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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교과서에 일본해만 표기된 사실 알고 피가 거꾸로 솟아"
“지옥과 천당 오갔다” 美동해병기 법안 수훈갑 피터김 회장 인터뷰
 
조선일보 기사입력 :  2014/02/0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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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과 천당 오갔다” 美동해병기 법안 수훈갑 피터김 회장 인터뷰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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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4.02.09 13:58

    
	“지옥과 천당 오갔다” 美동해병기 법안 수훈갑 피터김 회장 인터뷰
     “학교에서 일본해라고 배워요.”

    모든 것은 아들의 한 마디에서 시작됐다. 지난 6일 미 버지니아주에서 역사적인 동해 병기 법안이 통과된 후 ‘미주 한인의 목소리(VoKA)’ 피터 김 회장은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감회어린 지난날을 돌이켰다.

    동해 병기 법안은 한인사회와 이에 호응한 주류 정치인들, 그리고 국민적 성원이 이뤄낸 결실이다. 이 법안의 단초를 마련하고 전략 구상 등 실무를 주도한 주인공은 피터 김(54 김영길) 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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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지니아에서 ‘동해(East Sea)’ 이름을 찾기 위한 한인들의 노력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 2007년 경부터 몇몇 한인들이 “일본해가 아니라 동해”라는 주장을 지역구 의원들에게 전달해 왔다. 가장 먼저 호응한 정치인은 데이브 마스덴 상원의원이었다. 그는 2011년 하반기에 지역구의 한인 유권자들을 위한 법안 상정을 마음먹고 교육위를 통한 조사 끝에 동해병기 법안을 발의하게 됐다.

    이듬해 1월 동해 법안은 교육위 소위원회에서 4-2로 통과했으나 두 번째 관문인 상임위에서 7-8로 부결됐다. 당시 법안이 상정됐을 때 관심을 가진 한인들은 극소수였다. 정보도 별로 없었고 바쁜 이민 생활로 정치인들과 접촉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은 달랐다. 동해 병기 법안이 상정됐다는 소식에 이메일과 전화 등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일본계 주민이 한인들에 비해 크게 적었던 만큼 일본 정부 차원의 대응이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어쨌든 한인사회의 응원이 없었던 법안의 첫 시도는 그렇게 좌절됐다.

    피터 김 회장도 그때는 여느 한인들과 다를 게 없었다. 그 무렵 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얘기하다 ‘일본해’가 쓰인 교과서로 배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눈에 휘둥그레졌다. “난 동해가 교과서에 일본해와 함께 표기된 줄 알았거든요.”

    피가 거꾸로 솟는 듯 했다. 일본해가 쓰인 것도 억울한데 우리의 동해가 아예 없다니…. “그런 엉터리 교과서로 공부하냐?”고 애꿎은 아들만 혼을 냈다. 동해를 어떻게 알려야 할지 고민하던 그에게 주위의 베트남계 친구가 백악관의 청원 사이트 ‘위 더 피플’을 귀띔했다.

    ▲ 2012년 백악관 청원 사이트에 동해 표기 캠페인 시작

    지금은 한국 국민들에게도 제법 알려진 백악관 청원 사이트는 당시엔 아는 한인들이 거의 없었다. 당장 ‘위 더 피플’에 ‘미국 내 교과서 동해 표기 바로잡기’ 청원을 올렸다.

    이 사실이 한인사회에 알려지면서 서명 열기가 확산됐다. 총 10만2000명의 청원을 달성한 그는 백악관 관계자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8월 키란 아후자 백악관 아·태 자문국장과 도널드 유 교육부 상임 자문 등이 참석한 자리에서 “미국 내 교과서에 동해가 일본해로 잘못 표기돼 학생들도 모르는 가운데 왜곡된 역사를 배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원서에 서명한 10만2000여명의 우려에 관심을 갖고 정식으로 논의해 달라”고 요청한 그는 6월 백악관측이 관련 청원서를 교육부가 아닌 국무부에 넘겨 본래 의도와 동떨어진 외교적인 답변을 제공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조속한 시일 안에 동해 표기가 옳다는 역사적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 역사학자 및 교육 전문가 등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공개 토론회를 개최해줄 것”을 요구했다.

    키란 아후자 국장은 한인사회가 공식 서한을 작성해 교육부 장관에게 제출하면 검토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답했다. 그는 교육부 장관에게 서한을 보냈고 그해 12월8일 차관보 명의의 답신이 왔다.

    ‘연방정부에서는 교과서 문제에 개입할 수 없으니 직접 주정부를 찾으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청원 운동은 혼자 했지만 그때부터는 제대로 대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교육 전문가도 있어야 하고 출판도 필요하고 해서 사단법인을 만들게 됐어요.” 12월19일 미주 한인의 목소리(Voice of Korean American)가 출범했다.

    그러나 정치인 대부분이 ‘동해’에 대한 기본 인식이 없었다. 동해 법안을 위해선 ‘교육’이 필요했다.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30쪽의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들었다.

    한국과 일본 사이 동해가 식민지 시절 멋대로 일본해로 둔갑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한인 학생들이 다수 거주하는 버지니아에서 일본해 표기 교과서로 배운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최소한 동해 병기가 되야 한다”고 설득했다.

