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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와의 5년 전쟁… “나는 투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동아일보 기사입력 :  2015/06/23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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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와의 5년 전쟁… “나는 투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허문명 기자
입력 2015-06-22 03:00:00 수정 2015-06-22 10:22:39
 
[허문명 기자의 사람이야기]강기봉 발레오전장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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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경주시에 있는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옛 발레오만도) 강기봉 사장(56)은 전문 경영인이라기보다 전사(戰士)처럼 보였다. 눈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고 목소리에는 한숨과 때로 분노까지 섞였다. “지난 5년간 한마디로 인간관계 막장 중의 막장 드라마를 찍은 기분이다. 다시 태어난다면 절대 하고 싶지 않다. 흔히들 직장은 삶의 터전이라고 하지 않나. 하루 중 제일 많이 만나는 직장 동료들은 가족보다 더 시간을 함께 많이 보내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끼리 입에 담을 수 없는 온갖 욕설 막말에 배신 음모, 갖은 술수를 그것도 5년씩이나 겪어 봐라. 투사가 될 수밖에 없다.” 싸우면서 닮는다고 하던가. 그는 2000년부터 회사 내 노조와의 지긋지긋한 분쟁과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와 산별노조 탈퇴를 두고 법정 투쟁을 하면서 스스로 “싸움꾼이 되었다”고 한다. 》
인터뷰 내내 한국 노사관계의 답답함을 호소하던 발레오전장 강기봉 사장이 지난 5년간 금속노조와의 갈등 속에서도 적자 회사를 흑자 회사로 바꿔놓았다고 설명하면서 모처럼 미소를 지었다. 경주=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노동계 핫 이슈된 산별노조 탈퇴

프랑스 100% 투자법인이자 중소자동차부품회사인 발레오전장(電裝·각종 전자 장비를 생산한다는 뜻)은 현재 노동계에서 가장 뜨거운 현장 중 하나다. 산별노조 탈퇴를 과연 지회 조합원들의 자유의사에 따라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대법원까지 올라가 법정투쟁 중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발레오 그룹이 1999년 만도기계 경주 공장을 인수해 설립한 발레오전장 노조는 2001년 금속노조에 가입했고, 2010년 회사 측이 경비 업무를 외주에 맡기자 반발해 파업에 돌입했다. 노사 분쟁이 장기화되면서 회사가 존폐의 기로에 휩싸이자 그해 전체 조합원 601명 중 536명인 97.5% 찬성으로 금속노조 탈퇴를 결정한다. 그러자 금속노조 측에서 ‘금속노조위원장의 동의 없이는 탈퇴할 수 없다’고 소송을 냈고 1, 2심 법원은 금속노조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지난달 28일 공개변론까지 여는 등 이 문제를 다시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만약 1, 2심 판결이 대법원에 의해 뒤집힐 경우 노동계에 미칠 파장은 크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에 유사한 사례들이 있어 탈퇴가 잇따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기자가 2010년 인터뷰했던(본보 2010년 5월 31일자 참조) 강 사장을 다시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최근 그로부터 날아온 한 통의 e메일 때문이었다. “지난 5년 동안 너무 힘들었다. 노사문제만 해결되면 한국 제조업에도 살길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직장폐쇄까지 단행하면서 한때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던 회사가 바야흐로 노사 화합의 모델로 새롭게 시작하는 과정을 보도했던 기자는 이후 각종 매스컴에서 이 회사가 성공적으로 재기했다는 뉴스를 보며 내심 ‘다행이다’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KTX를 타고 경주로 내려간 것은 이달 초였다.

우선 강 사장이 전하는 발레오전장의 성과는 외형적으로는 눈부셨다. 2010년부터 매년 창사 이래 최고 매출을 경신해 매출 3000억 원대 회사가 5000억 원대 회사로 컸다. 현장 근로자 연봉이 2014년 기준 1인당 8200만 원으로 5년 전 6190만 원에서 25%나 올랐다. 지난해 낸 법인세만도 110억 원이며 지방세는 11억 원, 주주배당금은 300억 원에 육박했다.

만년 적자 회사가 이렇게 변신한 데에는 “이익의 25%는 무조건 성과급으로 지급하겠다는 것을 아예 단체협상안에 넣어 약속했다”는 강 사장의 파격적 결정도 한몫을 했다.

문제는 해고 노동자들과 금속노조에 소속된 일부 조합원들이었다. 강 사장의 말이다.

“복수노조가 허용되면서 우리 회사 노조는 무려 4개나 된다. 이 중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원이 80명에 달한다. 현장의 근로자 80%는 상식에 따르는 사람들이고 선동하는 사람은 20%밖에 안된다. 그런데도 그 소수가 현장 분위기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좋은 품질로 세계 시장과 경쟁하기에도 바쁜데 현장의 혼란을 수습하느라 너무 힘이 든다. 금속노조는 시시때때로 우리 조합원들에게 ‘곧 금속노조가 이길 것이다’ ‘기존 노조가 했던 모든 단협 임금협상은 무효’라고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아예 노조 사무실에 매일 확성기를 틀어놓고 ‘사장을 처단하자’고 외친다. 하도 시끄러워 임원회의를 할 때 소리를 질러가며 할 정도이다. 임원들 중에는 원형탈모증에 정신과 치료까지 받는 사람도 있다. 현재 해고자를 포함해 120여 명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놓고 있다. 이런 상태인데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일할 맛이 나겠나.”

가장 큰 피해자는 청년들

그의 하소연은 이어졌다.

