ‘동국정운’이란 우리나라의 바른 음이라는 뜻이다. 당시 혼란스럽던 우리나라의 한자음을 바로잡아 통일된 표준음을 정하려는 목적으로 편찬, 간행되었다.

이 책은 세종 29년(1447) 9월에 완성되자 간행하라는 임금의 명이 있었고, 이듬해인 세종 30년(1448) 11월에 성균관, 사부학당 등에 보급되어, 이 책이 간행되고 보급되었던 시기를 알 수 있다.

현재 이 책은 전 6권 가운데 1권과 6권만이 남아있다. 내용을 보면 본문의 큰 글자는 나무활자이고, 작은 글자와 서문의 큰 글자는 갑인자이다. 글자체는 큰 글자가 진양대군의 글씨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한자음을 우리의 음으로 표기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국어연구자료로서의 중요성도『훈민정음』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또한 한자음의 음운체계 연구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의 글자를 만든 배경이나 음운체계 연구에 있어서 기본자료가 된다.




 
6.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

종 목 국보 제72호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성북로 102-11) 간송미술관
시 대 삼국시대

커다란 하나의 광배를 배경으로 중앙에 본존불과 양 옆에 협시보살을 배치하고 있는 삼존불이다.

중앙의 본존불은 민머리 위에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불상 전체 크기에 비해 크고 높게 표현되었다. 미소를 띤 갸름한 얼굴은 앞으로 약간 숙이고 있으며, 어깨와 가슴은 약간 좁은 듯 하지만 둥글고 강인하게 처리되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에는 정면으로 V자형 옷주름이 있으며, 좌우로는 새의 깃같은 옷자락이 뻗치고 있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정면으로 하고 손끝이 위로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손바닥을 정면으로 하고 손끝은 아래를 향하고 있는데 손가락 2개를 구부리고 있는 모습이 특징이다.

양 옆에 배치한 협시보살은 광배의 끝에 매달리듯 표현하였으며, 세가닥으로 올라간 보관을 쓰고 있다. 신체 표현은 본존불과 비슷하지만, 앞면에서 X자로 교차하고 있는 옷주름과 손모양이 다르다. 불꽃이 타오르는 모양을 가는 선으로 장식한 광배는 끝이 뾰족한 배 모양으로, 본존 주위에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도드라지게 새기고 그 안에 연꽃무늬, 덩쿨무늬, 인동초무늬를 새겼다. 불상이 서 있는 대좌는 바닥이 밖으로 퍼진 원통형이며 연꽃이 새겨져 있다.

금동신묘명삼존불(국보 제85호)의 양식과 비슷한 점이 많으며, 중국 남북조시대의 불상 양식을 따르고 있는 이 불상은 광배 뒷면에 새겨진 글에 의해 백제 위덕왕 10년(563)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7.금동삼존불감

종 목 국보 제73호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성북로 102-11) 간송미술관
시 대 고려시대

불상을 모시기 위해 나무나 돌, 쇠 등을 깎아 일반적인 건축물보다 작은 규모로 만든 것을 불감이라고 한다. 불감은 그 안에 모신 불상의 양식뿐만 아니라, 당시의 건축 양식을 함께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작품은 높이 18㎝의 작은 불감으로, 청동으로 불감과 불상을 만들고 그 위에 금칠을 하였다. 불감 내부를 살펴보면 난간을 두른 사각형의 기단 위에 본존불과 양 옆에 보살상이 있으며, 그 위에 기둥과 지붕으로 된 뚜껑이 덮혀 있다. 법당 모양의 뚜껑에는 앞면과 양쪽에 커다란 창문이 있어서 안에 모셔진 불상을 잘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본존불은 얼굴이 추상적이고,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주름을 간략한 선으로 표현했다. 몸 뒤편에 있는 광배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로 나누어져 있으며, 불꽃무늬로 가장자리를 장식하고 있다. 본존불 양 옆의 보살상도 구슬로 장식된 관(冠)을 쓰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형식이나 표현 수법이 본존불과 같다.

