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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찰리 채플린 구봉서… "코미디는 풍자"
'막둥이' 코미디언 구봉서씨 별세…향년 90세... 구봉서 아들 "항상 자랑스러운 아버지였다…편안히 영면"
 
연합뉴스 기사입력 :  2016/08/2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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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찰리 채플린 구봉서…"코미디는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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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찰리 채플린 구봉서··· "코미디는 풍자"





고단한 서민 위로한 '희극계 대부'…영화 400여편 출연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코미디언 구봉서는 우리나라 희극계의 대부이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쓴 연예계의 거목이었다.
그는 배삼룡, 곽규석 등과 콤비를 이뤄 1960~80년대 한국 희극계를 주름잡으며 코미디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정치적으로 암울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 웃음으로 고단한 서민들의 삶을 위로했다.
그는 1926년 의료상을 하는 평양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1945년 대동상고를 졸업한 뒤 태평양악극단 악사로 연예계에 입문했다.
평소 취미로 즐기던 아코디언을 들고 길거리를 지나던 중 급히 악사를 구하던 태평양악극단에 의해 길거리 캐스팅 됐다.
구봉서

그는 1940~60년대 연극, 만담, 코미디, 노래가 어우러지는 악극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양석천, 양훈, 김희갑, 서영춘, 배삼룡 등과 함께 전국을 돌며 서민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1950년대 후반부터는 충무로에 진출해 코믹영화의 전성기를 열었다.
'애정파도'를 시작으로 '수학여행', '억울하면 출세하라', '출세가도', '번지수가 틀렸네요', '염통에 털난 사나이', '오부자', '돌아오지 않는 해병' 등 4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출세작이 된 '오부자'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막둥이로 나온 구봉서는 '막둥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1969년 MBC TV 개국과 함께 탄생한 장수 코미디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비실이' 배삼룡과 명콤비로 연기를 선보이면서 국민적인 스타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한번은 '웃으면 복이 와요'의 콩트에서 극중 아들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라는 뜻으로 글자수가 72자나 되는 긴 이름을 붙여줬는데, 지금도 회자되는 희대의 유행어가 됐다.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드셀라 구름위 허리케인에 담벼락 서생원에 고양이 고양이는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
동양방송(TBC) TV 프로그램 '쇼쇼쇼'에서는 '후라이보이' 곽규석과 콤비를 이뤄 새로운 코미디를 선보였는데, 이를 계기로 라면 TV 광고에 등장해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카피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찰리 채플린의 희극 연기를 신봉했던 구봉서는 "코미디는 풍자"라고 믿었다.
매를 맞더라도 잘못된 정치와 사회를 풍자하는 진실이 담긴 코미디를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그는 은퇴 후 가진 한 인터뷰에서 "요즘은 풍자 코미디가 부족하다"며 "코미디가 사회를 정화하는 역할을 못 한다면 의미와 역할이 퇴색될 것"이라고 했다.
많은 유행어를 낳았던 구봉서는 이에 대한 생각도 남달랐다.
몇년 전 한 TV 방송에서 그는 "억압의 시대에 사람들의 억눌린 마음을 대변했기 때문에 유행어가 됐다"고 했다.
그는 60년 이상 희극인으로 살면서 사회와 연예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구봉서는 은퇴 후 종교 생활에 전념해왔다. 인기가 정점에 있던 1970년대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으며 연예인 선교에 힘쓰며 서울 평창동의 연예인교회(현 예능교회) 설립을 주도했다.
그는 향년 90세의 일기로 27일 생을 마감했다.

abullapia@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08/27 12: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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