“사용자도 잘못하면 처벌받아야 하지만 노동자도 마찬가지 아닌가. 노조는 여차하면 사업주에게 부당노동행위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둘러대는데 업무방해로 아무리 고발을 해도 공권력이 외면한다. 경찰도 노조가 했다고 하면 그냥 가버린다. 무조건 사용자 말을 들어달라는 게 아니다. 잘못하면 사용자나 노조나 공평하게 혼내 달라는 말이다. 이게 법과 원칙이 아니고 뭔가. 나도 세금 내는 시민인데 왜 경찰은 노조 편만 드나.”

그는 “결국 기업이 잘되어야 나라도 살고 지역사회도 사는 것 아닌가”라며 “이런 분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는 청년들”이라고 했다.

“20, 30년 전만 해도 경주에서 나고 자라 상고 공고만 나와도 일자리가 많았다. 취직 걱정 없이 직장생활 어느 정도 하면 집도 장만하고 아이들 교육도 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청년들이 고향을 지키고 싶어도 떠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은 경주도 마찬가지여서 2007년 이후 지금까지 인구가 8000∼9000명가량 줄었다고 한다.

“남들은 경주하면 살기 좋은 도시, 문화유적이 숨쉬는 힐링 도시라고들 하지만 젊은이들이 먹고살 것 없어 떠나는 도시에 과연 미래가 있다고 할 수 있나. 공무원들 만나면 ‘언제까지 관광만으로 먹고살 거냐. 제조업이 살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는 이 대목에서 법 만드는 국회의원들에게도 할 말이 많다고 했다.

“정년도 연장해주고 초과근로도 금지시키고 통상급여도 풀고 등등 근로자들에게 폼 나고 생색나는 건 다 그분들이 한다. 그러면서 제일 힘든 노사문제는 노사가 알아서 할 문제라고 떠민다. 그동안 국회의원들 만나 하소연도 많이 했다. 앞에서는 ‘당신 입장 이해한다’고 등 두들겨 주면서 헤어지고 나면 답이 없다.”

‘로또 판결’ 법에도 기댈 수 없어

그의 말이 이어졌다.

“여기 옛 통합진보당 의원들도 왔다. 강기갑 김재연 의원은 내 방까지 들어왔다. 내가 ‘죄송합니다만 제 이야기를 들어 주실 거면 앉으시고 의원님들 말씀만 하실 거면 나가달라’고 했다. 밖에서 금속노조원들은 ‘김재연 의원님 저희 말에 귀 기울여 주세요. 양심이 뭔지 보여 주세요’라며 확성기 틀어대고, 이상규 의원은 아예 노조원들 사이에서 양복 입고 구호를 선창하며 ‘투쟁 투쟁’ 외치고 갔다.”

그가 목이 마른지 냉수 한 컵을 들이켰다.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그의 말을 듣느라 기자는 받아 적기에도 바빴다. 그는 내친김에 법원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다고 했다.

“요즘 제조업 사장들 입에서 노동법 판결은 어느 판사 만나느냐에 따라 바뀌는 ‘로또 판결’이라는 말이 나온다. 판결이 지역마다 다르고 판사마다 다르니 법에 기대고 싶어도 기댈 수가 없다는 말이다. 가정법원처럼 노동문제만 전문으로 다루는 노동법원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이 대목에서 기자가 궁금증이 생겼다. “회사가 망하면 결국 종업원들 손해일 텐데 왜 그렇게 강성투쟁 일변도로 치닫는 것인가”라고 묻자 그의 답은 이랬다.

“회사는 망해도 자기들은 손해 볼 것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망하더라도 산별노조가 있는데 자기들 허락 안 받고 회사를 남한테 팔 수 있겠냐는 것이다. 오히려 주인이 바뀌면 시원하게 현찰을 풀 것이고 그러면 그게 더 이익이라고 생각한다. 여기 주변 회사들이 실제로 여럿 그렇게 했다. 회사는 팔려도 좋다→새 주인이 오면 돈이 나온다→새 주인은 또 우리가 얼마든지 컨트롤할 수 있다. 이게 기존 경험에서 나온 노조의 논리다.”

그와 이야기하면서 답답해지기는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인터뷰 말미에 “한국 제조업이 아직은 가능성이 있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인건비가 높아 중국 인도보다 가격 경쟁력이 다소 떨어지긴 하지만 아직 ‘메이드 인 코리아’ 국가 브랜드 프리미엄이 있다, 한국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노사 화합이 필수다. 정부와 국민의 관심이 필요하다. 환경만 잘 만들어 주면 잘할 수 있을 텐데….”

서울로 오는 기차 안에서 내내 발레오 노사의 5년간의 진흙탕 싸움이 한국 사회 곳곳의 갈등과 분열 장면들로 오버랩 되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왜 우리는 개인, 집단, 노사, 정치를 막론하고 룰을 정해 대화하고 타협하는 문화가 정착하지 못하고 늘 극단으로만 치닫고 있는 것일까. 이 오랜 분열은 언제쯤 끝이 날 것인가.

―경주에서

 


▼ 산별노조와 기업별 노조 ▼

산별노조는 동일 산업의 모든 근로자가 가입된 노조이며 기업별 노조는 개별 기업 근로자들로 구성원 노조이다. 우리나라 노조는 기업별 노조 중심이었다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사업주들의 대규모 정리해고가 잇따르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별 노조가 뭉친 산별노조가 조직됐다.

산별노조가 되면 사업주는 단위사업장 노조가 아니라 이들이 속한 산별노조와 단체교섭을 한다. 노조 역시 단체행동을 할 경우 단위 사업장이 아니라 산별노조 차원으로 하게 된다. 이 경우 노조는 더 강한 교섭력을 가질 수 있어 노동자의 이익을 더 크게 대변할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하지만 한국의 산별노조는 최근 들어 협상과 대안 마련의 능력을 높이는 대신 개별 기업 근로자들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투쟁일변도로 나가 너무 정치화되었다는 비판을 많이 받는 편이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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