불감은 지금도 금색이 찬란하고 지붕에 녹청색이 남아 있는 등 전체적인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본존불의 긴 허리, 불규칙하게 나타나는 옷주름, 그리고 보살이 쓰고 있는 구슬로 장식한 관 등 여러 양식으로 보아 만든 시기는 중국 북방 계통의 영향을 받은 11∼12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은 고려시대 또는 그 이전의 목조건축 양식과 조각수법을 보여주는 귀중한 예라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8.청자 오리모양 연적

종 목 국보 제74호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성북로 102-11) 간송미술관
시 대 고려시대

오리 모양으로 만든 고려시대의 청자 연적으로 높이 8㎝, 너비 12.5㎝의 크기이다.

물위에 뜬 오리가 연꽃줄기를 물고 있으며 연잎과 봉오리는 오리의 등에 자연스럽게 붙어있다. 오리의 등 가운데 붙어있는 연잎에는 안으로 뚫은 구멍이 있어 물을 넣도록 되어있고, 연꽃 봉오리 모양의 작은 마개를 꽂아서 덮고 있다. 물을 따르는 부리는 오리 주둥이 오른편에 붙어 있는데, 이 부리가 연줄기에 달린 봉오리 끝으로 통했으리라 짐작되지만, 지금은 그 부분이 부서져 있어 원형을 확실히 알 수 없다.

이 연적은 오리의 깃털까지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정교한 기법을 보여주고 있으며, 알맞은 크기와 세련된 조각기법, 그리고 비색의 은은함을 통해 고려 귀족 사회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이다.




 
9.신윤복필 풍속도 화첩

종 목 국보 제135호
지 정 일 1970.12.30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성북로 102-11) 간송미술관
시 대 조선시대

조선 후기의 화가인 혜원 신윤복(1758∼?)이 그린 <단오풍정>, <월하정인> 등 연작 풍속화 30여 점이 들어 있는 화첩으로 가로 28㎝, 세로 35㎝이다. 아버지 신한평의 뒤를 이어 한때 도화서의 화원이기도 하였던 신윤복은 참신한 색채가 돋보이는 산수화 작품을 남기기도 하였지만, 특히 풍속화에서 그만의 독특한 경지를 나타내고 있다.

신윤복필 풍속도 화첩은 주로 한량과 기녀를 중심으로 한 남녀 간의 애정과 낭만, 양반사회의 풍류를 다루었는데, 가늘고 섬세한 부드러운 필선과 아름다운 색채가 세련되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등장인물들을 갸름한 얼굴에 눈꼬리가 올라가게 표현함으로써 다소 선정적인 느낌이 들며, 인물들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주위의 배경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점이 돋보인다. 대부분의 작품에 짤막한 글과 함께 낙관이 있지만 연대를 밝히지 않아 그의 화풍의 변천과정은 알 수 없다.

이 화첩은 일본으로 유출되었던 것을 1930년 전형필이 구입해 새로 틀을 짜고 오세창이 발문을 쓴 것으로 미술작품으로서 뿐만 아니라 18세기 말 당시 사회상의 일면을 보여 주는 것으로 생활사와 복식사 연구에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10.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종 목 국보 제149호
지 정 일 1973.07.10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성북로 102-11) 간송미술관
시 대 조선시대

이 책은 송나라 여조겸의 교편이며, 조선 태종 3년(1403)에 주조한 동활자인 계미자를 사용하여 태종년간에 간행한 것이다. 계미자는 고려와 조선시대의 글자주조술과 조판술의 발달사연구에 귀중한 자료인데 사용했던 기간이 짧아 전해지는 본이 희귀하다.