    호응하는 의원들이 늘어나면서 법안 상정을 위한 면밀한 전략을 짰다. 민주당의 데이브 마스덴 의원이 상정을 주도하고 공화당의 동참을 늘리기 위해 리차드 블랙 의원을 공동 발의자로 끌어들였다. 초당적인 상정의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하원은 사정이 달랐다. 40명인 상원에 비해 의원수도 100명이나 돼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게다가 한인사회와 상대적으로 소원한 공화당 의원이 67명으로 다수당이었다. 유일한 한국계인 3선의 마크 김 의원의 힘도 컸지만 민주당적의 한계가 있었다. 불문곡직, 팀 휴고 공화당 원내 대표를 찾아갔다.

    “휴고 의원에게 동해 병기 법안의 필요성을 차근차근 설명했더니 흔쾌히 공감을 하더군요. 내친 김에 법안의 공동 발의자로 나서 달라고 설득했어요. 공화당의 적극적인 모습이 유권자 저변 확대에 도움이 될 거라는 말도 잊지 않았지요.”

    공화당 서열 3위의 실세가 공동 발의자로 나서자 하원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한인 유권자들이 많은 북버지니아 지역구의 공화당 의원들을 중점 공략했고, 나머지 의원들도 일일이 찾아가 법안 지지를 당부했다.

    ▲ 일본의 ‘돈 로비’ 무너뜨린 한인들의 ‘풀뿌리운동’

    진짜 걸림돌은 일본의 강력한 로비였다. 버지니아의 대형로펌 맥과이어우즈 컨설팅을 고용, 동해 법안 무력화를 위한 종합전략을 짜고 전문 로비스트는 물론, 일본의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 대사까지 선봉에 나섰다.

    결과론이지만 한인사회가 지난해 가을 주지사에 출마한 테리 맥컬리프 후보로부터 ‘동해 병기 법안에 찬성한다’는 서한을 받은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법안이 통과하면 버지니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일본 기업이 철수할 수도 있다’는 일본대사의 협박성 서한에 맥컬리프 주지사가 참모들을 시켜 하원 2차관문인 상임위 의원들에게 법안 부결을 종용하는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정보를 입수한 한인사회는 즉각 맥컬리프 주지사의 동해 법안 찬성 서한을 공개하며 정치인의 생명인 ‘약속’과 ‘신뢰’를 강조했다. 주지사측의 반대 로비는 중단됐고 워싱턴 포스트를 통해 “동해 법안이 통과되면 서명할 것”이라는 주지사 대변인의 언급도 나왔다. 거부권의 가능성을 스스로 폐기한 것이다.

    일본의 막강한 로비를 뚫고 마지막 관문인 하원 전체회의에서 예상을 깨고 81-15의 압도적인 표차로 법안이 통과한 것은 한인 풀뿌리운동의 승리였다. 당선이 유력한 주지사 후보에게 일찌감치 동해 법안 지지를 문서로 받아놓은 선견지명도 컸다.

    돌이켜보면 첫 번째 고비는 지난달 23일 상원 전체회의였다. 1, 2차 관문을 무난하게 통과한 법안을 표결하려는 순간 민주당 원내대표인 도날드 맥키친 의원이 느닷없이 수정안을 들고 나왔다. ‘동해와 일본해 둘다 빼자’는 엉뚱한 제안으로 동해 병기 법안 무력화를 시도한 것이다. 다행히 표결이 강행됐고 31-4의 일방적인 승리를 거뒀다.

    가장 큰 위기의 순간은 1월29일 하원의 1차관문인 교육위원회였다. 당초 통과를 낙관했지만 반대 로비로 인해 4-4 동수가 됐고 지지자였던 스캇 링감펠터(공화) 의원이 투표를 하지 않고 돌연 퇴장했기 때문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어서 아찔했어요. 다행히 다음날 재표결하기로 하고 링감펠터 의원도 이번엔 찬성표를 행사하겠다고 알려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요. 정말이지 지옥과 천당을 왔다갔다 했습니다.”

    그간 일본 기자들의 인터뷰를 거절해온 그는 통과 직후 처음으로 그들의 질문에 응했다. “당신은 왜 이런 일을 하느냐. 당신은 한국사람이냐 미국사람이냐?” 김 회장은 “내 아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잘못된 내용이 있는데 바로잡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 그리고 난 1.5세 한국계 미국인이다”라고 여유있게 응수했다.

    서울 출신인 김 회장은 수송중학교를 졸업하고 1977년 버지니아에 가족과 함께 이민왔다. 리치먼드 하이스쿨과 버지니아 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공군장교로 8년 간 복무 후 전역했다.

    현재 그는 가족들이 주도하는 패밀리 로펌 ‘마우리와스 법률사무소’의 고문으로 재직하며 한인들을 위한 법률 상담도 돕고 있다.

    김 회장이 처음 동해병기 법안 캠페인을 시작할 때 ‘동해’ 단독표기 혹은 ‘한국해’로 가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일본해’라는 철옹성을 깨뜨리려면 ‘동해 병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현실적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입니다. 버지니아의 쾌거를 시작으로 ‘동해 병기’가 전 미국의 교과서로 확산된다면 언젠가는 동해 단독표기나 한국해의 가능성도 생길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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