권4·5의 2책은 전성우씨 소장본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의 권4는 총 28장으로 제2∼29장까지 1장이 누락되어있고, 권5는 제1∼19장까지 구성되어 있다. 상태는 습기로 인해 많이 훼손되어 있고, 글자로 획이 중간중간 보이지 않는다. 책표지는 담황색 표지도 배접한 것으로 엷은 청색실로 꿰매었다. 계미자를 사용한 다른 유물들보다 인쇄상태가 정교하고 선명하다.



 
 
11.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권4, 5

종 목 국보 제149-1호
지 정 일 1973.07.10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성북로 102-11) 간송미술관
시 대 조선시대

이 책은 송나라 여조겸의 교편이며, 조선 태종 3년(1403)에 주조한 동활자인 계미자를 사용하여 태종년간에 간행한 것이다. 계미자는 고려와 조선시대의 글자주조술과 조판술의 발달사연구에 귀중한 자료인데 사용했던 기간이 짧아 전해지는 본이 희귀하다.

구성을 보면 권4는 2∼29장으로 구성되었으나 1장이 결락되어 28장만 남아있으며, 권5는 1∼19장 모두 현재 전하고 있다. 책의 상태를 보면 습기로 인해 표지가 퇴색했으며, 문자가 보이지 않는 곳도 있다. 책의 앞뒤의 염황색 표지를 대어 염청색의 면으로 보강하였다. 책의 크기는 가로 10.7㎝, 세로 29.7㎝이다.

계미자를 사용한 다른 유물들보다 인쇄상태가 정교하고 선명하다. 이 책은 계미자를 이용하여 간행되었다는 점과 고려, 조선시대 활자체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12.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종 목 국보 제270호
지 정 일 1992.04.20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성북로 102-11) 간송미술관
시 대 고려시대

고려시대 만들어진 원숭이 모양의 청자 연적으로,크기는 높이 9.8㎝, 몸통 지름 6.0㎝이다.

어미 원숭이 머리 위에는 지름 1.0㎝ 정도의 물을 넣는 구멍이, 새끼의 머리 위에는 지름 0.3㎝인 물을 벼루에 따라내는 구멍이 각각 뚫려 있어 연적임을 알 수 있다.

두 원숭이의 손가락과 발가락은 그 사이사이를 파내어 도드라지게 표현하였고, 어미 원숭이의 눈, 코와 새끼 원숭이의 눈은 검은 색 안료로 점을 찍어 나타냈다. 어미 원숭이의 엉거주춤한 자세, 보채는 새끼의 모습을 통해 원숭이 모자의 사랑을 재미있게 묘사하였다. 유약은 잘 녹아 투명하고 잔잔한 기포가 전면에 있어 은은하고, 표면의 색깔은 아름다운 비취색이다.

1146년에 제작된 청자과형화병, 청자합과 유약 색이 동일하여 12세기 전반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청자 연적 중 원숭이 모양의 연적은 드물며 더욱이 모자(母子) 모양으로서는 유일한 예이다.




 
13.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

종 목 국보 제294호
지 정 일 1997.01.01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성북로 102-11) 간송미술관
시 대 조선시대

조선시대 백자들은 대개 단순한 형태와 문양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다채로운 색채의 사용을 절제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높이 42.3㎝, 아가리 지름 4.1㎝, 밑 지름 13.3㎝인 이 병처럼 하나의 작품에 붉은색 안료인 진사, 검은색 안료인 철사, 푸른색 안료인 청화를 함께 장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형태는 가늘고 긴 목에 풍만한 몸통과 약간 낮은 굽을 하고 있다. 굽은 선을 그은 듯이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으며, 아가리는 그대로 끊어내어 날카로운 맛이 있다. 18세기 전반경의 백자 병은 아가리 끝이 밖으로 살짝 벌어지거나 말린 것이 많은 것에 비해 드물게 보이는 형태이다.

병의 앞뒤 면에는 국화와 난초를 그렸으며, 벌과 나비들이 노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무늬는 돋을무늬로 난초는 청화, 국화는 진사, 국화줄기와 잎은 철사, 벌과 나비는 철사 또는 진사로 채색하였다.

이 병은 같은 종류의 조선 백자 중 크기가 큰 편에 속하며 유약의 질, 형태의 적절한 비례감, 세련된 문양표현으로 보아 18세기 전반경 경기도 광주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14.백자 박산형뚜껑 향로

종 목 보물 제238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성북로 102-11) 간송미술관
시 대 고려시대

개성 부근의 고려 시대 무덤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백자 향로로 높이 8.5㎝, 지름 8.1㎝이다.

몸체는 전체적으로 둥근 형태로 뚜껑 부분과 향을 피우는 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휘어진 토끼 꼬리 모양의 다리 3개가 부착되어 있다. 산을 겹쳐 놓은 모양을 한 반구형 뚜껑의 정상에는 다각형의 큰 구멍이 있으며, 그 밑에 다시 돌아가면서 7개의 구멍을 배치하여 이를 통하여 연기가 발산되도록 하였다.

유약은 청백색의 백자 유약을 두껍게 발랐으며, 투명하고 광택이 난다. 이 향로는 12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국적과 가마터를 가늠하기가 매우 어렵다. 형태는 중국 한나라 때 신선들이 살고 있다는 상상속의 산인 박산을 형상화 한 박산향로를 단순화·양식화시킨 것이다. 이 향로와 같이 둥근 형태을 이룬 몸체에 뚜껑의 윗면에 구멍을 내는 양식은, 송나라 때 백자 향로 중에 더러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점들로 보아 백자 박산형뚜껑 향로는 12세기 고려 백자와 중국 남송 전기의 청백자 성격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작품으로 보인다.



 
15.금보

종 목 보물 제283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성북로 102-11) 간송미술관
시 대 조선시대

금보는 선조 5년(1572)에 안상이 편찬한 거문고 악보로, 목판본으로 출판된 악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 책의 머리글에는 안상이 1561년 장악원의 첨정으로 근무하면서 악공을 시험하는 책에 가락 쓰는 법과 술대 쓰는 법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악사 홍선종에게 합자보를 개수하게 하고 악공 허억봉에게 적보를, 악공 이두금에게 장구보를 만들게 하여 이 악보를 편찬하였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이 책의 내용을 보면 크게 세 부분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첫째 부분은 저자의 머리글에 이어 금도와 낙시조평조, 우조평조, 평조계면조의 산형 및 집시도, 박보, 장구보, 안공법 등의 그림과 설명으로 구성되었다. 둘째 부분은 정석가, 한림별곡, 감군은, 여민락 등 9곡으로 구성되었다. 셋째 부분은 당비파도, 비파탄법, 조현법의 도설 및 비파만대역의 악보로 구성되었다.

이 책은 임진왜란 이전의 여러 가지 악보를 포함하고 있어 『시용향악보』와 더불어 가장 기본적인 악보로 취급되고 있으며, 당비파 음악을 전하는 유일한 자료로 평가된다.




 
16.금동여래입상

종 목 보물 제284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성북로 102-11) 간송미술관
시 대 통일신라

금동여래입상은 청동 불상 표면에 도금한 높이 38.2㎝의 불상으로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머리 위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솟아있다. 얼굴은 원만하고 눈은 감고 입을 오므리면서 미소를 짓고 있는 듯하여 보는 이에게 감동을 준다. 꾸밈없는 미소를 띤 얼굴은 삼국시대 불상양식의 특징을 반영한 것으로 이 불상의 격을 높여주고 있다. 아랫배를 조금 내밀고 서 있는 신체는 부드러우면서도 자유로운 자세를 취하고 있다.

옷주름도 엄격한 좌우대칭에서 벗어나, 가지런한 듯하면서도 오른쪽 어깨의 옷이 흘러내릴 듯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 포개진 옷주름은 중국 북위의 조각양식에서 온 것이며, 발목 위로 올라간 옷의 아랫자락은 마치 치마 주름처럼 표현되었는데, 이런 수법들은 얼굴의 표현과 함께 과도기적인 북위 양식의 영향을 거쳐 나타난 새로운 특징이다. 대좌는 아래부분이 8각이며 각 면에는 같은 모양이 뚫을새김 되어있다.

얼굴과 옷주름의 표현, 생동감 넘쳐나는 자유로운 자세 등은 이 불상이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게 해준다.



 
 
17.금동보살입상

종 목 보물 제285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성북로 102-11) 간송미술관
시 대 삼국시대

금동보살입상은 청동 불상 표면에 도금한 불상으로 간송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머리에는 인동무늬 비슷한 장식이 새겨진 보관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긴 편이다. 얼굴의 표현은 매우 특징이 있는데, 가늘게 찢어진 눈과 앞으로 내민 입술, 툭 튀어나온 광대뼈가 어울려 토속적 인상을 강하게 풍기고 있다. 삼도가 없는 긴 목, 원통형의 몸은 삼국시대 불상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옷자락은 양쪽에 대칭으로 뻗쳐서 새의 날개깃처럼 표현하였는데 매우 인위적이고 도식적이어서 사실감이 없다. 양 어깨에 걸쳐서 내려오는 큼직한 구슬장식은 허리 밑에서 X자 모양으로 교차되는데, 너무 밑으로 쳐진 느낌이다. 도금이 많이 벗겨져 있는 대좌는 원형으로 단층이며, 끝이 비교적 날카로운 8잎의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출토되었다고만 전해질 뿐 확실한 유래는 알 수 없다. 양쪽으로 뻗쳐진 옷주름 표현, 구슬장식, 두 손으로 구슬을 잡고 있는 모습 등에서 6세기 말이나 7세기 초의 특징을 보인다.


 
 
18.청자 상감포도동자문 매병

종 목 보물 제286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성북로 102-11) 간송미술관
시 대 고려시대

청자 상감포도동자문 매병은 고려 시대의 만들어진 청자 상감 매병으로 높이 41.5㎝, 아가리 지름 7.5㎝, 밑지름 15.8㎝의 크기로 매병 가운데 드물게 보이는 큰 작품이다.

술병으로 보이는 매병은 고려의 세련미를 보이며 매우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이 때의 매병과 비교해보면 다리가 길어지고 아가리가 커졌으며, 정선되지 않은 바탕흙, 깨끗하게 마무리 되지 않는 굽다리들로 전성기가 지난 시기에 만든 것으로 짐작된다.

어깨부분에는 비교적 큰 꽃무늬를 상감하였고, 넓은 몸통에는 덩굴 포도잎과 열매로 가득 채웠다. 이들은 모두 백상감으로 나타냈는데, 포도 열매만은 동그란무늬로 도장을 찍듯 새기고, 그 안에 검은 점을 하나씩 상감하여 포도알을 표현하였다. 포도 덩굴 잎새의 백토 상감 부분은 두껍게 도드라져 보이는 특이한 효과를 보여준다. 밑부분은 번개무늬를 연이어 돌렸고, 그 위로는 연꽃잎을 백상감으로 돌렸다. 엷은 녹색이 감도는 회청색의 유약을 두껍게 사용하였다.

전체적으로 고려 매병의 전성기 형식에서 벗어나는 작품이지만, 포도잎의 도드라진 백상감법은 주목할 만 하다.


 
 

19.분청사기 박지철채화문 병

종 목 보물 제287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성북로 102-11) 간송미술관
시 대 조선시대

분청사기 박지철채화문 병은 조선 초기의 분청사기 병으로 높이 20.4㎝, 아가리 지름 5.2㎝, 밑지름 8㎝이다.

회색의 바탕흙 위에 백토로 분장을 하여 무늬를 그리고, 그 외의 배경을 긁어낸 뒤, 긁어낸 부분에 다시 철채를 입혀서 어두운 녹색의 배경과 흰 무늬와의 대조가 선명하게 잘 어울리고 있다. 무늬는 변형된 모란무늬이며,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스럽고 활달한 감각을 엿볼 수 있다. 병의 목 주변에는 변형된 연판무늬를 둘렀다.

유약은 투명한 회청색이며 일부 연한 갈색을 띤 곳이 있다. 표면이 매끈하지 않아도 생김새와 도안 의장법에서 친근하고 구수한 멋을 나타내고 있다.


 
 

20.분청사기 상감모란문 반합

종 목 보물 제348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성북로 102-11) 간송미술관
시 대 조선시대

분청사기 상감모란문 반합은 회색의 바탕흙에 백토로 모란 꽃잎을 면으로 넣어 상감한 뒤, 연한 청색을 띤 회백색의 투명한 유약을 골고루 칠한 높이 16㎝, 몸 지름 16.8㎝의 반합이다.

몸체와 뚜껑의 경사면에 모란꽃과 잎을 너래상감하고, 뚜껑의 가장자리에는 자잘한 풀 무늬를 백상감하였다. 모란무늬가 있는 사이로 큰 줄기를 역동적으로 새겼다.

합의 아가리에 풀꽃무늬 띠를 둘렀으며, 그 아래로 두 줄의 선을 긋고 그 안에 모란무늬를 상감하였다. 뚜껑의 아가리 역시 풀꽃무늬 띠를 두르고 두 줄의 선 안에 모란을 배치한 뒤, 위로 가지를 뻗어 모란 한 송이를 윗면에 상감했다.

이 합에서 많이 쓰인 너래상감이란 면으로 상감한 것으로, 분청 사기류에서 즐겨 썼던 기법이다. 합으로는 조선 전기의 풍만한 양감이 있는 형태를 잘 반영한 대표적인 기형이며, 굽의 형태도 밑으로 벌어져 있어 전체의 둥근 모습에 좋은 비례와 안정감을 준다.

너래상감기법을 쓴 분청사기 가마는 전라남도 광산군 무등산 금곡가마가 있으며, 이 합과 비슷한 너래상감기법의 파편이 1963년 광주광역시 동구 충효동 가마터에서 발굴 조사된 바 있다.








 
21.청자 상감국화모란당초문 모자합

종 목 보물 제349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성북로 102-11) 간송미술관
시 대 고려시대

청자상감이란 흙으로 그릇을 빚어 반쯤 말린 뒤, 그릇 표면에 무늬나 그림을 새기고 그 자리를 백토나 자토로 메운 뒤, 유약을 발라 구워서 투명한 청자 유약을 통해 흰색 또는 검은색 무늬가 보이도록 한 것으로 12세기 전반에 발생하여 12세기 중엽에 전성기를 이루었다.

청자 상감국화모란당초문 모자합은 화장품을 넣어 두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그릇으로 바깥쪽의 큰 그릇인 모합과 그 안에 들어가는 작은 그릇인 자합 5개로 이루어져 있다.

자합은 가운데에 놓이는 둥근 8각형 모양의 그릇(높이 3.1㎝, 지름 7.9㎝) 하나와 그 둘레에 놓이는 山모양을 한 4개의 그릇(높이 3㎝, 길이 7.8㎝)으로 구성되어 있다.자합 뚜껑에는 흑백상감을 한 모란을, 뚜껑 바깥 둘레에는 백상감을 한 번개무늬를 장식하였다.

모합은 높이 8.4㎝, 지름 19.1㎝로 뚜껑 둘레는 모란과 국화무늬를 장식하였고, 뚜껑 가운데 부분은 국화무늬를 흑백상감 처리하였다. 모합 몸체는 덩굴무늬를 둘러서 마무리하였다.

이러한 모자합은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청자가마터에서 나오는 파편 에서 비슷한 작품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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